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중어반을 할 생각은 못 했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과 먹는 중에 그림을 그리면 이런 핀잔을 들을 게 뻔했다. 먹을 때는 먹어야지, 뭐 하는 짓이야. 게다가 먹다 보면 보고 그리던 대상이 없어지는데 어쩌려고.
그랬던 나에게 식중어반을 자극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 10월 12일이었다. 수원 기성쏭이 갑자기 충주 정기 모임에 왔다. 중앙탑공원에서 다 함께 그림을 그린 뒤 저녁 식사하러 메밀마당으로 갔다. 기성쏭은 자리에 앉자마자 그림 도구를 꺼내더니 막국수와 치킨을 먹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붓으로 그리다가 붓을 내려놓고 먹고, 다시 붓 들고 그리고. 같이 앉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물론 나도 케이크나 음료를 그린 적은 있다. 다만 디테일은 나중에 추가하더라도 대강 완성한 다음부터 먹기 시작했다. 음료는 먹어도 양이 줄어들 뿐이고, 쿠키나 케이크도 서서히 없어지니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랬는데 식사류를 먹으면서라니! 나도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이미 그림 도구는 차에 가져다 놓았기에 그럴 수 없었다. 아쉬웠다. 언젠가 해 보리라 다짐했다.
자영 님도 나와 마찬가지로 기성쏭의 식중어반에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첫 식중어반인만큼, 먹으며 그려도 부담 없을 만한 장소를 모색했다. 카페 발티. 거기는 야외 공간도 많고 예전에 방문했을 적에 우리 어반처스에게 친절했었다. 이번에도 발티 사장님은 푸근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디서 그릴까 하다 뒷마당을 발견했다. 감나무와 장독대가 있었고 널찍한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까지 개방한 건 지난봄부터였다고 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눈앞의 풍경을 그렸다. 음식이 나온 뒤엔 피자를 그렸다. 먹으면서 느낀 도우의 바삭함, 바질의 향긋함까지 표현하고 싶기도 했다.
어쨌든 막상 해 보니 할 만했다. 아직은 어반처스와 함께, 혹은 집에서 혼자서만 가능할 듯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