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과 노출의 경계

by 괜찮은 작가 imkylim


2025년 11월 말, 많은 사람이 이런 문자를 받았습니다.


제목: 쿠팡 개인정보 노출 통지

쿠팡을 이용해 주시는 고객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고객님의 소중한 개인정보가 일부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쿠팡은 이번 노출을 인지한 즉시… (25년 11월 30일)


사과문은 정중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낱말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노출’입니다. 며칠 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는 노출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으니 ‘유출’로 바꾸라고 지적했지만(12월 3일), 쿠팡 측은 고집을 부리며 버티다가 뒤늦게야 정정했습니다(12월 7일). 유출/노출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에도 나오는 낱말입니다. 쿠팡 경영진이 유출과 노출의 차이를 몰라서 저런 통지를 보냈을까요?


아래는 중급 2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글의 일부입니다.

「…스마트폰을 분실하거나 해킹을 당하면 개인 정보 유출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사진이나 동영상 등의 사생활이 노출되어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 유출: 밖으로 흘러 나가거나 흘려 내보냄.

귀중한 물품이나 정보 따위가 불법적으로 나라나 조직의 밖으로 나가버림. 또는 그것을 내보냄.

* 노출: 겉으로 드러나거나 드러냄.

사진기에서, 렌즈로 들어오는 빛을 셔터가 열려 있는 시간만큼 필름이나 건판에 비추는 일.

유출(流出)의 유(류)는 흐른다는 뜻입니다. 유출은 주로 정보나 기술, 액체, 자금 등이 원래 있어야 할 경계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말하지요. 통제를 벗어난 액체처럼 원상복구가 어려운 상태로 보안상의 문제나 2차 피해로 이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개인정보 보호법’상 유출은 엄격하게 다뤄집니다. 노출(露出)의 노(로)는 이슬이라는 뜻입니다. 이슬이 맺힌 듯 겉으로 드러난 느낌이지요. 사생활 노출, 적에게 노출되다, 노출증 등 의도하지 않거나 불쾌한 노출도 있지만, 광고를 노출하다, 패션을 위해 신체 일부를 노출하다, 촬영을 위해 카메라 노출을 조정하다, 와 같이 중립적이거나 의도적일 때도 있습니다. 노출은 대체로 눈에 보인다는 시각적 성격을 가져요.


우리는 코로나19 시기 초기에 사생활 노출의 고통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당시 확진자의 이름은 가렸을지언정 그의 일상은 만천하에 드러났어요. 우리는 농담인 양 진담으로 동선 공개가 두려워서라도 감염되면 안 된다는 말을 나누기도 했지요. 이렇듯 타인의 시선 앞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사생활이 노출되는 건 매우 불쾌한 일입니다. 때로는 무척 수치스럽고요. 그런데 개인정보 유출은 훨씬 위험할 수 있습니다. 노출이 보이는 것의 문제라면, 유출은 내 삶을 지탱하는 데이터가 범죄의 도구로 넘어갈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노출이라는 표현을 유출로 바꾸라고 지적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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