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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Sep 06. 2020

60대 기업 경영진단 - 한국테크놀로지 그룹 -

38.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소개

 재계 38위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하 한테크)인데 재계에 웬만큼 관심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 이게 한국타이어그룹이라는 걸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2019년 5월 일괄 변경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라는 이름은 조현범 부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기업에서 그룹명을 변경한다는 것은 나라의 연호를 바꾸는 것과 같다. 대기업은 점하나 바꾸는 것도 어려울 만큼 관료화되어있는데 이런 곳에서 사명을 바꾼다는 것은 한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한테크의 최대주주가 종전 조양래 회장에서 조현범 부사장으로 바뀌었는데 이에 관한 얘기는 근황에서 자세히 하겠다.


 2020년 5월 코스닥기업과 이름이 같아서 법원에 가처분 신청까지 들어왔다(출처 : 조선비즈, 20200526,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6/2020052603922.html). 한테크 정도 큰 기업에서 이름을 짓는데 이런 검토도 하지 않았다는 건 매우 실망스럽다. 작은 기업이라서 그냥 넘어간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이 코스닥기업도 자동차 관련 업종이라 그냥 넘어가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오너를 보필해야 될 참모들의 수준이 의심스럽다.


 한테크는 범효성그룹 가문으로 타이어 부문에서 국내 라이벌인 금호타이어가 모기업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 동안 멀찌감치 앞서 나가고 있다. 

매출이 3배가량 되니 이제와서는 라이벌이란 수식어도 어울리지 않는다. 금호타이어의 경우 국내 3위인 넥센타이어에 턱밑까지 쫓기고 있는 실정이라 한국타이어를 쫓기엔 자기 코가 석자이다.(출처 : 뉴스핌, 20200713,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00713000360)


 효성그룹도 재계 역사로 보면 만만한 회사가 아니다. 효성의 창업주 조홍제 회장은 삼성의 이병철 회장과 삼성 창업을 함께 했던 인물로 독립해 나와서 효성을 이만큼 키웠다. 그것을 물려받아 현재의 효성과 한국타이어가 재계에 남아있는 것이다.


근황

 2020년 6월 한테크의 회장인 조양래 회장은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이 아닌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 전량을 매각해 승계를 마무리했다.


 이와 관련하여 형제의 난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한데 개인적으로 언제까지 이런 뉴스를 봐야 하는지 착잡하다. 이번 승계는 효성그룹까지 포함하면 3세 승계에 해당하는데 기업의 미래가 한가족의 질서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것은 이만큼 발전한 우리 경제의 기준에서 볼 때 후진적인 문화의 한 면이 아닐 수 없다.

벌써 자식들의 강경대응이 나오고 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오너가 건강한 동안에 승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롯데그룹처럼 지나치게 끌다가는 그룹의 큰 폭탄이 될 수 있는 문제가 바로 경영권 승계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본사 사옥(출처 :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홈페이지)

 언론에서는 새 오너에 대해 경영을 잘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데 솔직히 언론에서 찬양한 경영자들이 나중에 무너진 경우도 많다. 경영권 세습에 대한 비판은 다른 글에서 많이 했으니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아무튼 대주주가 차남으로 결정된 이상 그룹은 빨리 지분을 정리하고 지휘권을 단일화할 필요가 생겼다.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나 역대 사례를 볼 때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보통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오너가 명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발생했다. 한진그룹의 경우 오너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발생했고 롯데나 현대는 오너가 경영권을 너무 오래 잡고 있다가 고령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상황에서 발생했다. 조양래 회장의 경우 83세로 고령이지만 지분 전량을 직접 넘겨줄 만큼 확고한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다른 형제들이 여기에 대응할 수단은 많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 같은 유교전통이 있는 곳에서 장남이 대권을 이어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씨는 있다고 봐야 하고 만약 조양래 회장이 사망할 경우 다른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지금 제일 난처한 사람은 장남 조현식 부회장이다. 직책도 동생보다 높은 데 아버지로부터 명확하게 비토를 받은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


 만약 이 상황을 받아들일 경우 빨리 부회장직에서 사퇴하고 계열사 중 괜찮은 것들을 챙겨 분사하는 것이 좋다. 이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는 동원그룹이다.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은 장남에게 동원증권을 물려줬고 동원그룹은 동생에게 주었다. 장남은 동원증권을 가지고 독립했고 현재 메리츠금융이 되어있다. 굳이 이렇게 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금융에 수완이 좋은 장남의 가능성을 알아본 게 아닐까 싶다. 실력 있는 경영자는 기업의 크기를 탓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동원의 사례는 한테크에게 좋은 예가 된다.


 나이를 감안할 때 조양래 회장이 굳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그만큼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보수적인 재벌 집안에서 장남의 의미는 남다른데 다른 자식들이 가질 불만과 불확실성 리스크를 모두 감안하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냉정한 경영능력 판단이 들어갔을 것이란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효성의 창업주와 연관 있는 삼성도 장남이 아닌 삼남 이건희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바가 있다. 아마도 평생 가장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진단

이제 한테크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겠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라는 다소 이상한 이름으로 사명을 변경했는데 개인적으로 좋은 이름은 아닌 것 같다. 한자와 영어가 섞여있고 여기에 그룹까지 붙어있는 건 더 이상하다. 이럴 때는 약자로 HT라고 하던가 한 가지 언어로 통일하는 게 더 깔끔해 보인다. 작명하는 솜씨만 봐도 어느 정도 센스가 보이는데 이것은 크게 점수를 주기 어려울 것 같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R&D센터-한국 테크노돔 (출처 :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홈페이지)

 한테크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라는 지주사를 아래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타이어), 아트라스BX(배터리), 한국네트웍스(IT/물류), 동그라미 파트너스, 모델솔루션(시제품 제작), 엔지니어링웍스(생산공정 최적화, 설비기계 제작), 프리시즌웍스(몰드, 컨테이너), 카앤라이프(온라인 자동차 매매 중개) 등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출처 : 한테크 홈페이지)


 전체적으로 보면 타이어 사업에 집중된 사업구도가 보인다. 이것은 한테크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향후 형제들 간의 계열분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서로 사이가 좋으면 모르지만 악감정이 쌓이면 연계된 사업을 분리해서 나간다는 것이 어렵다. '아트라스BX', 시제품 제작 전문업체인 '모델솔루션', 수입차 딜러쉽을 하는 '카앤라이프 정도'가 그나마 타이어와 무관하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회사이다.


 최근 한테크는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다양한 인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먼저 '모델솔루션'이란 2018년 인수했는데 이 회사는 시제품을 만드는 회사이다. 목업(Mockup)이라고도 하는데 신제품 양산 전에 시제품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한다. 주로 해외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데 이 기업을 인수한 것은 왜일까? 언론에서는 두 가지 시각을 보여주는데 하나는 인수한 회사의 고객을 노리는 것이다.(출처 : 더 벨, 20180514, https://www.thebell.co.kr/free/content/ArticleView.asp?key=201805110100017610001075&lcode=00)

또 하나는 이 회사의 시제품을 통해 유망기술을 빨리 파악하기 위한 것이란 주장이다.(출처 : 한국경제, 20180511,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8051147851)


 나는 한국경제의 주장에 더 동의한다. 이 회사의 고객으로 테슬라 등 자동차 회사가 있어서 한테크의 미국 시장 진출에 유리하다지만 이건 너무 단견이다. 테슬라가 시제품을 이 회사 하고만 거래하는 건 아닐 것이고 모델솔루션 매출이 연간 500억 남짓한데 엄청난 영업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해외 고객 비중이 커서 해외 영업망의 하나로 쓸 수는 있겠지만 한국타이어 역시 해외 영업망은 모델솔루션 보다 작지 않다. 


 한국타이어가 해외진출을 안 해본 기업이라면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고작 매출 500억 회사를 사들여 미국 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낮은 얘기이다. 그보다는 사업다각화를 위해 유망한 기업 인수를 염두에 두고 신기술 정보가 가장 빠르게 나오는 시제품 제작 회사를 샀다는 것이 훨씬 논리적이다. 굳이 해외 고객이 많은 회사를 인수했다는 것은 한테크가 수준 높은 기술정보를 조기에 취득해 싼값에 투자해보겠다는 심산이 아닌가 한다. 한테크가 노리는 기술이 타이어 관련 기술인지 그 외 기술인지는 알 수 없다.

한국타이어 오프라인 공급망-티스테이션(출처 :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홈페이지)

 개인적으로 한테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타이어 산업을 좀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벗어나더라도 요즘 같은 융합기술 시대에 어느 정도는 다 연결된다. 개인적으로는 시너지를 생각하면 화학소재 쪽이나 타이어 원료 산업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타이어는 다양한 원료가 들어가는데 원료 공급에 따라 원가 리스크가 따를 수 있다. 타이어 기술을 다른 분야로 확대 적용할 수 있는지도 연구해야 한다.


 그 외에도 후방산업을 벗어나 타이어를 직접 쓰는 전방산업에 대한 투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요즘 같아서는 전기차 사업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기차 분야에서 테슬라가 독주하고 있지만 한두 개 업체는 기존 자동차 업체가 아닌 신생업체가 나올 수 있다고 보는데 아무튼 이 분야에 투자해서 전방산업 쪽도 확보해두면 포트폴리오가 좋아진다.


 계열사인 '카앤라이프'에서는 자동차 매매중개 스타트업 ‘웨이버스’를 2019년 인수했는데 이런 걸 보면 한테크 경영진의 관심은 IT나 신기술 쪽에 있는 것 같다. 이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타이어라는 제조업에서 벗어나 부가가치 높은 산업으로 이동하는 것도 좋다. 테슬라가 자동차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우주선, 인공위성 사업까지 하는 것은 단순히 돈만을 노린 것은 아니고 미래에 대한 일론 머스크의 청사진을 따라가는 것이다. 한테크도 그런 면에서 유망한 기술을 먼저 투자해서 신사업 진출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타이어를 오프라인으로만 취급하지 말고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설치와 타이어 진단은 직접 와서 해주는 등의 서비스도 좋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매매 플랫폼을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존에 오프라인으로만 진행되던 사업들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은 경우가 많다. 이것을 O2O(online to offline) 사업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이 것이 부동산업이다.


 자동차 분야도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용자들의 온라인 활동이 활발한데 상업적 플랫폼과 연결이 잘 안 되고 있다. 정비, 세차, 부품 구매/설치 등을 온라인상에서 해결할 수 있게 플랫폼을 제공하면 좋을 것이다. 기존 커뮤니티를 인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워낙 타이어를 위주로 계열사 구조가 탄탄해서 정리할 회사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프리시즌웍스나 엔지니어링웍스등은 제조공정을 계열사로 나눈 것 같아서 무늬만 계열사지 사실상 한국타이어의 후방지원업체로 보인다. 모델솔루션 인수를 보면 해외기업에 대한 인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회사를 인수하는지 향후 행보를 보면 오너의 사업수완을 판단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망

새로운 경영자가 오면 회사가 많이 바뀐다. 한국타이어는 지금 경영권 승계로 형제간 애매한 상황에 놓였는데 지분관계를 정리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이런 일은 가족이라도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가능하면 부모가 살아있는 상황에서 정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때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정리를 하려고 하면 다툼이 생기게 마련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제품 라인(출처 :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홈페이지)

 그룹 규모가 크지 않아서 경영권을 못 받은 나머지 형제들이 받을 기업들이 별로 없는 상황인데 홈페이지에 나온 기업 외에도 지분 참여한 기업들은 더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타이어의 지분을 정리하면 그걸로도 실탄이 확보되므로 다른 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다. 새로운 그룹 총수가 이 모든 걸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지가 첫 번째 과제이다.


 사업은 그다음 이야기이다. 안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서 밖에 나가서 싸워야 한다. 한테크는 연간 2천억 안팎의 영업이익이 발생하는데 국내 업체들과는 더 이상 비길바가 아니고 브랜드디렉토리라는 곳에서 발표하는 타이어 회사 랭킹에서 2020년 글로벌 7위를 했다(https://brandirectory.com/rankings/tyres). 다른 곳에서 발표하는 자료도 비슷하다.


 일단 톱 5위까지 점유율은 크게 차이 나지 않으므로 5위권에 드는 것이 우선과제이다. 타이어 시장도 전통의 강자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가장 안 변하는 시장 중에 하나이다. 자동차에서 100년 역사를 깨고 테슬라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 과연 타이어 시장은 그런 게임 체인저가 나올지 주목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타이어의 관념을 깨버릴 수 있느냐이다. 예를 들어 펑크도 나지 않고 수명이 열 배 되는 타이어를 개발했다고 할 때 대부분의 타이어 회사는 최대한 이 제품 출시를 늦출 것이다. 기존 타이어 설비도 유지해야 하고 판매량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의 역사를 보면 오래되고 덩치만 큰 회사들은 다 이래서 망했다.


 혁신은 과감한 기득권 양보를 통해 가능하다.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진출이 느린 것도 디젤 등 내연기관의 기득권을 못 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타이어가 필요 없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어떨까? 타이어 회사가 스스로 이 기술을 공개할 용기가 있을까? 나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스마트폰이 나왔는데도 피처폰을 고집하다 나락으로 떨어진 휴대폰 회사들이 많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


 한테크도 이점을 명심하고 부단한 혁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차남이 스스로 경영능력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경영권 위협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압도적인 실적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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