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사고, 낱말이 담는 시선

by 괜찮은 작가 imkylim

중급 2 사건과 사고 단원에는 아래와 같은 어휘들이 나옵니다.

사기 사건, 절도 사건, 방화 사건, 폭행 사건, 강도 사건, 뺑소니 사건

교통사고, 화재 사고, 등산 사고, 추락 사고, 자전거 사고


* 사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만한 뜻밖의 일.

수사, 기소, 재판 등 사법 적용의 대상이 되는 일.

문학 작품에서 인물의 행동을 야기하고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 발생하는 일.

* 사고: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나쁜 짓.


흉흉한 예로 시작해서 그렇지 사건에는 사회적 관심을 끌 만한 뜻밖의 일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다만 뉴스에서 오늘의 사건‧사고 소식, 이런 식으로 붙여서 말하기도 하고 사건이라는 말이 범죄나 분쟁과 연결되어 자주 쓰여서 잘 따져보지 않으면 사건이나 사고나 비슷한 어휘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사건과 사고에는 뜻밖의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초점은 전혀 다릅니다. 이는 함께 쓰이는 동사들을 살펴보면 명확히 드러납니다. 사건은 ‘일으키다’, ‘공모하다’와 함께 쓰입니다. 누군가의 의도나 계획이 개입된 측면을 강조합니다. 반면 사고는 ‘나다’, ‘내다’, ‘당하다’처럼 주체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불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사고 치다’ 역시 구어나 속어로서 의도치 않은 말썽이나 실수를 저질렀다는 어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격 차이는 일이 벌어진 후의 대처 방식에서 더욱 극명해집니다. 사건은 ‘수사하다’, ‘해결하다’, ‘진상을 규명하다’와 같이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밝히고 책임 소재(범인)를 찾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의 의지가 개입된 만큼 그 배후를 캐내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고에도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이 있지만, 사고는 ‘예방하다’, ‘방지하다’, ‘수습하다’와 같이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황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사고에는 재발 방지와 물리적 복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불가항력적인 사고로 보였던 일도, 마땅히 지켰어야 하는 안전 수칙을 어겼거나 관리가 소홀했던 사실이 드러나면 사건이 됩니다. 예를 들어 화재 사고라고 불렀다가도 방화 정황이 발견되면 방화 사건으로 바뀝니다. 어떤 건물에서 밤에 추락 사고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전날 누군가가 몰래 난간을 철거한 뒤 피해자를 거기로 가게 했다면 살인 사건으로 바뀔 여지가 있습니다.


시각에 따라 사건인지 사고인지 엇갈리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세월호 침몰 사고와 세월호 사건 사이에는 책임을 바라보는 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도 과거에는 폭동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진상 규명으로 사건이 되었지요. 이렇듯 우리가 무심코 듣고 쓰는 낱말 하나도 현실을 해석하는 우리의 시각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무거운 사건에 치중하다 보니 사건이 가진 다른 의미가 묻혀버리는 듯하네요. 문학에서의 사건과 일상적 사건 이야기를 조금 더해 보겠습니다. 문학에서 사건은 작가가 개연성과 핍진성을 위해 철저히 계산한 인과의 고리입니다. 길을 가다 갑자기 벼락을 맞는 게 현실에서는 사고지만 소설에서는 서사를 위한 사건입니다. 연애 사건에도 사건이라는 말을 쓰는 건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국면을 만드는 서사의 기점이 된다는 데 의미가 있어서겠지요. 역사적 사건이라는 말도 인류의 흐름에 의미 있는 서사라는 면에 초점이 있고요. 결국 사고보다는 사건이 우리를 서사에 집중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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