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수고했어요”라는 다정한 결례

by 괜찮은 작가 imkylim


수업이 끝난 뒤였습니다. 한 학생이 가방을 둘러메며 애틋한 눈빛으로 “선생님, 수고했어요.”라고 인사했습니다. ‘수고하다’를 어른에게 쓰는 건 예의에 어긋나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러지는 않았겠지요. 학생은 본인이 뭔가 힘든 일을 끝내고 나서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선생님에게는 존댓말을 해야 하니 ‘~요’를 붙여서 “선생님, 수고했어요.”가 되었겠지요. 평소에 하던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말고 새로운 말을 해 보고 싶었을 수도 있고요.


얼른 집에 가고 싶을 학생에게 길게 설명할 수는 없어서 “어른한테는 수고했어요, 보다는 애쓰셨어요, 하는 게 좋아요.”라고 말해줬어요. 하지만 학생의 인사는 어른에게 ‘수고하다’를 쓰면 안 되는 이유가 뭔지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애쓰다: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

* 수고하다: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쓰다.


사전 뜻을 봐서는 ‘애쓰다’와 ‘수고하다’에 별 차이가 없는 듯해요. 그런데 ‘애쓰다’의 ‘애’는 창자, 초조한 마음을 뜻해요. 애간장이 타다, 애를 먹다, 애달프다, 애처롭다, 애틋하다, 애끓다, 는 표현에서도 느껴지듯 마음의 어려움을 내포하지요. 반면 ‘수고하다’는 일이 힘들어 육체적으로 고되다는 느낌이 강해요. 그래서 ‘수고하다’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어울리고, ‘애쓰다’는 윗사람에게 어울린다고 합니다. 이런 설명은 아마도 유교적 위계 문화, 몸을 쓰는 일은 아랫사람의 몫이라는 인식, 정신적인 면을 육체적인 면보다 귀하게 여기는 오래된 관념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저의 머리와 가슴에 와닿지 않아요. 일단 육체노동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부분이 다소 거북합니다. 이제는 운동선수나 무용수, 가수가 육체노동을 한다고 철학자나 문필가보다 천대시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언어가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마저 드는 부분이지요.


오래된 관념에 대해 생각하다 수고의 어원을 살펴보니 고통을 받아들이다, 수고(受苦)라고 나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수고를 고유어로 처리되고 있지만, 受苦의 불교적 의미는 괴로움을 받아들여 감수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구분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아랫사람이 괴로움을 감수한 역량을 보고 수고라고 함은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표하는 것입니다. 이런 깊은 평가를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건 적절하지 않겠지요.


국립국어원의 표준 언어 예절에서도 ‘수고하다’는 표현이 상대방의 노고를 평가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기에 윗사람에게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합니다. 불교적 가르침과 표준 언어 예절의 설명에 살짝 통하는 면이 있는 듯하지요? 동시에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의 답변 중에 보면, 수고한다는 말이 워낙에 많이 쓰이고 있고, 더는 상대가 한 일에 대해 평가하는 듯한 표현이라는 인식은 없어서 언어 예절에 어긋난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일상 속 ‘수고하다’는 표현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 궁금해지네요.


그런데 우리가 먼저 자리를 뜰 때 “고생하세요.” 하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고생하세요는 어쩐지 더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따져보면 저주에 가까운 명령형이잖아요. 물론 나쁜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압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만 하기엔 딱딱하고 먼저 나가려니 미안한데다가, 상대의 노고를 알아준다는 마음은 표하려다 보니 “고생하세요.” 같은 어색한 조합이 나왔겠지요. 이제 익숙해져서 이상하다는 걸 모르거나, 이상하다는 걸 알아도 마땅한 대체어를 찾지 못해 계속 쓰는 것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선생님, 수고했어요.”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저는 그날도 진도를 나가고 학생들의 낯선 질문에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어요. 여느 때처럼 내내 서서 수업을 진행했고 글씨를 칠판 위에 몇 번이고 쓰고 지웠지요. 계속 물을 마셔가며 말해도 수업이 끝날 즈음에는 살짝 목소리가 갈라졌어요. 그런 저를 본 학생은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는지도 모릅니다. 언어 예절에는 어긋났을지언정, 학생은 그날 진심을 담아 저에게 위로를 건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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