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오키프의 <로렌스 나무>

: (몸과 마음으로) 다르게 보라는 초대

by 권연희


조지아 오키프, <로렌스 나무>, 1929년, 캔버스에 유채, 78.7 x 99.3cm, 워즈워스 아테네움 미술관, 코네티컷 하트퍼드


풍경화는 화가가 작업하며 때때로 서 있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리고 화가의 눈으로 장면을 바라보게 한다. 이질적인 풍광이나 색다른 시선이라면 그 앞에 조금 더 머무르게 된다. 커다란 꽃 그림으로 유명한 조지아 오키프의 나무 그림들도 그런 힘이 있었다. 그 가운데 소나무를 그렸다는 <로렌스 나무>는 특별했다. 하릴없이 보는 이를 별이 빛나는 밤, 나무 아래 눕혀버리니까. 하늘로 치솟은 갈색의 나무줄기와 동맥처럼 뻗은 가지들, 먹구름 같은 잎의 무리, 사파이어색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우리를 각자만의 기억과 몽상으로 이끈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미국 중서부 위스콘신주에서 부농의 딸로 태어나 광대한 들판과 자연의 리듬 속에서 자랐다. 미술 개인 교습을 받으며 십 대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소녀는 시카고와 뉴욕의 명문 학교에서 미술을 배웠다. 그런데 대가들의 작품이나 대상을 모사하는 전통적인 교육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리고 싶었던 오키프에게 맞지 않았다. 아버지의 파산과 어머니의 병세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녀는 생계를 위해 상업 미술가로 일했다.

조지아 오키프, <평원에 비치는 빛 II>, 1917년, 종이에 수채, 30.2 x 22.5cm, 에이먼 카터 미술관, 포트워스

미술 교사의 자질을 쌓기 위해 다시 학교에 간 오키프는 아서 웨슬리 다우(Arthur Wesley Dow, 1857~1922)의 이론을 접하며 미술에 대한 열정을 되살린다. 동양미술과 아르누보에 영향을 받은 다우는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형태를 단순화하고, 특히 선과 형태, 색조의 조화로운 구성을 강조했다. 갓 번역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1)도 오키프에게 영감을 주었다. 음악 같은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회화의 힘, 특히 색의 감정적인 잠재력에 동감했다. 하지만 오키프는 회화가 정신성보다는 감각(sensation)의 표현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이런 배움을 바탕으로 오키프는 서부 텍사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광활한 서부 황야의 자연 현상을 연구하며, 오키프는 보고 느낀 것(경험)을 내면화해 이를 표현했다. 1917년의 작은 수채화는 일출로 번져가는 빛의 광휘와 온기를 최소한의 언어와 구성으로 전한다. 자연은 그녀를 통해 추상적인 구성으로 응축되었다.



조지아 오키프, <가을 나무-단풍나무>, 1924년, 캔버스에 유채, 91.4 x 76.2cm/ <잿빛 밤나무>, 1924년, 캔버스에 유채, 91.4 x 76.2cm


이 시기 오키프의 추상적인 목탄 드로잉이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미국 근대 사진의 아버지이자 뉴욕에서 291 갤러리를 운영한 스티글리츠는 세잔과 마티스, 피카소 등 아방가르드 미술을 미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1917년 291 갤러리에서 오키프의 전시가 열리면서, 둘은 점차 가까워진다. 스티글리츠의 격려에 힘입어 다음 해 서른의 오키프는 뉴욕에서 전업작가의 길을 걷는다. 유명한 사진작가이자 유부남인 스티글리츠와 스물셋 연하의 무명 화가는 결국 연인이 되었다. 오키프는 스티글리츠를 통해 미국의 모더니즘 미술가로 서게 되지만, 그의 정부이자 뮤즈라는 프레임 속에서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둘은 뉴욕 도심에서 살면서 스티글리츠의 본가가 있는 북부 조지호 근처에서 여름을 보냈다. 이 시기 오키프는 고층건물이 들어서는 뉴욕뿐만 아니라 조지호의 풍경과 나무, 꽃 등을 소재로 자신만의 시각과 표현을 발전시켰다. 스티글리츠의 이혼으로 둘이 결혼(1924)한 해에 그린 가을의 단풍나무를 보자. 구불구불한 회색 줄기에서 가지가 춤을 추듯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주변에 빨강과 자주, 주홍의 여운은 붉게 물든 나뭇잎을 연상시킨다. 나무의 뼈대를 포착한 유려한 곡선과 추상적인 색채 표현은 단풍을 색다르게 감각하게 한다. 한편 <잿빛 밤나무>는 새벽녘의 환상적인 하늘을 배경으로 사람처럼 굳건하게 서 있다. 오키프는 두 작품의 구성과 색채를 변주하며 다양한 뉘앙스를 탐구했다. 이런 연작의 작업 방식은 그녀의 생애 내내 지속된다.


“사실주의는 가장 사실적이지 않다. 세부는 혼란스럽게 한다. 선택과 제거, 강조를 통해서만 사물의 진정한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 - 조지아 오키프(1922)



조지아 오키프, <갈색과 황토색 잎들>, 1928년, 캔버스에 유채, 101.6 x 70.2cm/ <분홍과 회색 참나무잎들>, 1929년, 84 x 45.7cm


1920년대 오키프의 가장 흥미롭고 독창적인 추상화와 유명한 꽃 그림이 탄생한다. 특히 밀착해서 본 거대한 꽃은 화가가 바란대로 대중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덜 알려져 있지만 오키프는 조지호 주변에서 수집한 나뭇잎과 돌, 조개껍데기도 비슷한 방식으로 그렸다. 특히 30여 점에 달하는 나뭇잎 초상화는 흔하디 흔한 나뭇잎을 색다르게 바라보게 한다.


<갈색과 황토색 잎들>은 하얀 바탕에 열 배 정도 확대된 잎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감각적인 곡선과 입체감을 더하는 풍부한 색조는 나뭇잎이 그간 수혈받은 햇살과 온기를 전한다. 을 가장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여긴 오키프는 원하는 감정과 경험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준비된 색채 카드에서 세심하게 색을 골랐다. 그런데 계속 바라보다 보면 나뭇잎은 어느새 나무처럼 보인다. 산책과 탐험, 수집을 즐겼던 오키프는 작은 오브제를 세밀히 관찰하는 동시에 대자연의 풍광을 조망하며 유사한 형상과 리듬을 발견하곤 했다. 이후에 상공에서 바라본 강줄기가 나무줄기로 보이는 것처럼. 오키프는 소우주와 대우주를 오가는 렌즈를 발전시켰고, 이를 결합한 풍경은 마치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뭇잎 그림은 꽃과 함께 연출되거나 <분홍과 회색 참나무잎들>처럼 자연색과 다른 환상적인 색채로 변주되기도 했다. 근접해 확대한 방식, 분절과 잘린 구성은 당시 모더니즘 사진의 언어와도 유사하다. 스티글리츠가 오키프의 몸과 손을 밀착해 찍은 사진뿐만 아니라, 폴 스트랜드가 일상의 사물을 클로즈업해 추상적 구조를 드러낸 사진의 언어가 그녀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추상과 사진의 수사가 더해진 오키프의 그림은 화가의 내면화된 경험을 시적이면서도 강렬하게 전달한다.


1920년대 작품이 팔리고 미술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의 그늘에서 차차 벗어난다. 여성성과 에로틱한 시선에서 작품을 해석하는 비평계와 스티글리츠의 외도로 오키프의 몸과 마음은 황폐해졌다. 마천루가 솟아오르는 뉴욕과 조지호의 풍요로운 자연도 더 이상 영감을 주지 못했다. 1929년 오키프는 미대륙을 가로질러 남서부의 뉴멕시코로 향한다. 화가는 투명한 공기와 밝은 햇살에 빛나는 텅 빈 황무지와 광활한 하늘, 거친 협곡이 바로 자기 집처럼 느껴졌다. 아메리카와 멕시코 원주민의 전통이 남아 있는 이국적인 환경도 매력적이었다. 이곳에서 진정한 위안과 자유를 느낀 오키프는 이후 뉴욕과 뉴멕시코를 오가는 삶을 산다.



조지아 오키프, <로렌스 나무>, 1929년, 캔버스에 유채, 78.7 x 99.3cm, 워즈워스 아테네움 미술관, 코네티컷 하트퍼드


<로렌스 나무>는 삶의 전환점이 되는 뉴멕시코 여행에서 오키프가 그린 첫 작품이다. 그녀는 한 때 영국의 소설가 D. H.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가 거주했던 예술가촌 타오스의 집 앞 폰데로사 소나무 아래 누워 바라본 모습을 그렸다. 이곳에서 15개월 동안 글을 썼던 소설가에게도 이 나무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요하고 무심하게 살아 서 있는 집 앞의 큰 소나무... 문을 열고 나가면 수호천사와 같은 나무 몸통이 거기에 있다." 한 해 전에 출간된 그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여성의 성적 욕망과 쾌락을 적나라하게 담아내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로렌스를 만난 적은 없지만 마음속의 목소리를 낸 작가를 기리고 싶었던 것일까. 그림은 우리를 오키프처럼 나무 아래 누워 로렌스를 우러러보게 만든다.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나뭇가지와 검은 잎무리는 거대한 우산처럼 보는 이를 감싼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몽환적인 밤하늘은 자연의 경이를 마주하게 한다. 고독 속에서 오키프도 마음속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까. 남편이자 협업자인 스티글리츠와의 관계에서 독립해 이제 온전히 나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이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 가장 큰 이유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독특한 시점에 있다. 그것도 별이 빛나는 밤에. 게다가 소장처에서 제공하는 이미지와 전시된 방식은 예상과 다르게 (대표 이미지처럼) 거꾸로 선 모습이다. "하늘의 별과 함께 이 나무가 당신 머리 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게" 그렸던 화가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그 방식이 더 현기증을 일으키면서도 풍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오키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창의적인 시선은 화가의 도전적인 삶의 태도와도 연결될 것이다.



조지아 오키프, <제랄드의 나무 I>, 1937년, 캔버스에 유채, 101.6 x 76.2cm,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 산타페

새로운 시선을 갖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 밤에 산책하다 나무 아래 누웠기 때문에 <로렌스 나무>가 탄생한 것처럼. 사선으로 뻗은 나무는 오키프가 뉴욕에서 그린 일련의 마천루와도 유사한데, 그녀는 인상적인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위험한 밤거리를 활보했다. 뉴멕시코에 터를 잡기 시작한 해, 오키프는 포드 자동차를 사고 운전을 배워 뉴멕시코의 황무지를 돌아다녔다. <제랄드의 나무 I>를 그릴 때 그랬듯이, 오키프는 햇살을 피해 작업실로 개조한 자동차 안에서 그림을 그렸다. 고사한 듯한 노간주나무는 뉴멕시코 사막에서 종종 발견되는데, 그림처럼 우아하고 단단하게 뻗어나간 자태가 그림처럼 매혹적이다. D.H. 로렌스의 지인인 아일랜드 작가 제럴드 허드의 체류를 기억하며, 오키프는 나무의 온전한 형태를 담았다.


운전하기 시작했을 때 오키프는 이곳만의 특이한 검은 십자가상과 흙벽돌로 지은 원주민 양식의 어도비(Adobe) 건축물을 다루었다. 사막에서 수집한 동물의 뼈를 뉴멕시코의 황량한 풍경이나 꽃과 병치하기도 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다양한 윤곽과 색채의 언덕이나 협곡도 이곳만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탐험과 관찰의 경험이 쌓여가면서, 오키프의 시선과 상상력, 디자인 감각은 더욱 확장되었다. 193, 40년대 그녀는 가장 창의적인 그림들을 쏟아내며 명성과 인기를 동시에 얻었다.


조지아 오키프, <어두운 나무줄기>, 1946년, 캔버스에 유채, 101.6 x 76.2cm, 브루클린 미술관

오키프가 환갑을 바라본 1946년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에서 그녀의 회고전이 열렸고, 곧 애증의 남편 스티글리츠가 세상을 떠났다. 그 해에 그린 <어두운 나무줄기>는 나무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떨어져 자란 두 쌍의 나무줄기는 가장자리가 잘린 추상적인 형상이다. 무슨 나무인지 알길 없고, 사람의 몸통이나 현미경으로 바라본 모낭의 털처럼 보이기도 한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V자로 뻗어나간 부드러운 나무줄기의 리듬이 느껴진다. 생명의 섬세함과 성장의 의지도 전해진다.


스티글리츠의 죽음으로 오키프가 엄청난 절망과 해방을 느꼈던 해에 제작된 이 작품은 개인적인 맥락에서 이야기되기도 한다. 둘은 각자의 삶을 살면서 부부의 연을 끊지 않고 말년까지 긴밀하게 교류하며 서로에게 의지했다. 그래서 뒤쪽에 어두운 줄기는 세상을 떠난 남편으로, 앞쪽 나무는 뉴욕과 뉴멕시코에서 양분된 삶을 살았던 오키프를 암시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스티글리츠의 유산과 작품 정리를 마친 1949년, 오키프는 뉴욕의 삶을 뒤로하고 뉴멕시코에 영구히 정착한다.


"진짜로 살아있는 형태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을 통해 생명체를 만들어내려는 개인적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조지아 오키프, <붉은 나무, 노란 하늘>, 1952년, 캔버스에 유채, 76.2 x 121.9cm, 보스턴 미술관


독창적인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또한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과도 연결된다. 오키프가 30대 초인 1920년에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을 정도로, 그녀는 여성의 활동과 표현이 제한적인 시대를 살았다. 그럼에도 오키프는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을 알았다. 화가가 되고 싶다는 것, 결혼을 꿈꾸며 예쁘게 치장한 친구들과 다른 자기만의 패션을 고수했으며, 학교에서 배우는 대로 그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디에서건 밤낮으로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하고 싶은 말을 했으며, 입고 싶은 옷을 입었다(독특한 패션으로 유명했다). 한창 잘 나가던 시기에 오키프는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벗어나 서부 황무지에서의 독자적인 삶을 개척했다. 대공황과 세계대전, 냉전의 불안한 시대를 살았고 1970년대부터 시력을 차차 잃어가면서도, 자기식대로 탐험하고 작업하는 삶을 90대까지 이어갔다. 자동차로 미대륙 구석구석을 여행하다가 그녀는 1951년부터 유럽과 남미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를 다닌 열혈 여행가였다. 결국 오키프를 통해 유럽의 전통에서 벗어난 미국적인 풍광과 미학의 모더니즘이 탄생하게 되었다.


오키프가 65세에 그린 <붉은 나무, 노란 하늘>은 해 질 녘 멀리 페데르날(Pedernal)을 배경으로 전면에 고사한 듯한 노간주나무가 등장한다. 오키프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준 웅대한 메사 페데르날은 여기서 작게 묘사된 반면 눈앞에 거대한 노간주나무는 화면을 가로 세로로 가로지른다. 오랜 풍파에 주름 지고 상해 있지만, 마치 두 팔을 벌린 듯한 가지로 인해 나무는 사람처럼 보인다. 자연색과는 다른 강렬한 선홍빛 색조와 특히 길게 뻗은 가지에서 자기만의 이상을 향해가는 의지와 열정이 느껴진다. 마치 화가 자신처럼. '지각의 선구자'인 오키프의 그림은 익숙한 시선에서 벗어나 자연의 새로운 아름다움과 신비를 경험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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