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비틀면 확장, 모르고 쓰면 훼손

by 괜찮은 작가 imkylim

냄새’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을 나타내므로 중립적입니다. ‘향’은 주로 꽃, 향수 따위에서 나는 좋은 냄새를 칭합니다. 그래서 ‘향’에 부정적인 어휘가 붙는 순간, 어쩐지 의심스러워집니다.


「이게 보기에는 비슷해도 우렸을 때 차이가 나거든요. 가짜는요, 마실 때 몸이 거부합니다. 역겨운 향도 나고요. 빛 좋은 개살구죠.」

작가 성해나의 단편 소설 ‘혼모노’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역겨운 향이라는 낯선 표현이 보입니다. 역겹다는 강한 부정 형용사에는 악취나 구린내, 내지는 냄새가 짝을 이루는 게 보통이지요. 그러나 박수무당 앞집에 들어온 신애기와 박수가 처음 마주하고, 곧이어 신애기가 박수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라며 비웃는 장면과 이어지기 때문에 역겨운 향이라는 표현이 절묘합니다.


‘신나다’는 어떤 일에 흥미나 열성이 생겨 기분이 매우 좋아지다, ‘만끽하다’는 마음껏 먹고 마시다, 욕망을 마음껏 충족하다,를 뜻합니다.

「원서를 냈던 회사에 백번쯤 신나게 떨어지며 세상으로부터 완벽히 거부당하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래도 실망이나 좌절은 없었는데, 어차피 우여곡절을 뚫고 합격해봤자 인생이 나아질 게 하등 없다는 것을 이전 직장을 통해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작가 박상영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신나게 떨어지고 거부당하는 기분을 만끽한다고 하는 것은 방어기제로서의 언어입니다. 더불어 계속된 좌절을 세련된 유머로 표현해 화자의 성격까지 아우릅니다.


이렇게 원래 뜻을 비틀면 더 많은 감정과 상황을 담을 수 있기도 합니다. 단,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해야 하지요. 의미의 충돌을 이용한 확장은 작가뿐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도 자주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잘한다’, ‘괜찮아’를 맥락에 따라 반어적으로 혹은 짜증의 뜻으로 쓰는 경우가 있지요. 웃기지만 슬픈 감정을 담은 ‘웃프다’, 아는 게 많아 보이지만 실속 없는 ‘헛똑똑이’, 가까이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가까운 타인’, 애증의 감정이 느껴지는 ‘얄미운 사랑’도 있어요. 많이 먹고 싶지 않은데 너무 맛있으면 ‘기분 나쁘게 맛있다’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의도가 아니라 잘 몰라서, 혹은 버릇이 되어 어긋나게 말할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다르다/틀리다’가 있습니다. 다르다는 가치관이나 형태가 같지 않다는 뜻이고, 틀리다는 계산이나 답이 어긋났다는 뜻인데 “나는 네 생각과 틀려.” 이런 식으로 말하곤 합니다. 다름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틀림은 아닐 때가 있으니 주의해야겠지요. ‘바라다/바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망하는 것이 ‘바라다’이고, 볕이나 습기로 색이 변하는 것이 ‘바래다’인데, “행복하길 바래.”라고 말해서 상대의 행복이 빛바래기 바라는 엉뚱한 문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무심코 하는 실수가 큰 결례일 수도 있는 겁니다.


규정의 자리에 있는 언어는 안정감을 줍니다. 알고 비트는 언어는 의미를 확장하지요. 그냥 잘못 쓰는 언어는 의미를 흔듭니다. 진심이 빛바래고 온전히 전달되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어휘를 신중히 고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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