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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별 Sep 15. 2022

내 글을 써보려고 한다.

글만 봐도 토할 것 같던 시절을 정리하며...

시작.


대충 잡아서 15년 전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재미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음향 잡지사에서 일했다. 시간이 흘러 연차가 쌓이고, 점차 회사에서 내 존재감이 느껴질 무렵부터 

마감만 끝내면 페이지도 제각각인 수많은 꼭지의 기사를 교정까지 마치면, 글만 봐도 오바이트가 쏠렸다. 


편집장 3년 차.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음향'으로 착각하고 들어섰던 세계.

내가 만드는 잡지가 음향 필드를 넘어 일반인도 알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고 쉼 없이 일했다. 

결론적으로, 회사와 유쾌하지 않은 이별을 경험했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삼 개월 후 이직한 회사에서는 스카우트를 제안한 사람에게 사기까지 당했다. 


한 달 한 달 쳇바퀴처럼 살다가 인생에 원하지 않은 공백이 생기고, 잠시 멈춤 상태가 되었다. 

회사에 충성하고 정치하고 싫은 사람과도 억지로 관계를 맺느라 도무지 낼 수 없었던 시간이 생기자 

비로소 나를 볼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회사 배경을 벗은 나는 이미 석 달 전, 아버지 장례식을 통해 이를 철저하게 경험했다. 정글 같은 사회 속에서 내가 내세울만한 무기가 있을까? 나는 이제 명함도 직책도 없고, 경력은 그저 나이 먹었다는 증거라는 현실과 마주했다. 


한 동안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얼 새로 시작하자니 조직에 있을 때 크게 문제없어 보였던 나이, 나이에서 현타가 온다.  한동안 채용공고를 이메일로 받아봤다. 내가 들어갈 자리가 거의 안 보인다. 

대부분 회사는 MZ세대, 요즘 것들만 찾는다. 이들이 그 이전 세대보다 낫다거나 확연히 앞선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데. 오히려 유튜브나 3분 이내 스낵 정보에 길들여져 문해력이 떨어지고 깊이 있는 사고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 사람이  회사가 원하는 인재라니. 한숨 속에 이메일을 지우기를 반복했다. 


나의 부모님 두 분 모두 편찮으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머니는 더 약해지셨다. 

이직한 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불현듯 '요양보호사'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교육 과정 중 오미크론에 감염되어 두 달 후 시험을 보았고, 합격하여 현재는 자격증 발급만 기다리고 있다. 


주변에서 물어본다. "병원에 취직하시려고요?"

천만에.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노후 대책이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십몇 년 전 개설한 블로그를 다시 살리려고 열어봤지만, 그 시절 글을 다시 오픈하고 싶지 않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이제부터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 없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다. 

명절마다 우리 집은 기름 냄새와 각종 음식 냄새로 가득했다. 제사 음식이라기보다는 식성 좋은 아버지 때문이다. 정말 몇 년 만에 두 시간을 내내 전을 부쳐봤다. 

우리 세 가족... 홀로 되신 어머니, 그리고 오빠가 좋아하고 잘 먹어준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무척 좋아하셨겠지...


내일은 음식 장만을 더 해서 추석날, 아버지 위패를 모신 절에 싸가 아버지도 맛보시게 해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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