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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Sep 24. 2019

30대 기업 경영진단

재벌과 한국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 -1-

 30대 기업 경영진단을 마무리하면서 한국 경제와 재벌의 전반적인 관계를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현재 한국에서는 대기업을 보는 시각은 지나치게 편협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얄팍하다. 한쪽에서는 기업의 현실,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대중에 영합하기 위해 대기업을 마녀로 몰거나 비난하고 한쪽에선 무조건적 찬양에 앞장선다. 나는 두 가지 입장에 모두 반대한다. 


 기업은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대기업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가지는 필요성과 긍정적 영향을 인정하면서 그들이 시장지배적 위치에서 벌이는 편법, 갑질에 대해서도 비판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안된다. 자유시장경제라고 해서 무조건 내버려 두면 시장이 알아서 한다는 소위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에서 어떤 비시장적 강압이 이뤄지고 있는지 전혀 체험하지 못했다. 나는 기업현장에서 실무자로 일해봤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 잘 안다. 


 자유시장을 주장하는 자라면 기본적으로 줄 건 주고받을 건 받자는데 공감할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자유시장경제에 문제 될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게 시장에 맡겨두면 되지가 않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공정한 계약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의 압박 속에 혁신이 이뤄진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뼈를 깎는 혁신보다 쉬운 방법을 찾게 되어있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혁신보다는 소비자, 납품업체에 비용을 전가하기 쉽다. 어려울 때는 직원들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업직도 아닌 일반직 직원에게 자사 상품을 최소 몇 개씩 팔도록 할당해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시장경제인가? 이런 것은 경제학 교수들이나 기자들은 모르는 현실이다. 할당판매를 하면 결국 가족들에게 억지로 판매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야말로 시장의 왜곡이다. 


 그렇다고 기업이 본질적으로 악인 것은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기능은 기본적으로 고용과 세금이다. 만약에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삼성을 만들지 않고 그 재산으로 건물주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자신과 가족들은 회장님 대접은 못 받아도 먹고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0만 명이 넘는 고용은 창출되지 못했을 것이고 하청업체도 역시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수십만 명의 고용이 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동남아 국가와 다름없이 일자리를 찾아 타국가를 떠돌 수밖에 없다. 베트남, 필리핀 노동자들이 왜 우리나라에 와서 일을 하는가? 그들에겐 기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이 말이다.

 대기업이 탈세를 많이 한다고 해도 개인이 내는 세금에 비해서는 훨씬 투명하다. 하물며 상장기업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기업들은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고 수단일 뿐이며 우리는 그 수단이 선으로 작용하도록 유도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대기업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것을 위해 쓰여졌으며 책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대기업과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선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잇는 대기업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해 알아보자. 


 대기업들을 분석해보니 하나같이 경영권 승계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나는 경영권 승계에 대해 이제 세습경영의 고리를 끊을 때가 왔다고 단언한다.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이다.


 대기업 경영세습이 변화해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 들 수 있는데 먼저 '시대의 변화'다. 이제는 총수의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후임자를 지명하면 끝나는 시대가 아니다. 모든 정보가 오픈된 주식시장이 있고 여기에는 주주들이 있다. 해외 주주들까지 신경 써야 하는 시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극히 사적인 결정이라 할 수 있는 자식에 대한 경영권 승계는 아무리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공적 권위에 상처를 줄 수밖에 없고 명분이 궁색하다. 기업은 주주가 있는 공적 사회, 공적 소유물이다. 여태까지 오너가 잘 경영해왔다고 해도 그 아들이 경영권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자식도 치열한 경쟁의 틀위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두 번째는 자손들의 인식 변화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대부분 5,60년대에 기초를 닦았으니 현재 30대 기업들은 대부분 3세 경영에 돌입해있다. 좀 빠른 기업은 4세 경영을 준비 중이다. 창업주는 헝그리 정신 하나로 일제시대, 625 전쟁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기업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인생의 과업이자 생존문제 그 자체였다. 이 정신은 창업 2세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어진다. 할아버지를 봤을 3세도 어렴풋이나마 기억에 남는다. 삼성 같은 기업은 2세인 이건희 회장이 창업주 이병철보다 회사를 훨씬 더 키웠다. 이병철 회장이 장남이 아닌 3남에게 기업을 준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런 승계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강력한 유교적 가부장제를 전통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정신이 아들에게 거의 고스란히 이어지고 어릴 때부터 단련된 가풍에 기업정신이 상당 부분 녹아들 수 있다. 일부 대기업에서 여성에게 절대로 기업을 물려주지 않는 것도 그런 풍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2차 베이비붐 이후 X세대를 통해 나타난 급속한 세대 변화는 이런 강고한 유교문화를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집안에서 최고 권력자는 이제 아버지가 아니고 자식들이다. 물론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은 경영권을 무기로 어느 정도 가부장적 권력이 유지되지만 이미 자식들의 인식과 정신상태가 아버지들과 다르다.


 대부분 유학을 다녀온 재벌 자손들은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고 기업이란 것도 가업일 뿐 자기가 만든 것도 원한 것도 아니다.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재벌 자손들의 일탈들이 그런 정신상태를 보여준다. 과거 대기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랫사람에 대한 갑질, 마약, 폭력 등 전형적인 부유층 자제의 일탈 모습이다. 이들은 자신이 기업을 이어갈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재벌 3세도 아니고  4세까지 오면 창업주의 정신은 전설이 되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가업을 억지로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의지와 헝그리 정신이 상실된 그들에게 기업가 정신은 너무나 낯선 얘기일 것이다.


 자손들이 줄어 경쟁이 없는 것도 이유이다. 마지막 대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선대 재벌 자손들에 비해 지금의 재벌 자손은 형제가 많지 않아 거의 무혈입성하고 있다. 이는 그 자체로 검증이 전혀 안된 경영자를 들이는 결과가 된다. 삼성만 해도 3형제가 치열한 경쟁 끝에 이건희 회장이 낙점됐지만 이재용 회장의 경우 경쟁자가 없었다.


 이렇게 되니 자신이 최고경영자에 오를 때까지 준비가 미흡할 수밖에 없고 그 자리에 대한 절박함이나 고마움이 크지 않다. 요즘 발생하는 재벌 자손들의 일탈은 대부분 경영승계 전에 발생하고 있는데 이것은 경영권 승계에 대한 긴장감이 전혀 없다는 반증이다. 


 오너경영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오너경영은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 시장의 의견에 반하는 독자적인 사업 전개, 거대 사업집단의 일사불란한 운영이 가능하다. 현대가 건설에 이어 조선, 자동차까지 키워내는 과정은 정주영이라는 캐릭터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은 늙어도 기업은 늙으면 안된다. 사람은 바뀌어도 기업은 영속해야한다.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도 영업의 귀재를 넘어 사업을 키워내는 재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작은 무역회사에서 출발해 재계 최고의 기업이 될 때까지 김우중이 아니고서는 걸을 수 없는 길을 걸었다. IMF를 못 버티고 무너지긴 했지만 나는 과감히 그를 영웅이라고 칭하고 싶다. 대기업을 키워낸 그들 모두가 우리 경제의 영웅들이다. IMF는 사실 국가적 문제이다. 기업들의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로 물고기가 사는 연못 속에 독극물이 흘러든 것이다. 제일 큰 잉어 중에 한 마리인 대우는 그것을 피하지 못했는데 물론 김우중의 업적만큼 그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기업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다는 점에서 그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비난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영웅들의 시대는 가고 이제 불황과 정체 그리고 나노 단위의 세밀함과 복잡함이 일상인 시대가 왔다. 아직도 관치가 지배하는 한국 경제는 관의 도움이 없이 어떤 기업도 성장할 수없고 현상황을 유지하는 것도 벅차다. 수십 년째 펼치는 중소기업 우대정책은 효과가 거의 없고 어느 정도 큰 물고기도 작은 연못 속의 왕으로 남게 만든다. 내가 현장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로는 대기업 참여가 제한된 영역에서는 큰 중소기업이 갑질을 한다. 사자가 없는 곳에서 치타, 코요테가 왕 노릇 하는 것이다. 작고 약한 동물들에게는 사자가 있으나 없으나 똑같은 것이다.


 작은 기업들이 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크고자 하는 의지를 갖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정책인데 중소기업 우대정책은 이런 효과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런 시대에 재벌 자손들은 개인이 파악하기 힘든 규모의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그들의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되고 인정할만하다. 그러나 그만큼 멀쩡한 기업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나는 기업을 무조건 선, 악으로 보고 싶지 않다. 오너경영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시점에 와서 재벌 2, 3세가 넘어 4세쯤 되었을 때 이제는 변화를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오너경영은 기업을 키우는 시기에 필요하다. 이런 시기가 지나고 점진적인 성장 속에 기업을 방어하고 영속적으로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의 기업들이 어떻게 하는 지를 보고 배워야 한다. 선진국 대기업들이 대부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것은 오래전 이야기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그들은 자식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기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다. 그것이 효율적이고 기업을 더 영속적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기업은 법인이다. 영속적이어야 한다. 기업의 구성원이 죽고 사는 것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지극히 공적인 영역이다. 창업자의 지대한 능력으로 기업이 출발했으나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고 기업은 그것을 뛰어넘어 유지돼야 한다. 이 괴리 속에서 선진국들이 선택한 방법은 전문 경영인의 도입이다. 


 오너경영의 최대 단점은 바로 검증되지 않은 자손들의 경영이다. 창업주만큼 카리스마와 천재적 능력을 가진 사람만 자손으로 계속 태어난다면야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다. 갈수록 정신력은 약해지고 창업정신도 희미해진다.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자손도 나올 수 있고 심지어 기업경영을 하고 싶지 않은 자손도 나올 수 있다. 이기적인 사람, 폭군도 나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영속성을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시대변화를 볼 수 있는 간단한 사례가 있다. 예전에는 문중산이라고 해서 집안의 묘소를 만들 땅을 장손의 이름으로 해서 사두었고 대대로 물려주었다. 친척끼리 큰 불만은 없었고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부모의 묘소를 문중산에 마련했다. 그런데 이것이 요즘 많이 문제가 되고 있다. 문중산을 자기 개인 땅이라고 우기는 자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문중산을 공동재산으로 사단법인 등을 만들어 등록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교전통이 먹히지 않는 시대가 왔다

 유교적 전통이 있던 아버지 세대에서는 사람대 사람, 혈육으로서 모든 일이 정리되었다. 법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바뀌고 후손 중에 가끔 이상한 사람도 태어난다. 후손 중에 이기심이 강한 사람이 나타나 그동안의 전통을 망가뜨리고 친족을 찢어놓게 되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에 의존하는 기업은 안정적이기 힘들다. 기업이 더 성장하고 오래가기 위해서는 이제 오너경영에서 탈피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들어서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기 상황에 있다. 전문경영인과 오너가 함께 있는 형태이다. 과거에는 이런 모습도 없었다. 이명박 전 현대건설 사장 같은 특이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오너 혈족이 아닌 사람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르기는 힘들었다. 


 지금은 최고경영자(CEO)는 대부분 전문경영인이 맡고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오너들이 그룹을 총괄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나 장기 사업에 관련해 목소리를 내고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 경영인이 맡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체제는 껍데기만 안정적이다. 기업이 정말 위험해지는 요소는 장기사업과 대규모 투자이다. 우리는 금호그룹이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 무리한 인수로 인해 존망의 위기까지 가는 모습을 보았다. 한진그룹도 부모가 물려준 알토란 같은 사업들을 자식들이 지키지 못해 사업을 물려받은 4형제 중 2형제만 건재한 상황이다.


 이제 소유와 경영은 분리하는 것이 옳다. 선진국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내린 결론을 왜 무시하고 똑같이 시행착오를 겪으려고 하는가?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지만 지면상 줄여서 말하겠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발전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듣기는 좋지만 현실에서 이뤄지기 힘든 이야기이고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다. 독일, 스웨덴 사례를 많이 드는데 일단 독일도 대기업들이 경제를 이끌고 가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독일차 3사(벤츠, BMW, 아우디) 그 외 보쉬 등 각종 기계류에서 세계 최고의 회사들이 즐비하다. 


 독일이 전후에도 이렇게 빨리 기계기반 제조업에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전통적인 기술문화 덕분이다. 마이스터를 우대하는 그들의 문화와 장인정신, 기술력이 결합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독일처럼 할 기술력도 시간도 없었다.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의 강소기업, 혁신기업 사례는 그들의 수평적인 문화, 학문적 자산에 기반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수직적인 문화, 짧은 학문적 자산에서 높은 수준의 혁신과 창의적 발상은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으로 갈수록 변해가긴 하겠지만 시간이 걸리는 이야기이고 대기업이 경제를 선도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해도 대기업만큼 돈을 받고 복지가 보장된다면 굳이 대기업을 선호할 일도 없고 인재가 골고루 분포하면서 균형 발전하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들의 마인드도 그렇지 않다. 중소기업이 마치 대기업들의 수하이거나 대기업이 어른이고 중소기업이 어린이인 것처럼 하는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 기업은 기업대 기업으로 대해야 한다. 대등하게 계약하고 대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무조건 양보해야 하고 동반성장 등 도덕적 명제에 따라 무슨 자선사업하듯이 중소기업을 도와야 한다. 일반적으로 착각하는 것이 중소기업이 덩치 큰 대기업을 이기기 힘들다는 것이다. 라이트급과 헤비급의 싸움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외견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공정한 룰만 적용된다면 중소기업이 그렇게 밀릴 이유도 없다. 항상 공정한 룰이 적용되지 않아서 문제가 터진다.


 중소기업 기술을 빼가는 문제나 납품 갑질 등이 모두 그렇다.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질서와 법을 세우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줄 것 주고받을 것을 받으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억울할 일이 없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도 없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같은 인위적인 틀 속에서 중소기업들을 연약한 양식장 물고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쟁할 수 있냐고 묻겠지만 경쟁할 수 있다고 대답하겠다.


 예를 들어 현재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카카오는 지배적 사업자 위치에 있는데 초창기에는 시장의 혈투가 벌어졌다. 네이버, 다음 등에서도 메신저를 내놓았고 각종 중소 메신저도 많았다. 만약에 네이버, 다음의 진입을 차단하고 카카오가 무혈입성하게 놔뒀다면 지금의 카카오는 없었을 것이다. 카카오는 대규모 자본과 인력을 무기로 접근하는 네이버, 다음에 대항해 아이디어와 독창성으로 승부했다. 


 카카오의 가장 큰 약점은 수익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메신저를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카카오에 수익을 가져다 줄 수단이 없었다. 대기업들이야 자사 서비스와 연계해서 사업지배력만 확장하면 메신저 자체에서 수익을 얻지 않아도 되었지만 카카오는 입장이 달랐다. 이런 헝그리 한 상황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카카오를 살렸는데 우선 카카오톡에서 다양한 기프트콘을 선물할 수 있는 ‘선물 보내기’가 생겼고 쇼핑몰처럼 선물로 고를 수 있는 품목이 다양해졌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출처 : 카카오 홈페이지)

 여기에 캐릭터 이모티콘을 개발해 스마트폰 특유의 큰 컬러 화면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때 유명해진 캐릭터들은 상품으로 제조되어 카카오의 상징처럼 되었다. 또 국민게임이라고 불렸던 애니팡의 대히트 역시 혼탁한 시장에서 카카오를 독보적인 존재로 끌어올려주었다. 게임을 메신저와 연계하여 수익을 올린다는 발상은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었다. 메신저가 플랫폼이 된 것이다. 그 후 카카오스토리 등 연계 서비스들이 등장해 지배력을 키웠고 결국 자기들을 공격하던 대기업 다음커뮤니케이션스를 사실상 인수하게 되었다. 


 이것은 카카오가 그만큼 절박하고 헝그리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지 중소기업 입장에서 적당히 수입이 보장되는데 뭐하러 위험한 도전을 하겠는가? 


 정부의 역할은 기초적 지원에 머물러야 하고 중요한 것은 강력한 시장의 질서, 법준수 문제이다. 중소기업도 노동법에 철저히 적용되어야 하고 대기업은 중소기업과의 계약관계, 납품관계에서 법을 위반해서는 안된다. 단가 후려치기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자들은 대부분 당연하다는 입장이고 좌파 경제학자들은 이를 갑질로 본다.


 현장에서 실제로 그런 문제가 있다. 대기업이 혁신으로 돌파해야 할 문제를 중소기업 납품단가 인하로 떠넘길 수 있다. 즉 혁신을 떠넘기는 것이다. 이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그것이 반드시 혁신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혁신보다 쉬운 것이 있다. 그것은 편법과 요령이다. 중소기업은 어려운 사정 때문에 혁신보다는 쉬운 길을 택할 수 있다. 제품 소재를 안전기준만 겨우 통과할 정도로 싼 것으로 바꾸고 납품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무임금 야근을 늘린다. 겉만 번지르하게 날림으로 만들 수도 있다. 혁신이 아니라도 싸게 만드는 방법은 많다. 


이게 혁신인가? 자유주의자들의 시각은 여기서부터 틀린다. 그렇다고 좌파 경제학자들의 시각이 전적으로 맞냐면 그것도 아니다. 

한국경제는 혼돈에 있다

 만약 중소기업 지원만 한다면 시장에서 혁신은 필요 없게 된다. 대기업 진입이 차단된 시장에서는 큰 중소기업들이 시장을 싹쓸이한다. 시장을 장악한 이들은 중소기업 지원의 혜택은 계속 받으면서 혁신은 하지 않는다. 혁신할 이유도 사실 없다. 어차피 시장은 장악했고 대기업 같은 위험한 경쟁자는 들어오지 못하는데 혁신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여기서도 이익을 더 늘리겠다고 3차 벤더나 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항상 약자이고 선은 아니다. 대기업이 아니어도 갑질은 계속되는 것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란 것도 어떻게 보면 난센스이다. 현재 어떤 업종이 중소기업이 하기 좋은 업종이라고 해서 계속 그러란 법이 있는가? 이건 중소기업만 해야 한다고 누가 단정하고 누가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산업은 혁신과 융합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누가 이 업종은 중소기업만 해야 한다고 정할 수 있는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는 혁신이 나오기 어렵다. 경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끼리는 경쟁이 약하다. 서로 암암리에 나눠먹기가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예를 들어 최근 간편식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골목상권을 뺏어간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1인 가구가 늘고 바쁜 현대인이 빠른 요리를 선호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골목상권'이란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단어를 앞세워 특정 업종을 그들만의 것으로 독점하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실질적이 못하다.


 산업이 어떻게 융합되고 성장할지 예측하기 힘든 게 현대사회이고 미래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사업은 중소기업만 하라는 정책은 혁신을 가로막고 결국 우물 안에서 우리끼리 해 먹자는 뜻밖에 안된다. 설사 우리나라 안에서 중소기업들끼리 한다고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그런 게 없다. 그럼 이들과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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