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만 묻는 사회에서 이유를 말하는 언어

by 괜찮은 작가 imkylim

“제 한국어 발음이 안 되느라고 힘들었어요.”

“비가 와서 우산을 가져가세요.”


학생들은 위와 같은 문장을 만들곤 합니다. 저는 문장을 고쳐주며 어색한 이유와 대신 사용하면 좋을 적절한 표현을 알려 주지요.


‘~느라(고)’는 주로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이유나 핑계 느낌입니다. 원인과 결과 내용의 주어가 같습니다.

예) 머리를 감느라고 전화를 못 받았다.

“제 한국어 발음이 안 되느라고 힘들었어요.” 이 문장을 보면 뒤에 힘들었다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고 앞뒤의 주어도 같아요. 내가 발음이 안 되었고, 내가 힘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어색할까요? 발음이 안 된다는 건 내가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 능력이 미치지 못한 상태예요. 폭넓게 쓰일 수 있는 ‘~아서/어서’를 쓰는 게 자연스러워요. “제 한국어 발음이 안 돼서 힘들었어요.”


폭넓게 쓰는 ‘~아서/어서’가 들어간 “비가 와서 우산을 가져가세요.”는 어떨까요? 아무리 만만한 이유 표현이라고 아무 데서나 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아서/어서’ 뒤에는 명령이나 권유가 나오지 않아요. 이럴 때는 ‘~(으)니까’를 쓰는 게 더 낫습니다. “비가 오니까 우산을 가져가세요.”


그 밖에도 이유 문법은 참 많습니다. ~(으)니 ~기에, ~다 보니, ~탓에, ~덕에, ~(으)므로, ~더니, ~기 때문에, ~는 바람에, ~어 가지고, ~은 나머지, ~으로(인해)…….


학생들은 호소합니다. 한국어에는 이유 표현이 너무 많아 어렵다고요. 사실 저도 하나하나 가르치다 보면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한숨짓는 학생들 앞에서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이렇게 둘러댔어요.


“존댓말과 반말이 있듯이 상황에 따라 말하는 어감이 달라서예요. 예를 들어 네 덕분에 늦지 않았어, 에는 감사의 마음이, 너 때문에 우리가 혼났어, 에는 원망과 질책이 담겨 있어요.”


대답은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습니다. 언어는 사회를 비춘다고 합니다. 보통은 관심 있는 분야의 어휘가 발달하지요. 예를 들어 아랍권에는 수컷, 암컷, 새끼는 물론 낙타의 특성에 따른 각각의 낱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정이나 까닭을 나타내는 표현이 이토록 섬세한 한국 사회는 사건 이면의 과정과 개인의 형편을 지극히 살피는 사회여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많은 부분에서 결과를 먼저 따집니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데 익숙하고 성공으로 이끈 노력만 미화하는 경향이 있지요. 이유를 말하는 행위는 때때로 핑계나 말대답으로 치부되고요.


퍼뜩, 어쩌면 결과 중심 사회이므로 오히려 이유를 세밀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겠다는 의심이 듭니다. 최대한 상황에 맞는 표현을 고르고 고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유를 설명한다는 건 결국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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