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오키프의 길 그림

: 삶이 그려온 추상화

by 권연희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가게 만든 건 정확히 그림보다 그림에 대한 글 때문이었다. 우리와는 먼 화가와 시대의 이야기는 지루한 일상과 삶의 문제를 벗어나게 하는 탈출구가 되었다. 그림의 막연한 느낌과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글은 또한 여태 느껴보지 못한 재미와 풍요로움을 안겨주었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은 한두 해가 지나고 논문을 쓰면서 와장창 깨졌다. 그래서 졸업 후에 별 숙고 없이 다가온 기회에 따라 미술계의 이런저런 일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랄수록 나에게도 잠시 꿈이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책을 읽고 산책하는 루틴 속에서 내 안에 부풀어 오른 씨앗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기적처럼 길이 열렸다. 책을 쓴 적도 강의 경력도 없는 내게 강의를 한 번 해보라고. 아이들의 답사 여행과 학부모 교육을 위해 일하셨던 그분은 지원이 거의 없는 척박한 커뮤니티센터를 맡아 동네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며 배우는 장을 정성껏 만드셨다. 많은 이들이 그곳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주변과 나누며 꿈을 펼쳐갔다. 이제 일을 접으시고 아이 셋은 독립해 지구촌 여기저기를 걷고 계신 그분을 오랜만에 만났다. 환갑의 인생을 해 돌아보니 그간의 관심과 일과 경험이 결국 마음속에 품었던 커뮤니티의 장을 만드는 길로 수렴되었다고. 조지아 오키프처럼 열렬한 여행가이기도 한 그분의 궤적이 화가가 노년에 그린 그림처럼 느껴졌다.



조지아 오키프, <풍경을 지나가는 길>, 1964년, 캔버스에 유채, 45.7 x 76.2cm, 토마 재단, 산타페

겹겹이 서 있는 산 전경에 굽이진 하늘색 길이 펼쳐져 있다. 멀리 푸른 산맥은 상단에 맞닿아 있고, 중간에 보라색 산맥 한켠에서는 안개가 차오른다. 이렇게 꼭대기가 평평한 탁자 지형의 언덕 메사(mesa)는 오키프가 반평생을 보낸 뉴멕시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단순한 형과 색으로 축약된 웅대한 산맥은 천상의 세계처럼 아득하고 고요하다. 흐르는 강물 같은 길은 오키프가 아름답다고 여긴 붉은 황무지 언덕을 굽이굽이 지나간다.




1929년 미국 남서부에 있는 뉴멕시코에 여행온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이곳이 '나의 집'임을 직감했다. 뉴욕 미술계의 반응에 지쳐가고, 남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외도로 파경에 이를 무렵이었다. 투명한 공기와 밝은 햇살에 빛나는 텅 빈 황무지와 거대한 산맥, 광대한 하늘이 빚어내는 풍광에서 그녀는 진정한 자유와 위안을 느꼈다. 점차 이곳에 더 많이 머무르면서 오키프는 사막과 협곡의 풍경, (흙벽돌로 지은 부드러운 형상의) 어도비 건축물과 동물의 뼈 등을 소재로 한 그녀만의 표현을 발전시켰다. 193,40년대 오키프는 가장 창의적인 작품들을 쏟아냈고, 1946년 뉴욕 MoMA에서 그녀의 회고전이 열린다. 그 해 애오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오키프는 뉴욕의 삶을 정리하고 1949년 뉴멕시코에 영구히 정착한다.



조지아 오키프, <메사와 동쪽 길>. 1952년, 캔버스에 유채, 66 x 91.4cm,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 산타페


뉴멕시코에서 오키프는 두 집을 오갔다. 고스트 랜치 부근에 집은 뒷마당에 병풍처럼 서 있는 울긋불긋한 절벽에 매료되었다. 1945년 구입해 3년간의 개보수로 공을 들인 아비키우(Abiquiú)의 집은 차마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어도비 건물로, 수집한 미술품과 자연물로 장식되고 정원까지 갖춘 그녀만의 독립된 세계였다. 특히 작업실의 거대한 창은 시간과 날씨와 계절에 따라 펼쳐지는 자연의 극장과도 같았다. 여기서 마주하는 거대한 메사 페데르날(Cerro Pedernal)은 세잔의 생 빅투아르산처럼 오키프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불어넣었다.

<메사와 동쪽길>은 아비키우 집 침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보여준다. 멀리 오르락내리락하는 도로는 어두운 보라와 이끼색의 메사를 끼고돌아 전경에서 우리 쪽으로 굽어져 있다. 주변에 하얀 털이 씨앗을 덮고 있는 미루나무(cottonwood)는 깃털처럼 잎사귀를 흩날린다. 차마강을 따라 뻗어 있는 이 도로는 아비키우와 주변에 소도시, 에스파뇰라나 산타페 등으로 이어진다. 오키프가 식료품을 구입하거나 일을 보러 오고 간 길은 화가를 외부 세계와 연결해 주는 선이기도 했다.



조지아 오키프, <길 - 안개 낀 메사>, 1961년, 캔버스에 유채, 41.3 x 30.8cm, 시카고 미술관

오키프는 어느새 메사 주변에 길게 뻗어있는 에 사로잡혔다. 사진을 찍다가 길이 공중에 떠있는 듯한 모습이나 집을 향해 달려오는 듯한 곡선에 매료된 것이다. 잔뜩 흐린 날의 풍경을 담은 <길 - 안개 낀 메사>를 보자. 상단에 보랏빛의 메사가 살짝 보이고, 하단에는 하얀 도로가 사선으로 뻗어 있다. 자욱한 안개는 메사와 굽이진 도로, 미루나무의 흔적까지 삼켜버렸지만, 신비로운 분위기는 보는 이를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밝고 쾌청한 날이 대다수인 뉴멕시코에서 이런 특별한 날씨는 풍경을 가물가물한 추상화로 만들어버렸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마주한 경험이 있다면, 이 그림이 더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가지 않아서, 혹은 안개처럼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하는 장애물 때문에 막막하고 두려울 때가 있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결국 어디로 향하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물쭈물하기보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 내 길이 만들어진다. 안개가 짙을수록 헤쳐 나온 후의 기쁨은 더 또렷하게 남는다. 아무리 짙은 안개도 영원하지 않고, 때론 낯선 이가 손을 내밀며, 방향이 어긋났다면 각도를 틀면 된다. 길을 잃고 방황하더라도 자신을 믿는 마음이 있다면 그 여정은 흥미진진한 모험이 될 수 있다. 이상한 나라에서 길을 묻는 앨리스에게 체셔 고양이는 말한다. 어느 길로 가든 '충분히 오래 걸어가기만 하면 ' 어딘가에 가닿을 수 있다고.

"선과 색이 결합되어 무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제게 그것이 회화의 근본입니다. 추상은 종종 제 안의 무형적인 것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는 형태이며, 저는 물감을 통해서만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조지아 오키프, <겨울 길 I>, 1963년, 캔버스에 유채, 55.9 x 45.7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겨울길 I>에서는 그 풍경에서 이제 길만 남았다. 왼쪽 상단에서 꺾인 선은 부드럽게 굽이지며 캔버스를 가로지른다. 연갈색에서 점차 짙어지는 길은 부풀어 올랐다가 다시 얇아진다. 크림색 바탕은 소복이 쌓인 눈일 테고, 우아하게 뻗은 길은 보는 이를 길 위에 서게 한다. 멀리 울퉁불퉁한 길에서 집으로 향할까, 아니면 여기서 시작해 저 멀리로 떠날까. 어느 방향으로 걷든 텅 빈 겨울의 고요 속에서 평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키프가 집에서 매일 바라보았던 길은 그렇게 세상을 향한 갈망과 그리움, 떠남과 도착이라는 감정까지 품게 되었다.


그림에서 서예와 같은 필선,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여백은 오키프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동양 미술을 반영한다. 또한 당시 미국을 휩쓴 추상표현주의나 미니멀리즘의 언어와도 상응한다. 오키프가 말했듯이 선과 색을 결합한 추상적 표현은 사실적인 묘사에는 담을 수 없는 다양한 감성과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이 그림에서 광활하고 고요한 남서부의 겨울 풍경을 느끼거나 빙상 위 피겨 선수의 우아한 미끄러짐을 연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인생길로 치면 명료한 집중력으로 내달리는 이의 흔적, 분명한 계획과 실행으로 목표에 이르는 궤적도 상상하게 한다.


일상의 길 위에서 사람마다 드러나는 개성도 흥미롭다. 지도를 잘 보지 않는 나는 대충 알고 있는 장소를 어슬렁거리다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내가 답답한 빠릿한 친구는 최단거리를 안내한다. 비슷한 친구와 걸으면 마음이 편하고, 반대인 친구와 동행하면 몸이 편하다. 인적 없는 길을 좋아하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종종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자고 한다. 삶을 뒤돌아보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뒤늦게 꿈을 좇고 있으니, 나의 길은 <겨울길 I>처럼 우아하고 흔들림 없는 선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아마도 오키프가 하늘에서 바라본 물길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조지아 오키프, <강에서 - 옅은 색>, 1959년, 캔버스에 유채, 105.4 x 79.7cm,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 산타페


구불구불한 강은 캔버스를 세로로 가로지르고, 여러 작은 개울이 곁가지처럼 갈라져 흐른다. 강둑 따라 퍼지는 연두의 풍부한 색조, 주변에 연분홍과 연보라 등 옅은 색들의 향연이 황홀한 느낌을 불어넣는다. 완연한 봄의 팔레트는 따듯한 햇살과 촉촉한 공기, 싱그러운 새싹과 봄꽃들의 향취로 이끈다. 화가는 분명 이 환상적인 봄기운에 취했을 것이다.


오키프는 1959년 하늘에서 바라본 강줄기 연작을 다양한 매체로 제작했다. 종이에 볼펜으로 즉흥적으로 그린 스케치를 목탄으로 모사하며 자유로운 곡선과 풍부한 음영을 더했다. 드로잉을 바탕으로 오키프는 색채에 감성과 느낌을 담아 유화로 강 풍경화를 완성했다. 예전에도 높은 언덕에서 바라본 차마강을 그리곤 했지만, 이 항공뷰 연작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경험이 쌓이면서 탄생했다. 뉴멕시코에 거주하면서부터 포드 자동차를 사서 중서부를 돌아다녔던 오키프는 60대인 1950년대부터 남미와 유럽을 너머 아시아와 인도, 중동까지 종횡무진 세계여행을 다녔다. 1970년대부터 차차 시력을 잃어갔지만 90살까지 여행을 지속했고, 그녀의 세계와 시선과 작업은 그렇게 계속 확장되었다.


<노랑과 분홍이었네>, <파랑 B> 등의 제목으로 전시된 강줄기 연작을 보고 관객들은 어리둥절하다 '나무인가?', '강줄기로군!' 하며 반응했다고 한다. 반전은 위에 <강에서 - 옅은 색>에 있다. 이 작품은 비행기에서 바라본 강이 아닌 주운 나뭇가지를 보고 그린 것으로 드러났다. 하늘에서 바라본 굽이치는 강은 종종 나무 몸통이나 가지와 닮은 형태를 지녔기에. 이런 모호성은 보는 이를 더욱 매혹했다. 처음에 본 <풍경을 지나가는 길>처럼 오키프는 때때로 길을 흐르는 강처럼 그리기도 했다. 뉴멕시코에서 오키프는 그 붉은 황무지를 걸으며 작은 것에 집중하는 동시에 광대한 자연을 조망하며 작업했다. 메마른 곳이지만 강물처럼 흐르며 그곳만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작품을 탄생시켰다. 나에게 길을 열어주신 그분도 한 명 한 명의 개성과 가치를 살려내면서 동네를 따듯하고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어 주셨다. 나도 천천히 강물처럼 흘러가며 꿈꾼다. 언젠가 나의 물줄기가 차고 넘쳐 주변을 비옥하게 만들기를. 더 멀고 척박한 땅까지 가닿아 내가 가진 것을 전할 수 있기를. 오키프가 한때 바라본 이 맑고 깊은 강물처럼.



조지아 오키프, <파랑 B>, 1959년, 캔버스에 유채, 76 x 101cm과 76.2 x 91.4cm, 밀워키 미술관


조지아 오키프, <노랑과 분홍이었네 II>, 1960년, 캔버스에 유채, 101.6 x 76.6cm, 시카고 미술관



지난번에 쓴 글이 부족해 보완했습니다. 오키프의 나무 그림들이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imlostinart/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