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성석제 님의 <무인도의 토끼>라는 짤막한 이야기가 있다. <무인도의 개구리>는 일종의 오마주임을 밝혀둔다.
『그 섬에 가야 한다』
평생학습관 건물에 길쭉하게 걸린 현수막에 적힌 강연 제목이었다. 나는 다리가 아팠고 목이 말랐다.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 몸은 절로 건물 입구를 향했다. 마침 강연이 막 시작되었을 시간이었고 장소는 바로 1층 강연장이었다. 유리문 너머로 접수대 위의 티백 몇 가지와 나란히 세워둔 생수병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 그쪽으로 갔다. 나른한 표정의 접수대 청년이 참석자 명단을 적는 종이 위에 있던 펜을 들어 내게 내밀었다. 명단 위에는 스무 명 남짓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청중을 많이 모으지 못했나 보았다. 재미없는 강연일 거라는 생각이 스친 것도 잠시, 명단에 이름을 적었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 쉴 의자와 물을 얻을 수 있는 데다가 마땅히 할 일도 없는데 뭘 따지는 게 우스웠다.
강연장에 들어섰다. 먼저 에어컨 바람이 나를 휘감았다. 아, 이 맛이지. 거기에 더해 박수 소리까지 들렸다. 강연자인 생태학자가 막 인사말을 마친 모양이었다. 나를 위한 박수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생태학자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연단 가운데로 걸음을 옮겼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아담한 체구의 사내였다. 지루한 이야기를 나지막하게 늘어놓게 생겼다. 나는 구석 자리에 앉은 뒤 생수병을 열어 단번에 절반을 마셨다. 눈을 감고 등은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었다. 강연 시간은 한 시간, 자면 될 일이었다. 모든 것은 완벽했다.
그때였다. 생태학자의 목소리가 강연장에 울렸다. 돈을 벌려면 그 섬에 가야 합니다. 의외로 경쾌한 톤이었다. 나는 눈을 떴다. 내가 잘못 들어온 건가? 연단 뒤에 붙은 현수막을 살폈다. 분명 생태학자의 강연이라고 적혀 있었다. 연단 위에 선 그의 얼굴은 아까 앞에서 본 현수막의 인물과 같았다. 이마를 긁적였다. 대체 무슨 수작일지 의심스러웠다. 초반부터 눈을 감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을 깨우려는 걸까. 그래도 첫마디가 돈이라니 너무했다. 학자라고 돈과 멀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생태학자라면 돈보다는 자연을 강조해야 어울릴 것 같았다. 생태 자본주의자? 혹시 그런 낱말이 있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내 처지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생태학자의 강연이 그저 농담인지 진짜 돈벌이 정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건 마지막 희망일지도 몰랐다. 일단 물을 한 모금 더 마신 다음 반듯하게 앉았다. 나는 며칠 전 권고사직을 당했다. 오십 대 중반, 노인 일자리를 기웃거릴 수도 없는 모호한 나이였다. 퇴직금을 들고 통닭집을 차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튀기더라도 닭이 아닌 다른 걸 튀기고 싶었다. 이를테면 돈. 그런데 돈을 벌려면 그 섬에 가야 한다니, 그 섬은 도대체 어디일까. 거기에 가서 무엇을 하라는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