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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과 일그러진 희극

by 괜찮은 작가 imkylim


학창 시절 나는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틈틈이 들었다. 수첩 표지 안쪽에는 그의 사진을 붙여두었다. 93년 아동 성추행사건을 기점으로 떼어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훗날 누명이 벗겨졌지만 그의 노래를 다시금 찾아 듣지는 않았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09년에도 잠시 안타까웠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를 들었다. 운전하던 중이었다. 섬세하면서도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에 어쩐지 가슴이 떨렸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검색창을 띄웠다. 유튜브에서 찾아본 그의 쇼트 필름과 노래하며 춤추는 영상은 흔한 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학창 시절에 봤던 건 문워크나 린댄스 일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몇 번을 보고 들어도 질리지 않는 작품이 넘쳐났다.


더 알고 싶어 도서관과 인터넷 서점도 뒤졌다. 그의 인생과 음악을 다룬 책과 자서전을 찾아 읽었다. 그는 자신이 유년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매몰되지 않고 세상 모든 어린이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으며 선행 규모도 엄청났다. 그럼에도 그는 온갖 매스컴에서 뿌려대는 굴욕과 비웃음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무성했기에 여전히 알 수 없는 면이 많지만, 영상에 나타나는 그의 쓸쓸한 눈빛, 미소와 행동까지 마음에 들어왔다. 노래 가사에 담긴 의미도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를 외면했던 시간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마이클 잭슨은 어린 나이에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부른 노래로도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다. 예술적 감수성을 타고난 자들은 작품에 감정을 쏟아 넣을 수 있어서다. 그런데 부당하고 버거운 환경에 상처받고 스트레스로 민감해질 때, 그들은 갈린다. 스러지거나 철저한 고독 속에서 창작에 몰두하거나. 마이클은 후자였다.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분출구, 놀이터였을 창작.


어려서부터 자신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에 둘러싸여 세상의 어두운 면을 깊게 접했을 테지만 스스로 음악을 제작한 이래 91년 앨범 Dangerous까지는 삶의 희망을 노래한 게 많았다. 반면 95년 HIStory에서는 삶의 어두운 부분을 고발했다. 자신이 받은 수모, 분노, 두려움과 고독을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자기만 살겠다고 버둥거리지 않았고 시야를 타인, 전 세계, 미래로까지 확장했다. 복수 대신 화해, 용서와 관용을 찾았다. 그는 부당한 대우 앞에서도 아름다움을 꽃피운 예술가다.


반면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던 자, Y가 있다. 그는 12월 3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자기를 숭배하는 무리에 둘러싸여 살아온 그는 떠나가는 지지자들을 보며 변화된 기류가 두려웠을 것이다. 권력을 공고히 할 마땅한 명분이 없어 궁지에 몰렸을지도 모른다. 계엄령이 하도 황당하니 아내까지 자기에게서 등을 돌릴까 두려웠던 건 아닐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단칼에 온갖 불안을 해소하고자 했던 욕망은 날 것의 폭주로 드러났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던 수많은 이들을 상처와 고통에 빠뜨렸다. 지금껏 받아온 대우가 심히 과했다는 걸 온 천하에 드러낸 추악한 정치인이다. 더군다나 아직도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 듯 대항하고 있다. 서글픈 희극 앞에 분개와 헛웃음이 반복된다.


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 쇼트 필름을 다시 찾아봤다. 거기에서 우리나라 장면도 본 것 같아서였다. 그 비디오를 제작할 적에 감독은 스톡 푸티지를 보유한 여러 기관을 찾아가 가진 것 중 무질서와 절망을 담은 최악의 자료를 달라고 했단다. 거기에서 뽑아낸 영상에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을 배치해서 만든 필름이었다고. 역시나 있었다. 2분 24초 즈음에 독재 타도를 외치는 80년대 한국의 시위 장면과 이어지는 진압 장면. 백 보컬로는 ‘change’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흘러나왔다. 역사에 남을 진정한 예술과 24년 12월의 참담한 현장 앞에서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곡은 마이클 잭슨의 부드럽지만 간절한 목소리로 마무리된다. “Make that change.”


* 마이클 잭슨은 뮤직비디오가 아닌 쇼트 필름이라는 용어를 좋아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만든 영상은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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