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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Nov 16. 2023

나무를 노래한 화가들

: 영감의 나무를 향한 화가들의 찬가


오늘도 산책에서 나무를 만난다. 그 사이에 핀 풀과 꽃을 바라본다.


자연스러운 자태, 무수히 다른 초록, 저마다 다른 개성, 청명한 내음, 잎사귀 하나에 담긴 우주를 만난다. 하늘을 향한 꼿꼿한 열망, 스스로 충족된 마음, 쉼 없는 부동의 움직임, 역경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을 느낀다. 그간 깃든 햇살과 비와 바람, 그곳을 거쳐간 생명들, 그 긴 시간의 축적과 인연을 상상한다. 어쩔 땐 그 안에서 흔들리며 버티는 내 마음, 솟아오르는 열정을 본다. 때론 우리보다 훨씬 전부터 이 별에 살며 진화해 온 생명의 지혜를 읽는다.


매일 만나는 나무와 풍경은 어느새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된다. 자연스럽게 나는 인사를, 질문을, 하소연을, 감탄을 건넨다. 그런데 도무지 자연은 말이 없다.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여봐도. 매일매일의 창조와 죽음, 변화하는 형상으로 내게 답할 뿐이다.  

 

겨우내 삭막했던 풍경이 초록이 되고 풀과 꽃이 만개하는 5월이 되면 산책길에 가장 예쁜 들꽃을 하나씩 꺾어오곤 했다. 작은 유리병에 담아두고 하루 이틀 일상을 함께 보내는 것은 물론 큰 기쁨이었다. 그런데 고개를 떨군 들꽃을 쓰레기통에 넣는 일이 반복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언제부턴가 있는 그대로 사진을 찍거나 오래 바라보며 마음에 담아두려고 노력한다. 아마 자연을 그린 화가들의 마음도 그랬으리라. 그 감격스러운 아름다움을, 자기와의 교감을, 곧 변화될 찰나를 붙잡고 싶은 갈망으로 붓을 들었을 것이다.    


이 주제는 오래전부터 마음에만 품고 있었다. 최근에 산란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무와 식물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졌고 자연스럽게 열정이 솟아올랐다. 게다가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옷을 갈아입고 잎을 떨구어가니 추운 겨울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벌여놓은 주제가 여럿이라 좀 망설였다. 산책길에 만나는 묵직한 나무에게 물어도 대답은 없지만, 자기 안에 품은 것을 창조하고야 마는 그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검색해 보니 비슷한 내용을 다룬 책이 화려한 추천사와 함께 올해 출판되었다. 이내 실망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펼쳐보니 화집에 가까운 가벼운 책이었다. 그림은 좀 겹칠 수 있겠지만 저자인 영국의 디자이너와는 다른 결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용기가 차올랐다.  


나무는 어쩌면 주위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의 소재다. 이동하지 않지만 움직이고, 인간처럼 성장하며 언젠가 죽음을 맞고, 사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으며 꽃이나 열매를 맺기도 한다. 산책하던 화가는 어느 날 한 나무와 눈이 맞는다. 관찰에서 시작해 감탄이나 영감, 애정과 교감으로 이어지는 어느 순간 화가는 붓을 들게 된다. 이제 화가가 창조한 나무는 그가 본 실제 나무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무를 향한 화가의 시선과 감정, 해석이 그만의 손길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상 유명한 화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나무를 그린다 해도 그들은 각자 유일한 나무를 창조해 낼 것이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미술사에서 스쳤던 나무 그림들을 떠올려본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는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며 전설이 되었다. 물론 똑같은 포플러 나무 풍경을 수차례 그린 클로드 모네의 나무도 빠질 수 없다. 아마도 가장 왕성하게 다양한 나무를 여러 매체와 크기로 그린 화가는 (대표 이미지의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일 거 같다. 무한한 자연 속의 심상을 담아낸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극적인 나무는 마음을 흔들며 그 너머를 보게 하지만, 폴 세잔이 구축한 생생하면서도 견고한 나무는 물자체를 감각하게 한다. 초상화 여인들의 옷처럼 화려하고 풍성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나무와, 앙상하고 비틀린 자화상 같은 에곤 실레의 쓸쓸한 가을 나무도 사랑한다. 아무렇게나 막 그은듯한 선으로 조형된 조안 미첼의 나무와, 초상화 인물들처럼 간결하면서도 힙한 알렉스 카츠의 나무에 매력을 느끼지 않기는 어렵다. 화가들의 나무가 실제 자연과 다른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거기에는 나무라는 가장 흔하디 흔한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만의 시선과 교감, 감정과 표현이 살아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궁금하다. 각각의 화가가 어떤 나무에, 어느 부분에 이끌렸는지, 마주하며 무엇을 느끼고 교감했는지, 그리고 결국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냈는지. 이것을 탐험하는 여정에서 화가에게 영감을 준 나무 하나하나를 알아가며 각각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그 첫 번째는 아쉬운 가을을 보내며 에곤 실레의 나무들을 살펴본다.


에곤 실레, <네 그루의 나무>, 1917년, 캔버스에 유채, 110 × 140.5cm, 벨베데레,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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