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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May 23. 2019

32. 헤어질 때의 모습이 진짜 모습이다

헤어질 때의 모습이 진짜 모습이다

 사랑이 달아오를 때는 뭐를 줘도 아깝지 않은 그 사람. 나의 마음도 여유가 있고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사랑할 때는 좋은 말만 해주고 싶고 무엇이든 용서가 된다. 그러나 이 모습을 진짜 모습으로 착각하는 순간 불행은 당신의 옆에 자리를 깔고 앉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진짜 모습은 헤어질 때 비로소 볼 수 있다. 


 사랑에 대해 경험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사실 좋게 헤어진다는 것은 영화 속에나 있는 일이다. 그래서 할리우드 스타일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깔끔하고 매너 있게 헤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감정이 풍부하고 소유욕이 강한 한국에서는 서로가 동의하는 상태에서 축복하며 헤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마지막 모습을 보면 모두가 실망하게 마련이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정말 그 사람이 맞나? 본모습을 안다는 것은 실망할 일이 더 많은 일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을 뿐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상대방을 마음껏 현혹하다가 마지막에서야 진면모를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이별의 상처는 더욱 커진다. 심지어 그 모습이 본모습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본모습은 헤어질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헤어지지 않는 한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알 수 없다. 얼마만큼 당신을 사랑하는지, 자기 아픔을 감수하면서 당신의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사랑이 유지되는 한 알 수 없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다. 사랑이 지속되는 한 사랑의 본모습을 볼 수 없다니.


 싸우고 원수가 되어 헤어지거나 냉정하게 뒤돌아서는 사람에게 미련을 느낄 필요는 없다. 누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건 사랑이 진짜라면 헤어진다고 해서 그 마음을 즉시 끊어버릴 수 없다. 상대방이 헤어지자고 해도 내 마음은 그렇게 빨리 멈춰지지 않는다. 나는 앞에서 이것을 사랑의 관성이라고 표현했는데 말 그대로이다. 사랑의 마지막이라고 해서 무조건 상대방이 미워지고 싫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더 이상 그 사람의 행복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소유하고 같이 있는 것에 의미가 없어진다.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이 보고 싶은 것이지 내가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면 다른 무엇이 의미가 있겠는가? 


 헤어지자는 말에 무조건 분노하고 못 떠나게 붙잡아두는 것은 사랑을 소유로 보는 유아적인 발상이다. 인간은 유아기에는 이기적이다가 성인이 되면서 주변과 타인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학교에서 배워서? 가정교육 때문에?


 그렇지 않다. 인식의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때는 남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가 나를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남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중요한 사람들의 눈치도 본다. 이것이 인식의 범위이다. 나를 중심으로 한, 나 밖에 없는 세계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헤어지는 상황에서 물론 마음이 아프겠지만 사랑했던 사람을 마지막까지 배려하는 게 어른다운 모습이다. 

눈물 흘리고 바짓가랑이 붙잡는 것은 추한 모습이 아니다. 사랑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은 솔직한 모습이다. 그러나 마지막이라고 해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상처 주려고 하는 자세는 지극히 유아적 사고에 가깝다. 쉽지는 않지만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도, 통보받는 사람도 마지막 순간까지 어른스러워야 한다. 강제로 내 옆에 앉혀도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소유욕이 강하고 감정이 풍부해서 헤어지면 원수가 된다. 물론 헤어지는 과정에서 매너가 없는 것도 큰 이유이다. 다른 장에서 설명했지만 상대방의 상처를 줄여줄 수 있도록 헤어지는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런 배려도 없이 그저 자기 살길만 찾는다. 이런 이기적인 사람에게 타인의 배려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사치이다.


 정말 선한 사람이라면 헤어지자고 하더라도 최대한 상대방을 배려할 것이다. 거짓말이나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헤어짐이 아프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런 작은 배려만 있어도 원수는 되지 않을 수 있다. 서로의 추억은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고 상처도 금방 치유된다. 만일 그런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면 깨끗하게 잊어도 된다. 사랑할 때 보였던 그 사람의 멋진 모습은 가짜이고 지금 보는 모습이 진짜인 것이다.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정말로 선한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상대방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사람이 내 옆에서 우울한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아픔은 아픔대로 성인답게 받아들여야 한다. 고집 피울 일이 아니다. 공든 탑도 무너지는 게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이다.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진짜로 사랑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변한다고 하지만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식을 수는 있지만 상대방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완전히 무관심해져 상대방이 상처를 입든 말든 관심 없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고 단지 사랑처럼 보였을 뿐이다. 


 잠시 그렇게 보인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헤어진다고 남이 되는 게 아니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공유하고 있는 한 과거의 연인인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상대방에 상처를 있는 대로 입히고 자기 행복만 찾는다면 지금까지 했던 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의 가짜 사랑과 나의 진짜 사랑이 잠시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혹시 이런 모습을 보더라도 아쉬워하거나 눈물 흘리지 말자. 헤어질 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본 것이다.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상처는 지울 수 없지만 슬퍼할 가치가 없다. 그 사람에게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울 뿐이다. 그뿐이다.


 헤어짐을 통보받는 사람도 진짜 사랑했다면 그것에 화를 내기보다는 이제 내 사랑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눈빛이 더 이상 따뜻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 눈빛으로는 마주 보고 사랑을 말할 수 없다. 억지로 상대방을 잡아놓거나 분노를 보인다면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상대방은 내 소유가 아니다. 나는 그 사람 선택에 따라야 한다. 구속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마지막 순간에 진짜 당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축복까지는 하기 힘들더라도 두 사람이 공유한 추억까지 망가뜨리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끝이 좋아야 좋은 것이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공유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그것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책에서 늘 강조하지만 사랑도 배워야 하고 깨달아야 한다. 사랑은 완전하지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본래부터 그런 것이다. 사랑하던 때가 있는가 하면 그 사랑이 소멸할 때가 있다. 이것은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다. 사랑의 한 사이클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본래부터 예정되어있던 것이 온 것이다. 배려하지 않는다면 존재했던 사랑마저 부정된다. 그리고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헤어질 때 상대방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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