어른답지 못한 어른

상처 받은 아이

by 김리아

내게는 6명의 조카가 있다. 그중 2명은 주 5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귀여운 7살과 3살 아가들이다. 나는 원래 아이들을 좋아해서 아이들과 잘 놀아주기도 하고, 이 아이들 역시 나를 잘 따르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6명의 조카 모두 나를 잘 따르곤 한다:)


내가 돌봄을 하고 있는 집과 주 5일 거주 중인 이모집의 거리는 걸어서 15분, 아이들의 걸음으로는 30분 정도 걸린다. 8살 큰아이와 7살 조카가 만나서 놀면 좋겠다는 생각에 4월 중순쯤 이 둘의 만남은 놀이터에서 성사되었고 이날은 이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5월 5일 어린이날, 천방지축 네 아이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모두가 모인 놀이터는 내가 돌봄을 하는 집 바로 앞에 있는 놀이터였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을 만큼 꽤 넓다. 약간의 계단이 있는 입구와 입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사방이 풀과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다.


평화로운 오후, 7살, 8살 형님들은 막내가 타고 온 유모차를 갖고 놀기도 하고 열심히 그네도 타다가 어른들을 위한 운동기구를 하거나 장난치며 미끄럼틀을 타기도 했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닌 6살 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네를 탔고, 중간중간 미끄럼틀과 운동기구에 관심을 보였고, 3살 아가인 우리 집 막내는 형아들의 뒤를 쫓아다니며 형아들이 하는 모든 것들을 따라 하곤 했다.


이렇게 평화롭게 1시간 즈음 지났을 무렵, 두 명의 남자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빠가 놀이터에 나왔다. 새로운 친구들을 좋아하는 8살 아이는 새로 온 아이들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고, 이 아이들의 아빠는 본인의 아이들에게 ‘시비 거는 애랑은 놀지마’라고 하였다. 그 당시 나는 그 말을 듣지 못했지만 후에 언니에게 이 말을 전해 들었다. 아이가 나이를 물어보는 행동을 어떻게 시비로 받아들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이날 어른답지 못한 어른의 생각 없는 행동이 한 아이의 마음속에 큰 상처로 남아버렸다.


미끄럼틀에서 동생들이 잘 내려가게끔 밀어주던 8살 아이는 새로운 아이가 미끄럼틀을 탈 때도 동생들을 밀어주던 것처럼 행동했다. 이걸 본 그 아이들의 아빠가 ‘야! 너 뭐하는 짓이야!’라는 말과 함께 큰 호통을 치며 ‘너 그거 하지 마!’, ‘이게 뭐 하는 거야!’ 등등 끝도 없이 이 아이를 나무라며 고함을 질렀다. 이어서 들어온 아이의 엄마가 그 아빠를 말렸고 그렇게 상황은 종료되었다. 영문도 모른 채 처음 본 어른에게 고함과 호통을 들은 이 아이는 마음 깊이 상처가 남았다.


아이들은 깊이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어른들이 알려 주어야 하고, 그로 인해 생각하는 방법을 기르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법, 미안함을 전달하는 법,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법, 친근함을 표현하는 법 등등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본인의 아이에게 그렇게 하나보다 싶었다. 멀찍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한두 마디를 듣고 나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이, 그것도 처음 본 아이를 상대로 고함과 호통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었다.


상황이 종료되고 놀랜 아이는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집에 가자고 했다. 내 곁에서 안정을 찾은 아이는 저 멀리서 큰소리로 궁시렁거리는 그 아이들의 아빠로 인해 한번 더 상처를 받았고, 이런 아이의 마음이 많이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


7살 조카는 큰소리가 무서워서 엄마 곁으로 갔고, 천진난만한 6살 아가는 상황 파악이 안 되기에 홀로 유유히 그네를 즐겼다. 그 와중에 3살 아가는 마음이 다친 형아에게 다가와 쓰다듬어주며 작은 위로를 건넸다.


3살짜리 아가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는데 정작 어른이란 사람은, 그것도 두 아이의 아빠라는 사람이 한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모습을 보고 어른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24살. 아직 어른이라기엔 한없이 부족하다. 아직도 어른다운 어른에 대해 잘 모르고, 내가 어른다운 어른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여태껏 멋있는 어른, 현명한 어른, 순수한 어른, 해맑은 어른, 철없는 어른 등등 많은 어른들을 봐왔지만 나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어른답지 못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들이기에 항상 잘 가르쳐주어야 하고, 그런 아이들이기에 잘 타일러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차분한 이야기를 통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능하다.


최고의 하루가 될 수 있었던 아이에게 오점이 남았다. 집으로 돌아와 숙제를 하던 아이가 나지막이 이야기를 했다. “오늘 진짜 재밌었는데... 그 아저씨만 빼면...”


상처 받은 아이의 마음은 되돌릴 수 없다. 상처를 받은 아이는 그 상처를 준 사람에게 나쁜 마음을 가진다. 나는 이 모습이 안타까워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그 아저씨한테 나쁜 마음을 먹으면 너도 그 아저씨랑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야, 그 아저씨는 그렇게밖에 행동을 못하는 사람이니까 예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네가 이해해주자.”라고 말이다.


사실 속으로는 나도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아이가 상처 받은 마음을 어떻게 하면 빨리 치유할 수 있을지가 먼저였고, 아이의 기억 속에서 빨리 잊혀지게끔 하는 게 최선이었다.


아이의 잘못은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 역시 중요하다. 아이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일단 아이를 이해시켜야 한다. 이해야 되지 않는 상황에서 영문도 모른 채 야단만 맞는 아이들은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모른다. 또한 자신이 왜 야단을 맞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저지르는 잘못이 그 아이들의 표현방식이며, 그 표현방식을 바꿔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번 일을 통해 어른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흔하게 들어봤던 말 중 “자기 자식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 귀한 줄 알아야지.”라는 말이 있다. 여태껏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말인데 이를 당연하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낀 하루였고, 이로 인해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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