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르히아이스 Jun 21. 2020

삼성의 대국민 사과에 대한 단상

 삼성의 글을 완료하기 전에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관련하여 앞으로의 변화 및 바람직한 경영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은 사과문을 통해 무조노 포기, 자식의 경영권 승계포기, 시민사회 소통 등을 약속했다. 어차피 시대변화에 따라 맞을 매였다고 생각한다. 오너경영이란 것은 왕조국가와 같다.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나오면 태평성대를 이루지만 망난이가 왕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를 현대국가로 지칭하는 이유는 그 과정의 정당성도 있지만 시스템적으로도 한 사람의 혈족이 능력과 상관없이 평생 한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것보다 투명한 선출 절차를 통해 나온 지도자가 정해진 임기동안 나라를 제한된 권력으로 통제하는 게 영속적이며 합리적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불도저 경영이나 뚝심 경영은 전문 경영인 체제에서는 보기 힘들것이다. 이런 리더쉽이 필요한 것은 기업의 초창기이다. 이때는 창업주를 중심으로한 카리스마적 리더들이 맨 앞에 나서 회사를 이끄는 게 효율적이고 그게 경쟁력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회사가 커지고 사업이 복잡해지면 한사람의 카리스마가 아닌 시스템에 의해 회사를 경영할 방법을 찾아야한다. 이것은 회사가 영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전문 경영인 체제에서 혁신적인 성장은 쉽지 않다는 단점은 있다. 단기간에 실적을 보여줘야 자리가 보전되기 때문이다. 몇십년 후 기업의 성장동력 따위에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하지만 큰 성장은 못해도 회사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오너경영보다 훨씬 크기때문에 이제 성숙기에 들어서는 기업들은 방향을 그쪽으로 해야한다. 


 삼성은 위기때마다 이건희 회장의 카리스마적 리더쉽으로 이를 돌파했고 이것은 오너경영을 합리화하는 논리적 근거였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공식이다. 이건희 회장만 해도 형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왕좌를 차지했다. 어쩌면 장남이 아닌 삼남을 선택한 이병철 회장의 혜안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자식도 많이 놓지도 않고 헝그리 정신도 찾아볼 수 없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재벌 2세들의 일탈/악행들이 이를 방증한다. 


 강력한 유교적 전통에 따라 어릴때부터 정신무장되어오고 치열한 경쟁과 훈련끝에 왕좌에 오르던 시대가 아니란 말이다. 이제 삼성은 유교적 전통을 버리고 변화를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족하는 주주 중심 전문경영인 체제로 거듭나야한다.


 삼성의 이번사과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강조한 점. 물론 기업이 사회적 책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은 정부가 아니다. 기업을 마치 투표해서 결정하는 정부처럼 생각하면 오산이다. 고도의 전문지식과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뇌의 찬 결단을 해야하는 자리가 바로 경영자의 자리이다. 회사 외부의 사람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 그들은 사익 혹은 자기들의 이상을 위해 삼성에게 이런 저런 말을 할 수 있다. 그것을 소통이란 이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삼성이란 배는 언제 산으로 갈지 모른다. 삼성이 소통하고자 한다면 내부 직원들, 고객과의 소통이 먼저일 것이다.


 또하나 이번에 설립된 삼성준법감시 위원회에 관해서도 걱정이 앞선다. 준법감시위원회라고 하니까 무척 중립적이고 반드시 따라야할 것 같지만 이 조직도 책임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무엇을 대표하는 조직도 아니고 뚜렷한 목적이 있는 조직도 아니다. 이들은 권고만하고 그 권고에 따랐을 때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이재용 부회장, 출처 : 연합뉴스

 재판이 진행중인 상태에서 사과문을 올린 것 역시 아쉽다. 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왜 사과를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재판부 역시 마치 암행어사라도 된듯이 삼성의 경영에 대해 충고하는 모습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삼성에 대해, 경영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재판부가 충고하는가? 재판부도 책임없는 조직이긴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책임없는 자들이 삼성을 둘러싸고 반강압적인 권고를 쏟아내고 있다. 


 준법감시위원회가 삼성에서 상설기구가 될 경우 다른 기업으로 번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예전부터 준법감시기구를 기업마다 두자는 안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있어왔다. 법으로 의무화하자는 얘기도 많았는데 언뜻보면 좋은 얘기같지만 그 이면에는 법조인의 밥그릇만들기가 숨어있다. 쏟아져나오는 로스쿨 졸업생과 기존 법조계인력은 희소성을 찾기 힘들어졌다. 팔자 고친다는 사법시험 합격은 이미 옛이야기 된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 법조계를 중심으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기업은 이미 회계법인을 통해 회계감사를 받는다. 법적인 문제도 준법감시기구가 없어서 일어난다고 볼 수 없다.  준법감시기구의 공정성은 어떻게 믿을 것이며 책임도 없는 이들이 월권할 가능성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준법감시기구끼리 협회같은 것을 만들거나 학연, 지연 등으로 얽혀서 기업을 좌지우지 할 경우 그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가?


 기업의 창의적 경영활동은 모두 법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논의의 출발이 법조계의 법 만능주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혁신이란 보통 법보다 빠르다. 법의 관점에서 경영을 바라보면 혁신이 나오기 어렵다. 합법인지 불법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게 바로 경영 리스크인데 준법감시기구에서 권고하는데로 지극히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경영만 한다면 혁신적인 기업은 나오기 힘들다.


 삼성이 반도체에 투자할때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우리나라는 외국의 제품을 조립이나 하면 된다는게 그 사람들 논리였다. 그리고 그때는 그게 지극히 합리적 의견이었다. 조선 산업도 마찬가지고 경부고속도로도 그렇다. 컴퓨터만 만들었던 애플이 갑자기 아이팟을 만들었을 땐 어땠을까? 회사의 명운을 걸고 해야하는 이런 사업들이 과연 법적으로 따졌을 때 무죄라고 할 수 있을까? 회장의 독단이자 월권은 아니었을까?


 준법감시기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창의적 생각을 방해한다. 감시와 감독이 예술작품 창작의욕을 감퇴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준법감시위원회가 있으면 법을 지키고 도덕감시위원회가 있으면 도덕적으로 살거라는 일차원적 생각부터 버려야한다.


 그런 논리면 법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위원회를 만들면 사회문제들이 다 해결 될 것이다. 채용감시위원회도 만들고 노동감시 위원회도 만들자. 창의력증진을 위해 창의력위원회도 만들고 소통을 위해 소통위원회도 만들자.(이들중 일부는 벌써 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걸 위한 조직을 만들면 해결된다는 단발마적인 반응에서 우리는 벗어나야한다. 삼성이 법을 지키게 만들려면 판결을 앞두고 대중앞에 나와 사과하게 만들게 아니라 기업인들에게 무엇이 그들을 제약하는지 먼저 물어봐야한다. 법을 어겼다면 왜 어겼는지를 먼저 살펴봐야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없으면 10단계의 준법감시위원회가 있어도 위법사항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아픈 사람이 있는데 그 병이 왜 생겼는지 알아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병에서 해방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우리 사회는 이슈에 대해 불같이 달아올라 누군가를 욕하고 징벌주는데만 열중하고 정작 그 문제의 원인과 근본적인 해결방법에는 무관심하다. 수준 낮은 언론과 무책임한 시니어들, 정치적인 오피니언 리더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도 재벌과 서민은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상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냉정하게 정말 이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합리적은 해결책은 어떤 것인지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30대 기업 경영진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