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난 뒤, 학생들에게 연휴를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습니다. 차례를 지냈다는 학생 A에게 어떤 음식을 상에 올렸느냐고 묻자 그는 몇 가지 음식을 대다가 “탕?”하고는 제 눈치를 보며 배시시 웃었어요. 자신이 제대로 기억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모양이었어요. 차례상에 올리는 탕은 평소에 먹는 국보다 국물이 적은 음식이며 ‘국’의 높임말입니다.
* 국: 고기, 생선, 채소 따위에 물을 많이 붓고 간을 맞추어 끓인 음식.
* 탕(湯): ‘국’의 높임말. 제사에 쓰는,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적은 국. 소탕, 어탕, 육탕 따위가 있다.
* 갱(羹): 제사에 쓰는 국. 무와 다시마 따위를 얇게 썰어 넣고 끓인다.
곰탕과 곰국은 거의 비슷한 음식 같지만, 감자탕과 감잣국은 확연히 다릅니다. 그래서 탕을 ‘국’의 높임말로만 치부하기는 썩 개운하지 않습니다. 사실 ‘탕(湯)’은 ‘국’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도 쓰입니다. 삼계탕, 매운탕, 해물탕, 설렁탕처럼 일반적인 국에 비해 오래 끓여 진하게 국물을 우려낸 것을 이르지요. 갈근탕, 탕약처럼 달여 먹는 약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도 쓰이고요. 탕이 국보다 조리 시간이 긴 편이고, 긴 시간에는 정성이라는 고명이 더해지니 정성이 곧 존중으로 치환되어 ‘국’의 높임말로 쓰이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쨌든 국에도 높임말이 있는 한국어! 외국인에게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되지요?
아래는 학생 B가 쓴 글입니다.
어머니께 효도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자녀들이 하얀색 꽃을 드리면서 절도 하시고 덕담도 해 드립니다.
학생은 어머니께, 꽃을 드리면서는 잘 썼습니다. 하지만 고쳐야 할 부분도 있지요. 절도 하시고 → 절도 하고(올리고), 덕담도 해 드립니다 → 덕담도 듣습니다.
한국어 높임법에서는 듣는 이, 말하는 이, 행동의 주체를 모두 고려하기에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외국인도 중급 정도 되면 성함, 연세, 생신, 댁, 말씀, 진지, 여쭙다, 드리다, 같은 어휘라든가 ‘하시다, 가시다, 오시다, 받으시다’와 같이 동사에 ‘(으)시’를 붙이는 문법을 압니다. 하지만 문장에서 적절하게 쓰는 건 또 다른 문제죠. 영어 학습자가 사과는 apple이라는 어휘를 알고, apple 앞에 an이나 my 등을 써야 한다는 걸 알아도 직접 문장으로 쓰거나 말할 때는 오류를 범하곤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학생 B는 ‘하시다’가 어른이 행동 주체일 때 쓰인다는 점을 모르고 자신을 높이는 표현으로 썼어요. 우리 높임법에서는 말하는 자신을 높이면 안 됩니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내가 이제 진지를 먹어야겠다.” 또는 “내가 이제 밥을 드셔야겠다.”라고 하지 못해요. 덕담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건네는 좋은 말을 뜻하는 낱말이라는 점도 놓쳤습니다. 결국 절도 하시고 덕담도 해 드립니다. 이런 어색한 표현을 썼어요.
학생 A가 자신 없게 대답했던 “탕?”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소탕, 어탕, 육탕 등의 탕과 더불어 제사상에 올리는 국은 ‘갱’, 밥은 ‘메’라고 부릅니다. 이런 어휘에는 제사나 차례처럼 우리가 조상 앞에 선다고 믿는 순간,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무심코 적다 보니 올린다는 표현을 몇 번 썼습니다. 탕을 놓는다, 메를 놓는다, 해도 되는데 올린다고 하는 건 절을 한다 대신에 절을 올린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올리다’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위로 이동시킨다는 뜻이지만 높임 표현에서는 말씀을 올리다, 보고를 올리다, 제물을 올리다, 와 같이 아래에 있는 주어가 위에 있는 대상에게 무언가를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올라가다’는 산에 올라가다, 와 같이 주어 스스로 위로 이동한다는 뜻인데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와 같이 무례와 과도함을 표현할 때도 씁니다. 둘 다 방향이 위쪽이지만 ‘올리다’는 스스로를 낮추는 겸양이고 ‘올라가다’는 반대입니다.
몇 년 전 카페에서는 “주문하신 음료 나오셨습니다”, 와 같은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부적절한 존칭이라는 사회적 공감대 덕에 요즘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높임의 본질을 일깨우는 사례였다고 생각합니다. 높임법은 복잡하기는 하지만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겸양을 표현하는 문화적 산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