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린 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7월 초였다. 흰색부터 푸른색, 붉은색을 아우르는 탐스러운 꽃 무리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작은 꽃받침 하나하나가 모여서 만든 커다란 송이는 양손으로 받쳐도 좋을 정도였다. 수국(水菊)이었다. 꽃말은 변덕과 진실, 어쩐지 양립할 수 없을 듯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수국은 한 그루에서도 뿌리가 닿은 땅의 pH, 물의 pH에 따라 다른 빛깔의 꽃이 피어난다고 했다. 색이 결정된 품종 말고는 산성에서 푸른빛, 중성에서 보랏빛, 알칼리에서는 붉은빛이란다. 내 눈에 담긴 수국 정원 아래 땅의 pH가 그다지도 다양하다니 놀라웠고 예민하게 pH를 꿰뚫는 감도는 도무지 풀 수 없을 수수께끼처럼 신비로웠다.
그런데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생존 전략이라면 벌이나 나비를 끌어들이는 특정 색을 고수하는 게 맞을 듯했다. 과학적 해석으로는 수국의 색 변화가 색소 물질인 안토시아닌의 화학적 반응에 대한 결과물이라 했다. 그것만으로는 영 성에 차지 않았다. 문득 겨울왕국2에서 들었던 울라프의 대사가 기억났다.
“Water has memory. The water that makes up you and me has passed through at least four humans and/or animals before us—and remembers everything.”
여기서 물이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자연을 의미할 것이었다. 수국이 자라는 땅에 내리는 비와 물, 거기 녹아들어 있을 온갖 미네랄과 기억들은 땅을 통해 수국 안으로 스며들고, 수국의 몸을 통과한 물은 다시 밖으로 흩어지겠지만, 수국은 그 물이 남긴 흔적을 기억하고 있다. 말하자면 기억을 오롯이 품은 꽃이었다.
나는 수국의 꽃말 변덕과 진심을 다시금 생각했다. 어쩐지 영어표현도 찾아보고 싶었다. Hydrangeas generally symbolize heartfelt emotions, deep connections, and sincere appreciation. They represent gratitude, understanding, and sometimes even apology.
지금껏 꽃말에 그다지 의미를 둔 적이 없었다. 그러나 수국의 깊은 표현력을 알고 나니, 꽃말이라는 낱말과는 별도로 flower language를 직역해 꽃의 언어라 칭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 가슴을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