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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Aug 05. 2019

어느 위로

아이를 낳고 나니 같은 아이 엄마들과의 교류가 잦아진다. 결혼, 출산과 동시에 급격하게 바뀌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은 주변인들과의 교류나 만남의 양상도 큰 폭으로 바꿔놓게 되는 것 같다. 미혼이거나 아직 아이가 없는 친구들은 다 일을 하니 아무래도 만날 시간을 잡기가 어렵고(그들이 퇴근할 때 나는 아기 취침 준비가 한창이다), 화두가 될만한 공통의 관심사도 많이 사라졌다. 육아 인싸템은 그들은 뭔지도 모르고, 남의 상사 뒷담화는 내가 관심이 없고... 한때 친분을 과시했더라도 서로 간의 교집합이 많이 옅어졌다는 걸 상호 간에 느끼는 순간 어쩔 수 없이 교류가 줄어든다. 같은 나이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이질감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다며 현실에 수긍하게 된다. 나 역시 아기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 세계였으니까.


이제 해인이를 낳고 키운 지 고작 아홉 달 하고 10일.

돌이켜보면, 아직 말 못 하는 아이와 지내며 하루가 속히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고단한 날에, 위로로 다가오던 순간들이 있었다.


계획했던 시간보다 임신이 조금 더디게 되어 낙심하고 있을 때 그 마음 알 것 같다며 건네받은 기프티콘과 문자에 코가 시큰해졌던 날.

임신 기간에는, 나중에 이런 것들이 이럴 때 요긴할 거라며 꼼꼼히 포장된 아이 용품 박스를 받고 전화로도 하나하나 설명해준 정성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던 기억.

출산 직후에 젖먹이 아이와 둘이 혼자 있을 때 아무 용건 없이 전화를 걸어와, 호르몬이 널뛰는 시기인데 내 마음은 괜찮냐며 헤아려줄 때 울컥했던 순간.

육아하다 보면 당이 많이 당길 거라며 아기가 아직 어릴 때 집에 사들고 온 달콤한 케익에, 말하지 않아도 필요를 알아주는 것 같아 따뜻하게 차오르던 가슴 한켠.

이제껏 아이 키우느라 너무 고생했다며 선뜻 사주는 밥 한 끼에 황송하고도 감사했던 마음.

아이와 보내는 일상에서의 내 모습이 늘 궁금했는데 부탁하지 않아도 사진을 찍어 보내주던 그 헤아림에 감동했던 시간.


이 길을 나 혼자 외롭게 걷고 있는 게 아니라고, 앞서 걸어간 이가 내밀어준 손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타인을 향한 작은 관심이든, 깊이 있는 사랑이든 의지를 발동하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겨지기까지는 힘들다. 예상치 못한 일들로 휘몰아치는 24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 키우는 엄마라면 더더욱. 선배 엄마들의 값없는 베풂을 받으며 가슴에 잘 새겼다가 나도 흘려보내야지, 오늘도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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