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 불꽃처럼 타오르는 악
간혹 뉴스에서 끔찍한 사건을 만나면 먼저 눈을 닫게 된다. 역사 이래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었겠지만, 현장과 범죄자의 모습을 알면 상상과 자극은 더 선명해진다. 예상과 다르게 공개된 얼굴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어둡고 비열한 인상이 슬며시 드러나기도 하지만, 사악하거나 기괴한 얼굴이 아니라 더 섬뜩할 때가 있다. 재작년 계엄의 충격보다 더 공포스러웠던 것은 서부지법폭동과 동조하는 시위자들의 모습이었다. 숨어있던 악의 무리들이 제멋대로 날뛰는 모습, 사회곳곳에서 드러나는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소위 엘리트들의 민낯, 그리고 최근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그 무리의 얼굴에서 떠오른 그림이 있다.
어둠 속에서 모여든 셋, 가운데 청년은 촛불에 불을 붙이려고 숯에 입김을 불어넣는다. 마치 살아 움직이듯 훨훨 타오르는 불꽃은 청년의 얼굴을 유난히 하얗게 물들인다. 분칠 한 듯한 얼굴과 당시 유행한 주름 칼라로 인해 청년은 광대처럼 보인다. 왼편에 호기심 어린 눈의 원숭이, 오른편에 실실 웃는 사내의 시선도 모두 불꽃을 향해 있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로 눈길을 끄는 이 작품은 16세기의 화가 엘 그레코의 <우화>다.
'그리스인'을 뜻하는 엘 그레코(El Greco, 본명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1541~1614)는 이 그림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미술사에서 가장 독특하고 개성적인 양식을 남겼다. 그리스 태생의 화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을 흡수한 후, 흥미롭게도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엘 그레코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일부였던 칸디아 공화국(현 크레타)에서 태어나, 비잔틴 문화권인 이곳에서 이콘 화가가 되었다. 1567년 26세에 세상의 상인과 물건들이 모이는 베네치아로 향했고, 활기 넘치는 구성과 화사한 색채를 구사한 티치아노와 틴토레토 등 베네치아 대가들의 영향을 받는다.
1570년 야망을 품고 향한 로마에서 엘 그레코는 고대와 르네상스의 유산뿐만 아니라 파르미자니노와 같은 매너리즘 화가들의 작품을 접했다. 종교계와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후원을 받고자 했지만, 보수적이고 경쟁이 심한 로마에서 거침없는 이방인 화가는 큰 주문을 받지 못했다.
이 시기 엘 그레코는 <우화>의 중심 모티프인 <불씨를 부는 소년>을 그렸다. 소년은 불씨를 입김으로 살려내 양초에 붙이려고 한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꽃, 그 빛으로 투명해진 손의 묘사가 돋보인다. 흑암 속에서 온기 가득한 빛이 소년을 환희 비추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사랑스럽다. 이 그림은 고대 알렉산드라의 화가 안티필루스가 그렸던 주제를 재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의 인문과 자연학, 기술, 예술 등을 집대성한 《박물학 Historia Naturalis》에서 대플리니우스(23~79)는 이 작품을 언급하며 특히 밤의 조명 효과 극찬했다. 결국 엘 그레코는 이 작품을 통해 고대 화가의 기술을 살린 자신의 기량을 증명한 셈이다. 17세기 바로크의 문을 연 카라바조에 앞서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를 실감 나게 묘사한 작품이다.
1577년 정착한 톨레도에서 엘 그레코는 수도원과 개인 후원자가 주문한 제단화와 초상화를 쏟아냈다. 그만의 특징적인 길쭉하고 격정적인 몸짓, 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는 후원자를 매혹했고, 곧 톨레도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1580년 전후로 엘 그레코는 <우화>를 여러 점 그렸다. 여기서 '불씨를 부는 소년'은 장난꾸러기 원숭이와 광대 같은 차림의 사내와 함께 등장하며 다른 맥락에 놓인다. 원숭이는 사악함과 저속한 본능을, 바보 혹은 광대는 혼돈과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생명력과 파괴력을 동시에 지닌 불(꽃)은 부정적인 의미를 향한다. 그래서 촛불에 불꽃을 붙이는 것은 성적인 욕망을 상징하며 정욕에 대한 결과를 경고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의미를 확장해서 바라볼 수도 있다. 죄악의 배경은 대체로 어둡고, 이렇듯 순진하고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악덕과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원숭이와 광대는 악행의 특징을 드러낸다. (원숭이가 상징하는)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은 보통 그 부싯돌이다. 귀족이나 군주를 즐겁게 하기 위해 고용되었던 광대나 바보는 법과 질서를 상징하는 왕의 권위를 더 돋보이기 위해 초상화에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이성과 숙고와는 가장 먼 존재로 여겨진 이들은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지금의 쾌락을 추구한다. 지혜로운 자들이 모이면 지혜가 커지듯이, 어리석은 이들도 모일수록 악행은 더 커지고 대담해진다. 생명을 살리고 빛을 내는 불은 여기서 뜨겁게 경고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다 타인을, 결국은 자기 자신을 집어삼킬 수 있다고. 반드시 심판받지 않다라도 죄는 때때로 올라오는 후회나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짓눌림, 악몽으로 되돌아온다.
엘 그레코는 학자들과 자주 교류하며 고전 자료를 모은 작업 도서관을 갖추고 주석을 쓰기도 했던 박식한 사람이었다. 베네치아와 로마를 거치며 소묘보다 색채를 중요시했고, 내면의 빛이 자신의 비전을 인도하도록 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가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던 것은 놀랍게도 인간됨됨이였다. 아마도 톨레도 체류 초기 여러 점 그렸던 <우화>는 죄의 길에 들어가지 않도록 화가를 도왔을지도 모른다.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를 자청한 스페인의 종교적 수도 톨레도에서는 당시 반종교개혁의 여파로 이단심문소의 비이성과 불의가 활개를 치는 암울한 시대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의 성화 속에서 탄식하고 눈물짓는 성인들의 모습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방인 화가는 이단심문소에 죄 없이 잡혀간 그리스인을 돕기 위해 나서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간의 품성이 배어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열망은 특히 그의 초상화에서 빛을 발한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악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어지는 겨와 같아라.
그러므로 악인들이 심판 때에,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감히 서지 못하리라.
의인들의 길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르기 때문일세." (시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