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여행을 앞두고 계획을 짜면서 현지에서 먹어볼 만한 음식을 살펴봤다. 로코모코, 포케, 사이민, 말라사다, 쉐이브 아이스, 카후쿠 새우, 아사이볼, 스팸 무스비, 라우라우 등이 있었다. 신선한 해산물이 듬뿍 들었다는 포케 말고는 딱히 구미 당기는 메뉴가 없었다. 먹어보지 않아도 맛이 어떨지 짐작이 되어서였다. 더군다나 열대과일이 풍부한 곳인데 굳이 과일에 그래놀라, 꿀을 섞어서 먹는 게 별미라니 어이없게 느껴졌다. 색다른 음식 체험이라는 재미는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을 삐죽였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와이의 열대과일을 가능한 한 많이 맛보자는. 바로 눈에 힘을 주고 검색에 들어갔다. 낯선 과일이 수두룩했다. 재미 삼아 하나하나 그려보며 맛을 상상해 봤다. 그중에는 싸워 삽(soursop)이라는 먹기 불편해 보이는 과일도 있었고 egg fruit, bread fruit처럼 풍미를 상상하기 어려운 과일도 있었다.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즐기지 않을 질감과 맛이 짐작되는 녀석들에게도 일단은 손을 뻗어보리라.
그림 구석에 ‘먹어볼 테다 과일 리스트’라고 적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찌하여 일상을 벗어나면 안 하던 짓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막연하나마 여행지에서 마주칠 사람, 특히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나는 낯선 이와 대화 나누기를 꺼리는 편이었다. 별 이유도 없이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보면 종교라도 권하려는 건 아닐지 의심부터 했다. 훌라댄스나 하와이안 마나 카드에도 호기심이 일었다. 이 역시 평소의 행동 패턴과 달랐다. 물론 여행 중에 얼마나 그럴 수 있을지는 묘연했다. 훌라나 마나 카드를 계획에 넣지도 않았다. 어처구니없지만 우연이라는 변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봤자 변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여행 계획을 적당히 느슨하게 짜는 일 말고는…. 문장을 적다가 손가락을 멈추었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는 건 기본 상식이었다. 그렇다면 소극적인 자세는 곤란했다. 나는 새 문서를 열고 첫 줄에 가운데 정렬로 적었다. 우연 따먹기 작전. 고개를 갸웃했다. 우연을 위한 작전이라니 어쩐지 우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