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2 교재에 있는 한국의 ‘우리’ 문화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가족’, ‘우리 회사’, ‘우리 반’처럼 ‘우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원래 ‘우리’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함께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나’를 의미할 때에도 ‘우리’를 씁니다. ‘나’보다도 ‘내가 속한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나라에도 ‘우리’와 같은 표현이 있나요?”
잉글랜드에서 온 학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어요.
“학교 친구끼리는 우리 학교, 이렇게 말해도 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아니에요. 우리 남편, 우리 딸도 안 돼요.”
중국에서 온 학생도 비슷하게 말했어요.
“남편이랑 이야기할 때 우리 딸, 괜찮아요. 하지만 다른 남자한테 우리 딸, 큰일 나요.”
모로코에서 온 학생이 어깨를 으쓱하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재미있다는 듯 덧붙였어요.
“우리 남편? 정말 이상해요”
학생들이 킥킥거리며 웃었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역시 한국만의 정서가 담긴 표현인가 보다, 싶던 찰나였어요. 스리랑카에서 온 학생이 말했습니다.
“우리 학교, 우리 집, 우리 남편. 스리랑카에서도 그렇게 말해요.”
놀라웠습니다. ‘우리’가 한국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어요. 이후 다른 반 스리랑카 학생에게도 물었는데 한국과 똑같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기에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한국과 스리랑카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비슷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교재에 나와 있지 않은 ‘우리’의 이면을 떠올렸습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일자리를 뺏는다’거나, ‘우리 문화를 외국인에게 알려준다’는 말에서 보듯 때로는 배제의 논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말이죠.
요즘 우리는 영어의 영향인지 ‘내 딸’, ‘내 남편’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끼리 먹자’, ‘우리가 할게’와 같이 친밀한 관계 안에서는 여전히 ‘우리’가 활발히 쓰입니다. 대신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 ‘너’는 철저하게 배제합니다. 공동체 생활 위주였던 옛날의 ‘우리’는 느슨했을지라도 개인주의가 발달한 현대의 ‘우리’는 때로 무척이나 촘촘한 벽입니다. 얼핏 가축을 가두어 기르는 ‘우리(fence)’가 떠오릅니다. 외부를 차단해 안쪽의 가축을 보호하는 ‘우리’. 따뜻한 울타리인 동시에 누군가를 밀어내는 벽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참 비슷한 성격을 가졌어요.
제가 가르치는 결혼 이민자와 노동자 학생들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왔습니다. 일하고 공부하고 가정을 이루며 한국에서 조화롭게 살고자 하는 그들은 이미 한국 풍경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관심은 여전히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 익숙한 국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 곁의 이민자들에게 손을 내밀 우리 마음의 준비가 아직 덜 되어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작가 정보라의 단편 소설 ‘미션:다이아몬드’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발달된 외계 문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큰데 어째서 외계인은 지구에 신호를 보내지 않는가? 어째서 우주는 ‘위대한 침묵’을 유지하는가? 알고 보니 답은 간단했다. ‘너희들하고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다’가 그 이유였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 지구는 끈질긴 설득으로 온코아 행성과 공식적인 수교를 맺게 됩니다. 조약 체결 전 설문 문항은 “다른 문명이 당신의 접근이나 진입을 거부하거나 자신들의 영토를 떠나라고 명령한 적이 있습니까?”로 시작해 총 네 개인데 꽤 의미심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