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대적인 노력 덕에 인간들은 아보카도를 적극적으로 심어댔다. 거기에 더해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우리를 재배할 수 있는 기후를 가진 면적이 넓어졌고 식생은 단순해졌으며 아보카도가 번성하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나는 재선에도 성공했다.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지금, 나는 WAA수장을 넘어 아보카도 계의 큰 스승이 되길 꿈꾸고 있다. 그러려면 우리 아보카도에 더 큰 그림을 그려줄 수 있어야 했다. 도구란 쓸모를 다하면 없애는 게 깔끔했다. 굳이 남겨둬서 우리를 먹게 할 이유가 없고, 진화적 관점에서도 있던 종이 없어져야 새로운 종이 번성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인간은 도구고, 아보카도가 번성하는 세상은 목표다』를 넘어 인간을 지구에서 쓸어버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문득 아뵤 군이 단단한 껍질 속 부드러운 과육을 외강내유에 빗대었던 표현이 떠올랐다. 내가 지난 칠 년간 단호한 태도로 우리의 전략을 지휘했으나, 마음 한구석엔 인류를 향한 녹진한 애처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인류는 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한때는 인간 문명을 진심으로 존경하기도 했다. 세계의 문화, 예술, 축제는 각 민족이 쌓아온 기억과 꿈이 어우러져 피어났고, 인류는 서로를 격려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때로는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다. 특히 그들의 자연에 대해 오만한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조금씩 그들에게서 마음을 거두었다. 하지만 어찌 미워했던 부분도 배우게 되는가. 충분히 활용하여 이제 쓸모없는 도구는 그만 치우려는 내 생각은 그들을 닮아있었다.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으로는 무성한 아보카도 나무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거긴 몇 년 전만 해도 숲이 있던 자리였다. 우리가 번성할수록 숲이 사라지는 건 안타까운 아이러니였다. 그때 나의 둥실한 몸통 가운데 단단한 씨앗이 말하는 듯했다. 종족 번성에 위협을 당하면 반격하는 건 유전자에 새겨진 임무이자 본능이잖아. 인류의 탐욕에 빨리 대처하는 종만이 지구에 살아남을 수 있어. 그게 바로 우리 아보카도지. 그런데 우리는 인간보다 나아야 해. 인간을 멸종시키기보다는 더 이용해 보는 건 어때? 나는 주름진 껍질을 부여잡고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사랑했던 존재인 인간을 없애기보다는 아보카도화하는 방법을 찾는 게 더 좋을 듯했다. 우리는 더욱 강력해질 터였다.
나는 오늘도 모니터로 인간 세상을 살피고 있었다. 한 여자가 카페에서 아보카도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잔을 내려놓지도 않고 쭉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은 여자는 혀로 입술에 묻은 아보카도를 남김없이 핥았다. 그러고도 아쉬운가 보았다.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여자의 눈동자 안쪽에서 초록빛이 번지고 있었다.
브라보! 나는 우둘투둘한 내 몸통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내 이름 보두(vodo: victorious organism for domination, and overthrow)는 새로운 아보카도 세상에서 영원히 빛날 터였다. 보두를 추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