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을래요?

by 괜찮은 작가 imkylim

초급 1에 ‘~을까요?’, 초급 2에 ‘~을래요?’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둘 다 상대방의 생각과 의견을 묻거나 제안할 때 사용합니다.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외국인은 그걸 용케 기억해 차이를 묻지요.

우리 김치찌개 먹을래? = 나 김치찌개 먹고 싶어. 너도 같이 먹을래?

우리 이 영화 볼래? = 나 이 영화 보고 싶어. 너도 같이 볼래?

우리 김치찌개 먹을까? (네가 싫다면 메뉴 바꿀 수 있어.)

우리 이 영화 볼까? (네가 싫다면 다른 걸 봐도 좋아.)


두 표현 중 무게중심이 화자의 의지에 있는 건 ‘~을래요?’ 입니다. ‘~을래요?’가 들어간 문장 중에 가장 유명한 문장은 아무래도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은수가 상우에게 했던 “라면, 먹을래요?” 가 아닐까 합니다. 이 장면에서 ‘~을래요?’ 대신 ‘~을까요?’ 였다면 어땠을까요.


‘~을까요?’ 도 상대의 의사를 묻지만, 화자는 당신의 의견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도 보냅니다. 예를 들어 은수가 상우에게 “라면 먹을까요?”라고 물었다면, 상우는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상우 성격상 저는 안 먹고 싶어요, 했을 것 같지는 않고 “배고프세요? 근처 편의점이라도 가 볼까요?”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은수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뇨, 됐어요, 조심히 가세요.” 했겠지요. 로맨스의 끝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당돌하고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은수는 “라면, 먹을래요?” 하고 물었습니다. 상우에게 “나는 지금 너와 라면을 먹고 싶다.”라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지요. 바로 자신의 집 앞에서요. 순진한 청년 상우의 가슴은 무척 많이 뛰었을 겁니다. 제안에 함께할지 말지가 앞으로의 관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을 테니까요.


‘~을래요?’ 에 담긴 이런 어감은 ‘을래요’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을래요’와 ‘~고 싶어요’의 차이를 놓고 보면 어느 표현에 강한 주체성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가령 저는 커피를 마실래요, 에 반해 저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요는 단순 희망이라서 실현 가능성을 알 수가 없어요. 커피가 금지된 사람도 커피를 마시고 싶을 수 있으니까요.


라면 하나를 권할 때도 어떤 어미를 쓰느냐에 따라 단순한 야식이 될 수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와 적당히 예의를 지키고 싶다면 ‘~을까요?’를,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성큼 들어가고 싶다면 ‘~을래요?’를 써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런데 권력 차이가 있는 상황이라면 조금 다른 양상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오늘 야근할래요?”라고 묻는다면, “나도 야근하니 당신도 같이 하자.”는 뜻일 수도 있고, “나는 안 하지만 당신은 야근해.”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야근할까요?”는 “당신도 나와 함께 야근하면 좋겠다.”라는 어감을 줍니다. 두 표현 모두 선택권을 주되 권력관계에서는 상대가 거절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상당한 부담을 줍니다. 특히 ‘~을래요?’는 화자의 의사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쉬워, 상하관계에서는 오히려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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