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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Dec 06. 2024

이반 시슈킨의 <겨울>

: 겨울숲이 노래하는 러시아의 기백


첫눈으로 내린 폭설로 마법처럼 세상은 단숨에 겨울나라가 되었다.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산길을 오르다 그냥 산어귀를 맴돈다. 무거운 눈을 이고 지고 있는 나무들, 꺾이거나 부러져 나뒹구는 가지를 보면, 계절에 가만히 순응할 수밖에 없는 나무의 운명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 앞에서 한참 머물다 보니 러시아의 화가 이반 시슈킨의 겨울숲 풍경화가 떠올랐다. 그는 누구보다 많은 나무를, 가장 세밀하고 정확하게 그려낸 화가였다. '숲의 차르'라 불리기까지, 시슈킨이 끊임없이 자연을 연구하고 화폭에 담아낸 열정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이반 시슈킨, <겨울>, 1890년, 캔버스에 유채, 125.5 x 204cm, 러시아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숲 속 빈터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중경과 후경에 새하얀 옷을 입은 나무들이 벽을 이루었는데 우듬지는 보이지 않는다. 앞쪽 빈터에는 잡목과 쓰러진 나뭇가지와 함께 어린 나무들도 보인다. 뒤쪽에 트인 길 사이로 숲을 비춘 햇살이 눈부시게 빛난다. 인적 없는 고요한 겨울숲 속 어디에선가 작은 새의 지저귐이 들려온다.




이반 시슈킨, <숲에서>, 1860년, 종이에 연필과 잉크

이반 시슈킨(Ivan Shishkin, 1832~1898)은 러시아 동부 산림으로 둘러싸인 엘라부가에서 나고 자라며 자연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아버지는 아들이 사업을 이어가길 기대했지만 스무 살 청년은 그림을 배우기 위해 모스크바로 향한다. 미술학교를 다니면서 시슈킨은 동료들과 주변 자연을 연구하며 풍경화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그는 공간과 자연의 질감을 드로잉 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시슈킨은 특히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의 대가 야콥 판 라위스달(1629~82)의 작품을 자주 모사하면서, 활기 넘치는 자연의 형태와 인간의 일상을 풍경에 녹여내는 것에 영향을 받았다. 1862년 장학금을 받고 간 독일에서 시슈킨은 꼼꼼한 묘사로 유명한 북유럽 풍경화가들에게도 인정받았다.    


서유럽의 근대화가 급속화된 19세기, 러시아 제국은 유일하게 농노제가 존속하고 차르(황제)가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후진 사회였다.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수도로 삼고 서구화를 추진한 이래로 제국은 러시아의 전통과 러시아 정교를 근간으로 하는 슬라브주의와 서유럽 전통을 따르는 서구주의가 대립해 나갔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략은 러시아에 대한 조국애에 불을 붙였고, 지식인들은 점차 민족에 대한 봉사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 개혁의 바람 속에서 1861년 (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노해방령이 내려졌으나, 근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러시아의 변혁은 더디 이루어졌다.


미술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863년 농노 해방을 주제로 졸업 작품을 제출하라는 아카데미의 요구를 거부하고, 일군의 화가들이 아카데미를 떠나 조직을 결성했다. 이를 주도한 이반 크람스코이는 1870년 비평가 스타소프와 ‘이동파(移動派, Peredvizhniki)’를 창립해 러시아 전역을 돌며 전시회를 열었다. 이들은 대중이 동시대의 미술을 접하며 러시아 사회에 대한 애정을 키울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민중의 삶과 현실, 러시아의 자연과 도시 풍경을 이해하기 쉬운 사실주의 언어로 담아냈다. 1865년 고국으로 돌아온 시슈킨은 이들의 대열에 합류했고, 그가 사랑하는 숲과 대자연의 풍경을 그려나갔다.


이반 시슈킨, <호밀>, 1878년, 캔버스에 유채, 107 x 187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호밀>은 시슈킨이 고향 옐라부가 근처의 호밀밭을 그린 대작이다. 광활한 황금 들판 뒤쪽에 시슈킨이 좋아했던 소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우뚝 선 모양새는 풍경에 리듬을 더한다. 중앙에 호밀밭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 멀리 사람이 보이는 듯하다. 수수한 풀과 풀꽃이 피어있는 전경 길가에는 까지도 내려앉았다.  


이 그림을 위한 스케치에는 '넓게 트인 지역, 공간, 땅, 호밀, 신의 은총, 러시아의 풍요’라는 화가의 기록이 남아있다. 이전에 아카데미 화가들이 풍경화의 교본인 17세기 로마의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풍경화를 답습했다면, 이동파 화가들은 자국의 평범하고 소박한 풍경에 눈을 돌린 최초의 화가들이다. 이는 당시 푸쉬킨과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와 같은 대문호들의 관심이 민중의 삶과 러시아의 자연으로 집중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들은 러시아의 드넓은 초원과 밀밭, 오래된 숲에서 아름다움과 위엄을 발견했다. 프랑스 바르비종파 화가들에게 자연은 도시 문명의 반대편으로 여겨졌다면, 시슈킨과 러시아 대중에게 자연은 삶과 노동의 터전이자 의식주의 자원이었다. 시슈킨은 러시아에서 흔한 밀밭의 풍경을 통해 신의 은총을 받는 풍요로운 조국을 제시한 것이다.  


“자연을 그릴 때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기도할 때 이국의 언어로 말하며 거짓말하는 것과 같다.”   - 이반 시슈킨


이반 시슈킨, <그루터기가 있는 풍경>와 <산미나리>,  1880년대, 캔버스에 유채, 36 x 60cm, 35. x 58.5cm


일찍이 학계와 미술계에서 인정받았던 시슈킨은 1873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작업에 있어서 그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철저했다. 평생 시골과 숲 속을 다니며 수종별 나무와 이끼, 풀과 풀꽃의 색과 형태, 질감을 면밀하게 연구했다. 이동파 화가들을 비롯해 그림을 본 관람객들은 사진과 같은 정밀한 묘사와 확신에 찬 스타일에 감탄했다. 그루터기와 풀꽃을 그린 위의 스케치는 쇠락해 가는 것, 구석에 작은 생명들이 지닌 찬란한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한다.   


"내가 진정 사랑하는 것은 러시아의 숲이고, 그것이 내가 그리는 유일한 것이다. 미술가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주의를 딴 데로 돌려서는 안 된다."  - 이반 시슈킨



이반 시슈킨과 콘스탄틴 사비츠스키, <소나무 숲의 아침>, 1889년, 캔버스에 유채, 139 x 213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시슈킨은 그가 사랑한 숲의 풍경을 가장 많이 그렸다. <소나무 숲의 아침>은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아이들의 초콜릿과 공책을 장식하기도 했다. 깊은 숲 속에 뿌리 뽑힌 채 부러진 소나무가 화면을 가르고, 동물화가 사비츠스키가 그려 넣은 사랑스러운 곰 가족이 등장한다. 사방으로 뻗은 뿌리, 진초록의 소나무와 갈빛의 부러진 나무, 후경에 깃든 여명과 연무로 노랑과 라일락빛을 머금은 나무들까지, 그 형태와 질감, 색채가 만져질 듯 생생하다. 화가는 동물의 터전이기도 한 신령스러운 숲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이즈가 큰 시슈킨의 풍경화는 보는 이에게 숲의 웅대함과 강렬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살아 숨 쉬는 자연을 세밀하게 묘사했고, 자신의 감성이나 이야기를 보태지 않았다. 일부를 포착한 구성은 그 너머 확장하는 숲의 인상을 창조했다. 시슈킨은 주로 풍요로운 여름, 정오의 숲을 그렸다. 눈부신 햇살은 오래된 나무의 몸통과 풍성한 잎, 풀과 풀꽃을 명료하게 드러내며 강인한 생명력을 품어낸다. 러시아만의 활기와 기백을 담아낸 시슈킨의 풍경화는 조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현대까지 대중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기사 시슈킨이 목소리는 가장 크다. 모두에게 영감을 주고 건강과 재미, 욕구를 자극하고 강렬한 초록숲과 같은 러시아 언어에 충실하다…” – 화가 일리야 레핀



이반 시슈킨, <황야의 북쪽에서>, 1891년 캔버스에 유채, 161 x 118cm 우크라이나 국립미술관, 키예프

러시아는 일 년 중에 반이 눈이 쌓인 추운 겨울인데, 흥미롭게도 화가들은 겨울 풍경을 자주 다루지 않았다. 거의 매일 내리는 눈은 녹지 않고 쌓여가는 데다 해가 뜨는 시간이 짧아 긴 겨울은 러시아인들에게 혹독하고도 침울했다. 시슈킨은 1880년 후반부터 가을과 겨울 풍경을 몇 점 시도했다. 인정받는 교수이자 화가였지만, 1870, 80년대 두 번의 결혼에서 부인과 아이들까지 모두 먼저 떠나보내는 상실을 겪으며 시슈킨은 자연의 변화와 위력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늙은 소나무', '고독한 오크'로 불렸던 화가는 자연과 작업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대표작 <겨울>과 더불어 다음 해에 그린 <황야의 북쪽에서>는 깊은 인상을 남긴 나무 초상화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낭만주의 시인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시 <소나무>(1841)를 위한 삽화로 알려져 있다. 어두운 밤 산꼭대기에 눈을 가득 짊어진 나무가 홀로 서 있다. 시슈킨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나무의 온전한 모습이 담겼고, 청색조 때문인지 멜랑콜리한 분위기다. 달빛에 반짝이는 고단한 나무는 언제쯤 이 옷을 벗을 수 있을까, 시인의 말처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황야의 북쪽에 소나무가 홀로 서있네

헐벗은 산꼭대기에
망토 같은 흰 눈을 덮고 졸며 흔들리며  
머나먼 황야에서 끊임없이 꿈꾸네
태양이 떠오르는 땅에서

생기 없는 사랑스러운 야자나무 홀로 서있네
어둑한 절벽에서 자라며


이 작품에 비해 대표작 <겨울>은 순백의 겨울숲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대부분이 흰색조로 구현된 이 그림은 화가에게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시슈킨은 섬세한 색채 표현으로 눈 덮인 겨울숲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여기서 흰 눈은 서늘한 청색이 아닌 따사로운 햇살을 품고 있다. 수직으로 뻗은 나무의 몸통은 하늘까지 뻗을 듯한 기세를 전한다. 전경 빈터에 잘린 나뭇가지와 기울어진 몇몇 나무는 생의 마지막을 향하고 있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기저기에서 눈을 뒤집어쓴 어린 나무들이 꼿꼿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저기 틈새 가지 위에 앉아 있는 작은 새다. 이런 작은 생명이 살기 어려운 겨울처럼 보이지만, 4, 5월까지도 눈이 내리는 러시아에서 새는 곧 다가올 봄을 암시한다. 시슈킨의 찬란한 겨울숲 풍경은 혹독한 날씨와 환경에 견뎌온 러시아인들의 강인한 기백과 희망을 노래한다. 얼어붙지 않는 기쁨으로 충만한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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