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과 마음으로) 다르게 보라는 초대
풍경화는 화가가 작업하며 때때로 서 있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리고 화가의 눈으로 장면을 바라보게 한다. 이질적인 풍광이나 색다른 시선이라면 그 앞에 조금 더 머무르게 된다. 거대한 꽃 그림으로 유명한 조지아 오키프의 나무 그림들도 그런 힘이 있었다. 그 가운데 <로렌스 나무>는 하릴없이 보는 이를 큰 나무 아래 눕혀버린다. 그것도 별이 빛나는 밤에. 하늘로 치솟은 갈색의 나무 몸통과 동맥처럼 뻗은 가지들, 먹구름 같은 잎의 무리, 그 뒤로 청명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각자만의 기억과 몽상으로 이끈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미국 중서부 위스콘신주에서 부농의 딸로 태어나 광대한 들판과 자연의 리듬 속에서 자랐다. 십 대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소녀는 시카고와 뉴욕의 명문 학교에서 미술을 배웠다. 그런데 대가들의 작품이나 대상을 모사하는 교육은 영감을 주지 못했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오키프는 생계를 위해 상업 미술가로 일한다.
교사가 되려고 다시 학교에 간 오키프는 아서 W. 다우(Arthur Wesley Dow)의 이론을 접하며 미술에 대한 열정을 되살린다. 동양미술과 아르누보에 영향을 받은 다우는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형태를 단순화하고, 특히 선과 색채, 색조의 조화로운 구성을 통해 느낌을 표현할 것을 제안했다. 갓 번역된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의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1)도 오키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림의 색채와 형태는 작가의 내면과 감정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 음악 같은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회화의 힘에 동감했던 것이다. 이런 배움을 바탕으로 오키프는 서부 텍사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작업에 몰입했다. 주로 자연 풍광과 현상을 연구했는데, 1917년의 수채화는 일출로 번져가는 빛의 광휘와 온기를 최소한의 언어와 구성으로 전한다.
이 시기 오키프의 추상 드로잉이 친구를 통해 미국 근대 사진의 아버지이자 뉴욕에서 갤러리 '291'을 운영했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에게 전해졌다. 오키프와 스티글리츠는 서신으로 일상과 생각을 나누었고, 그의 격려에 힘입어 1918년 오키프는 뉴욕으로 이주해 전업작가의 길을 걷는다. 유명한 사진작가이자 유부남인 스티글리츠와 23살 연하의 무명 화가는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둘은 매해 여름을 뉴욕 북부 조지호 근처에 있는 스티글리츠의 본가에서 보냈다. 낡은 헛간을 개조한 작업실에서 오키프는 주변의 산과 호수, 나무와 꽃 등을 소재로 자신만의 시각과 표현을 발전시켰다. 스티글리츠와 결혼한 해(1924)에 그린 가을의 단풍나무를 보자. 구불구불한 회색의 몸통에서 가지가 춤을 추듯 사방으로 뻗어있다. 주변에 빨강과 자주, 주홍의 여운은 붉게 물든 단풍잎을 연상시킨다. 위쪽에선 살짝 초록잎과 하늘이 보인다. 나무의 핵심을 포착한 형태와 유려한 곡선, 추상적인 색채 표현은 가을의 단풍나무를 색다르게 감각하게 한다.
“리얼리즘보다 덜 리얼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부는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는 선택과 제거, 강조를 통해서만 사물의 진정한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 - 조지아 오키프(1922)
1920년대 오키프의 가장 흥미롭고 독창적인 추상화와 유명한 꽃 그림이 탄생한다.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본 거대한 꽃은 화가가 바란대로 대중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덜 알려졌지만 오키프는 조지호 주변에서 수집한 나뭇잎과 돌, 조개껍데기 등 도 비슷한 방식으로 그렸다. 특히 30여 점에 달하는 나뭇잎 그림은 대부분 각양각색의 가을의 잎이 주인공이다.
1928년 작품에서 황토색과 갈색 잎은 하얀 배경에 조화롭게 놓여 있다. 10~20배로 확대된 나뭇잎은 감각적인 곡선과 색채로 묘사되었다. 입체감을 더해주는 다채로운 색조를 음미하다 보면 그간의 햇살과 흙의 온기도 느껴진다. 색을 가장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여겼던 오키프는 작업 전에 준비된 색채 카드에서 세심하게 색을 골라 원하는 감정과 경험의 깊이를 표현했다. 그런데 커다란 잎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하나하나가 나무로 보인다. 오키프가 상공에서 바라본 강줄기를 그린 작품들도 때때로 잎을 떨군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산책과 탐험, 수집을 즐겼던 화가는 작은 오브제를 세밀히 관찰하는 동시에 대자연의 풍광을 조망하며 소우주와 대우주를 넘나드는 렌즈를 갖게 되었다.
오키프의 나뭇잎 그림들은 꽃과 함께 놓이거나 실제와 다른 색채로 변주되며 추상화되기도 했다. 이맘때 흔히 볼 수 있는 나뭇잎은 그녀를 통해 친밀하면서도 우아하고 기념비적인 초상이 되었다. 이런 그림에 적용된 분절과 크롭핑(잘린 구성), 확대의 방식은 당시 사진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스티글리츠가 오키프의 몸과 피부, 손을 가까이 다가가 찍은 것, 특히 폴 스트랜드가 친숙한 사물을 클로즈업해 추상적 구조를 드러낸 사진이 그녀에게 영향을 주었다. 자연에서 시작해 추상과 사진의 언어가 더해진 오키프의 그림은 화가의 내면화된 경험을 시적이면서도 강렬하게 전달한다.
스티글리츠의 모델이자 뮤즈로 여겨졌던 오키프는 작품이 팔리고 미술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점차 그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비평계의 오독과 스티글리츠의 외도로 오키프의 몸과 마음은 상해갔다. 대도시 뉴욕과 조지호의 풍요로운 자연에서 더 이상 자극을 받지 못하자, 오키프는 1929년 미국 남서부의 뉴멕시코로 향한다. 오키프는 금세 텅 빈 황무지와 협곡이 자기 집처럼 느껴졌다. 아메리카와 멕시코 원주민의 전통이 남아 있는 이국적인 환경도 매력적이었다. 이곳에서 진정한 위안과 자유를 느낀 오키프는 점차 많은 시간을 뉴멕시코에서 보낸다.
<로렌스 나무>는 그때 오키프가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뉴멕시코에 갔을 때 그린 것이다. 한 때 영국의 소설가 D. H.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가 거주했던 예술가촌 타오스에서 머무르며 오키프는 집 앞 폰데로사 소나무 아래 벤치에 누워 나무를 바라보곤 했다. 이 나무는 로렌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요하고 무심하게 살아 서 있는 집 앞의 큰 소나무...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우듬지의 녹색잎들은 결코 볼 수 없는 나무... 문을 열고 나가면 수호천사와 같은 나무 몸통이 거기에 있다." 한 해 전에 출간된 그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여성의 성적 욕망과 쾌락을 진솔하게 담아내 전 세계에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무삭제판은 영국에서 1960년까지 유통되지 못했다.) 로렌스를 만난 적은 없지만 마음속의 목소리를 낸 작가를 기리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는 화가처럼 '로렌스 나무'와 반짝이는 수많은 별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 살아 꿈틀거리는듯한 나무는 지붕처럼 보는 이를 감싼다.
한 편으로 <로렌스 나무>에 신선함을 느꼈던 것은 그 관점에 있었다. 많은 나무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이렇게 밤을 배경으로 누워서 보는 시점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거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보통 사람이라면 나무가 아래에서 위를 향하도록 바로 걸었겠지만, 소장처는 거꾸로 된 방향을 선호했던 화가를 따라 전시하고 있다. 거꾸로 된 방향은 현기증을 일으키면서도 더 풍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오키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시선은 삶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새로운 시선을 갖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로렌스 나무>는 오키프가 뉴멕시코에서 밤에 산책하고 나무 아래 누웠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 사선으로 뻗은 나무는 오키프가 뉴욕에서 그린 일련의 마천루와 유사한데, 그녀는 인상적인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밤낮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뉴멕시코에서 보내기 시작하면서 오키프는 운전을 배우고 자동차를 작업실로 개조해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그래서 이곳만의 특징적인 십자가와 어도비 건축물이 캔버스에 담겼다. 산책하고 탐험하며 그녀의 눈에 아름다워 수집된 돌과 나무 조각, 동물의 뼈는 풍경화에 환상적으로 삽입되기도 했다. 밖으로 나가 체험하고 느끼면서 오키프의 시선이 확장된 것이다.
독창적인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또한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과도 연결된다. 오키프는 여성의 활동과 표현이 제약되고 33살이 되어서야(1920)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시대를 살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을 알았다. 결혼을 꿈꾸는 친구들과 같은 스타일을 따르지 않았고, 교육에서 배울 것이 없자 그림을 그만두기도 했다. 어디에서건 밤낮으로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하고 싶은 말을 했으며 입고 싶은 옷을 입었다.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벗어나 서부 황무지에서의 삶을 개척했고, 대공황과 세계대전, 냉전의 시대를 살면서도 자기만의 영역에서 작업하고 탐험하는 삶을 98세까지 이어갔다. 그녀를 통해 유럽의 전통에서 벗어난 미국적인 풍광과 미학의 모더니즘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오키프가 65세에 그린 <붉은 나무, 노란 하늘>은 해 질 녘 멀리 페더널 산을 배경으로 전면에 고사한 듯한 노간주나무가 등장한다. 오랜 풍파에 주름 지고 상해 있지만, 마치 두 팔을 벌린 듯한 가지로 인해 사람처럼 보인다. 강렬한 선홍빛 색조와 특히 길게 뻗은 가지에서 자기만의 이상을 향해가는 의지와 열정이 느껴진다. 마치 화가 자신처럼. 오키프의 그림은 우리로 하여금 익숙한 시선에서 벗어나 스쳐 지나갔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경험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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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에 없던 화가였는데, 갑자기 궁금해 시작했다가 음.. 아직 부족한 글이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