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도 그렇다

by 괜찮은 작가 imkylim
너도 그렇다.jpg

몇몇이 멀찌감치서 오~, 하고 감탄하며 다가왔다. 곧이어 말없이 물러섰다. 나는 피식 웃으며 끄적였다.

『멀리서 봐야/예쁘고 멋스럽다/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패러디였다. 생각해 보면 그 시는 딱 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를 위한 시가 아니었다. 하긴, 그런 것에 대해서는 굳이 시까지 쓸 이유가 없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거라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구나 단박에 알았다. 루키즘을 비난하는 사람조차 그랬다.


그러고 보면 시인의 ‘너’나 나의 ‘너’나 다소 슬픈 구석을 갖고 있었다. 동시에 누군가가 자꾸 들여다보거나 멀리 서라도 봐주는 행복한 녀석들이기도 했다. 다른 점도 있었다. 시인의 ‘너’에는 예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았으나 드디어 어떤 장점을 찾아냈다는 감성이 느껴졌다. 반면 나의 ‘너’에는 가까이에서 실제 모습을 간파한 뒤의 아픔이 담겨 있었다. 시인의 ‘너’가 고귀한 사랑을 받고야 마는 ‘너’였다.


하지만 뭐든 세상의 흐름이 중요한 법. 요즘에는 후자가 나을지도 몰랐다. 빠른 속도에 익숙해져 무엇이든 분주한 마당에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는 공을 들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디라도 예뻐야 마음을 끌었다. 기어코 돌아설지라도 다시금 눈길을 받아본, 적당한 거리를 두고 봤다면 사랑을 받을 수도 있었을 내 그림처럼. 차마 말도 걸어보지 못했던 짝사랑처럼. 그런데 이건 당사자가 ‘너’ 일 경우였다.


‘너’를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달랐다. 어떻게든 깊이 엮이고야 만 사람이란 읽고 싶을 때는 읽고 아닐 때는 책꽂이에 꽂아두거나 버릴 수 있는 책과 달랐다. 그래서 기어코 예쁜 면을 찾아야 하는 사람의 애달픈 마음 뒤의 평안, 환상 속에 있었을 때가 나았다는 걸 깨달은 사람의 배신감, 또는 멀리 있었을 때가 좋았다는 걸 깨달았으나 그 안에서 어떻게든 예쁜 면을 찾아야만 하는 수도자의 마음 같은 너른 스펙트럼 어딘가를 헤매며 살곤 했다. 너든 나든 그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올챙이 합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