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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바게트

by 괜찮은 작가 imkylim
소금바게트_듀레.jpg 나는 소금바게트가 너무나 맛있던데 모든 사람에게 그런 건 아니었다. 입맛도 생각도 다 다른 우리네들~

오늘은 초단편 소설. 충주의 유명 빵집 듀레, 그 간판명에서 영감을 얻어서.


제목: 멍게와 듀레


……수고, 고아, 아듀, 듀레


병호와 나는 작은 술집 창가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끝말잇기를 했다. 술과 안주가 나오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가 처음 끝말잇기를 한 것은 대학 시절 학교 축제의 국문과 부스에서였다. 승자라고 해 봤자 줄줄이 이어진 사탕 목걸이를 받을 뿐이었지만 거기를 찾아간 이유는 딱 하나, 목걸이를 걸어주는 여학생이 예쁘다는 소문이었다. 바로 옆에는 노인을 위한 문해력 수업 진행을 위한 모금함이 있어서 사탕만 받고 돌아서기 어려운 구조라는 걸 알면서도 남학생들은 꾸역꾸역 그 부스를 찾았다. 그녀 앞에서 어휘력을 자랑하느라 괜히 어려운 단어를 읊었다는 녀석, 꽃을 들고 찾아갔다가 차라리 모금함에 돈을 넣으라는 타박을 들었다는 녀석, 축제 내내 그 부스에 있었다는 녀석 등 소문도 무성했었다. 소심한 나와 병호는 딱 한 번 거길 찾았고 그 뒤로는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병호는 꽤 오랫동안 그녀의 소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병호에게 그녀와 사귈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가끔 끝말잇기를 하곤 했다. 그래봤자 이십 대의 일이었다.


퇴근길에 만난 병호는 느닷없이 끝말잇기를 하자고 했다. 거의 이삼십 년 만이었다. 그리고 병호가 듀레까지 읊었을 때 소주와 멍게가 나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소주 뚜껑을 따고 잔을 주고받느라 끝말잇기는 자연스레 멈췄다. 나는 녀석이 말한 듀레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듀공이나 듀엣은 알아도 듀레는 처음 들어봤다. 대화를 시작할 화제도 딱히 떠오르지 않아 웅얼거리듯 물었다.

“듀레, 그게 무슨 뜻이야?”


병호는 젓가락으로 멍게를 집으며 심드렁하게 답했다.

“듀레(Duree), 그거 듀레이션(duration, 지속. 지속되는 기간)과 거의 같은 뜻이라고 보면 돼. 지속.”


녀석은 한숨을 내쉬고는 멍게를 냉큼 입에 넣었다. 잠시 뒤 말을 이었다.

“어린 시절 생기있던 게 무슨 소용이냐. 닻 내리고 나면 다 퇴화하고 뇌까지 소화해 버려 식물처럼 사는데. 양분이 알아서 제 뱃속으로 들어오니 아무런 걱정 없었겠지. 결국 시커먼 아저씨들 술자리 안줏거리.”


쓸쓸한 표정으로 코웃음도 쳤다. 아무래도 국문과 여학생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의대생과 결혼했다. 아나운서가 꿈이라고 했었는데 그녀의 이름을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하는 병호가 한없이 못나고 철없게 보였다. 희끗희끗한 녀석의 뒤통수를 쳤다.

“너 아직도 국문과 생각하냐?”


놀란 병호는 눈을 크게 뜨고 뒤통수를 만지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무슨 소리야, 멍게 이야기였거든?”


나는 병호가 든 젓가락 끝에 걸린 멍게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갑자기 끝말잇기를 하자고 한 이유는 뭐냐고 따져 물었다. 병호는 입을 벌리고 가만히 있다가 내 말을 이해한 듯 넋두리를 시작했다. 정년 퇴임하려면 아직 먼 것 같은데 벌써 회사에서 눈치를 준다고, 정규직이라는 느긋함으로 회사에 닻을 내리고 규정만 따르며 사는 동안 뇌까지 소화해 버린 것 같다고, 지속 가능한 게 없다는 걸 알지만 하필 멍게와 듀레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멍게나 자기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아 읊조렸을 뿐이라고. 끝말잇기를 하자 한 건, 젊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뭐든 머리 쓸 걸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고.


나는 멋쩍어 병호의 어깨를 툭 치며 끝말을 이었다. 레, 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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