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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Nov 05. 2022

삼성의 ARM 인수 가능성 분석 -4-

삼성이 인수한다면 ARM은 어떻게 될까? 인수가능성은?

1.ARM은 어떤 회사인가?

2. 인수 시점은 적절한가?

3. 적정가치의 인수는 가능한가?

4. 삼성이 인수한다면 ARM은 어떻게 될까?

5. 인수 가능성 예측


 삼성이 ARM을 인수한다고 치고 ARM의 미래를 한번 예상해보자. 지금도 퇴직자가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관리만 하는 재무적 투자자 밑에 있는 ARM으로서는 아마도 획기적인 시도나 미래 장기투자는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건 소프트뱅크가 아니라 사모펀드나 국책기관에 인수되어있는 회사들이 다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전문경영인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단기적으로 재무제표를 좋게 보이게 하려면 장기투자를 줄이고 재무제표에 잡히는 자산과 단기 수익을 늘리는 일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90%의 독점 시장을 갖고 있는 ARM에게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만 봤을 때는 독이라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시장은 늘 변하고 위기는 늘 찾아온다. 혁신이 없는 기업은 진화하지 못한 생물처럼 도태되게 마련이다.


 독점적 시장구조도 독에 가깝다. 경쟁자가 있어야 혁신이 나오기 때문이다. 인텔이 그렇게 잘 나가는 시절에도 애플이나 AMD 같은 경쟁자가 있었다. 모바일 시대가 오면서 인텔의 전성기가 한참 위협받고 있지만 이것도 잘 따져 보면 너무 독점적인 시장이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인텔은 모바일의 확장을 너무 간과했다. 위기가 없었다는 건 그만큼 기업이 체질개선을 할 기회가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마치 실전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신무기처럼 스펙만 가지고는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삼성에 인수된다는 가정을 해보자. 이재용 부회장의 스타일로 볼 때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하만카돈의 사례로 봐도 마찬가지이다. 내부적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볼 때 극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실적이 개선되었다고 하는데 매출이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보아 회사가 성장했다기보다 사업조정을 통해 관리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ARM도 이렇게 사업조정을 받으면서 관리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누가 CEO로 오든 일단 재무구조를 좋게 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좋은 상태지만 자기 실적을 보여주기 위해선 수건을 한번 더 짜면 된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건 DNA와도 같은 것인데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변수는 외부에 있다고 본다. 삼성이야 반도체 사업을 늘 해왔고 관리를 못해 회사를 망가뜨릴 정도는 아니다. 외부 변수에는 어떤 게 있을까? 일단 대외적으로는 ARM이 중립을 표방할 것이다. 삼성의 다른 부품 사업처럼 차별 없이 지금처럼 거래를 이어간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고객사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당장 애플의 경우 삼성에 여러 부품을 의존하고 있는데 핵심적인 칩까지 의존한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현재 애플의 칩은 ARM 설계를 기반으로 자체 설계를 가미해 TSMC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플 입장에서는 경쟁자 삼성과의 거래는 어찌 보면 영업비밀이 새어나가는 것일 수도 있고 기술유출까지 우려되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거래일 것이다. 그러나 워낙에 좋은 품질과 생산능력, 탈중국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부품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 부품이 들어가는 곳은 램과 디스플레이, 카메라 렌즈 등이다(출처: 한국경제, 2022.05.05,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2050556801). 


 여기서 스마트폰의 두뇌라고 하는 AP(Application Processor)까지 의존하기엔 부담이 크다. 파운드리까지는 그렇다 쳐도 칩 설계의 원천 로열티를 삼성에 의존한다는 건 경영차원에서도 리스크가 너무 크다. 즉 삼성이 애플의 목줄을 쥐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삼성이야 달라질 게 없다고 하겠지만 받아들이는 기업의 입장은 그게 아니다. 당장 삼성도 애플이 ARM을 인수한다면 비상 걸리지 않겠는가?


 재밌는 것은 ARM의 성장은 애플의 성장에 상당 부분 기인했다는 점이다. 애플이 모바일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계속 개척할 때마다 곧바로 ARM의 영역 확장이 자동으로 이뤄졌다. 노트북 같은 경우 당연히 인텔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지만 애플이 ARM 기반 자체 칩을 내놓으면서 여기서도 영역 확장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애플에서 개발한 칩은 오직 애플 제품에만 들어간다는 한계는 있지만 그만큼 확실한 매출도 보장되는 것이다. 


 둘 간에 서로 의존적인 관계가 있다는 건데 애플은 어딘가에 의존하기보다는 항상 독자적인 것을 추구해왔던 기업문화가 있다. 운영체제, 자체 칩, 호환도 안 되는 독자 상품군이 그랬다. 하다못해 마우스, 키보드까지 전용으로 만든다. 대량생산의 제조업 마인드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행태이다. 

ARM CEO 르네하스(출처: ARM 홈페이지)

 그런 측면에서 ARM이 삼성에 인수된다면 애플은 독자적인 길을 갈 수도 있다. 독자적으로 못 가는 기업들은 안정을 택하겠지만 삼성과 같은 배에 타야 하는 선택에 몰리게 된다. 삼성이 가는 방향이 곧 그들의 방향이 되는 것이다. 애플은 엔비디아의 ARM인수 과정을 보면서 여러 가지 검토를 했을 것이다. 여기에 관한 상당히 분석적인 기사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출처: CIOKOREA.com. 2021.12.07, 칼럼:애플이 ARM 이후의 삶을 개척하는 이유, https://www.ciokorea.com/news/217619).


 그런 측면에서 애플이 인텔 칩을 버리고 자체 개발 칩인 M시리즈로 갈아탄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물론 M시리즈도 ARM 기반이지만 이런 리스크 있는 일도 서슴없이 결정하는 게 애플이다. 결과는 대성공. 오히려 최적화에서 효과를 내며 성능 향상에 기여했다. 많은 회사들이 ARM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ARM이 가진 칩 구조의 우수성도 있지만 다른 길을 갈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플은 다르다. 물론 엄청난 리스크가 따르겠지만 애플이라면 가능하고 사실 애플만이 가능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칩을 바꾼다는 건 운영체제, 펌웨어 등 총체적인 수정을 동반한다. 자체 운영체제가 있는 회사만이 이 도박을 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현재 휴대폰, PC 제조업체 중에 그런 업체는 애플이 유일하다. 게다가 애플만의 독자적인 생태계, 상품시장이 있으므로 리스크도 다른 회사보다 적다. 물론 옮겨가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특허기간이 20년이라 것을 감안하면 단순 기간으로 따져서 지금 당장 시작하더라도 2002년 출원된 특허 정도의 기술은 그대로 갖출 수 있다. 칩 설계를 처음 하는 회사라면 힘들겠지만 애플은 충분한 노하우와 인력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본다. 2002년은 ARMv6(옴니아, 아이폰3G 시절)이다. 

 옛날 기술이긴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ARM철학은 담겨있다. 여기에 회피 기술을 사용한다면 독자적인 설계가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본다. 애플이 ARM 설립에 직접 관여했던 만큼 누구보다 ARM철학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다른 길도 있다. 과연 애플이 ARM 아류의 길을 갈까? 그것보다는 여기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애플은 독자적으로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었다. 그게 독일 수도 약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M시리즈 개발도 그렇고 다들 비웃었던 에어팟등도 마찬가지이다. 애플은 항상 Special, Extra-ordinary의 길을 선택해왔다. 리스크가 있더라도 말이다.

ARM 솔루션(출처: ARM 커뮤티니 홈페이지)

 기술은 늘 새로운 것이 나오게 마련이고 차세대가 있게 마련이다. 애플은 또 다른 차세대 칩을 들고 나올 가능성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쪽을 더 크게 보고 있다. 5년 뒤 10년 뒤 기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들고 나와 애플의 자본력으로 투자한다면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 ARM에 밀려 목숨만 이어가던 2위 회사를 인수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애플 물량만 밀어줘도 상당한 매출이 보장되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거래이다. 다만 생산시설을 보유한 회사를 인수한다면 애플의 철학과 맞지 않아서 부담되는 측면도 있다. 아무튼 삼성이 ARM을 인수한다면 애플은 독자 길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 하나의 길이 있는데 ARM을 삼성이 단독 인수하는 게 아니라 지분투자 방식으로 여러 회사가 나눠서 인수하는 경우이다. 나는 이 경우가 최악이라고 본다. 앞에서 말했듯이 회사가 성장하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게 오너쉽이든 월급사장의 능력이든 상관없다. 소프트뱅크 아래에서 모바일 시장의 호황과 함께 애플 같은 시장 개척자 덕분에 ARM이 성장할 수 있었지만 지분이 흩어지면 정말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모두가 참견해서 어떤 결정도 못 내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반도체를 모르니 간섭이라도 적게 하지만 자기 사업이 직접적으로 얽혀있는 회사들은 다르다.


 ARM이 새로운 칩을 내놓는 시기, 칩의 성능, 개발방향이 모두 자기네 회사들의 실적과 연계된다. 어떻게 입을 다물고 있겠는가? 지분을 비슷하게 가져가서 중립성을 지킨다고는 하는 것도 좋은 게 아니다. 비슷한 힘의 사공이 여러 명 있다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 밖에 답이 없다. 이런 이유로 지금 ARM의 미래를 밝게 보기 힘든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팔고 싶고 팔 방법은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인데 이 상황에서 ARM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 사이 핵심 개발자들은 장기 프로젝트의 투자가 지연되는 것에 불만을 품고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 


5. 인수 가능성 예측

언론에서는 황금빛 전망을 늘어놓고 벌써 설레발을 치는데 나는 삼성이 ARM을 인수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애초에 손정의 회장을 만날 일도 아니었다. 담판을 지을 복안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 특별한 묘안이 있을 수가 없다. 결국 만남의 소득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수를 합의하더라도 독점 규제를 피할 길이 없고 다 같이 인수하자니 각자 셈법이 다르다. SK까지 연합하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사공이 많을수록 합의만 더 어렵게 된다.

ARM 칩(출처: ARM 커뮤티니 홈페이지)

 나는 ARM이 이대로 계속 간다면 전망이 어둡다고 본다. 아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누가 인수를 하든 인수해서 5년 10년 뒤를 내다보고 투자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뜩이나 독점에 빠져서 감각이 마비된 상태에서 어떤 위험이 터져 나올지 모른다. 10년 전에 인텔이 요즘처럼 밀릴 거라고 누가 생각했는가? 


급변하는 시장에서 어쩌면 1위 사업자가 가장 위험하다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가장 시장에 둔감하고 조직이 크며 가장 변화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독립적인 리더십이 필수이다. 재무제표를 안 좋게 하는 투자도 가능해야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


 소프트뱅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기업공개인데 최근에 기업공개 전문가를 영입했다는 뉴스가 있다(출처: 노컷뉴스, 2022.09.28, https://www.nocutnews.co.kr/news/5824738). 그나마 이 방법이 살길이긴 한데 그래도 오너쉽이 약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기업을 공개한 뒤 차츰차츰 소프트뱅크의 지분을 낮춰갈 수도 있다. 소위 국민기업 같은 형태가 되는 것이다. 소프트뱅크로서는 자금 회수가 목적이기 때문에 이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 상징적인 대주주로만 남고 지분 매각으로 자금 대부분을 회수하는 것이다. 현재 지분 70%를 갖고 있는데 솔직히 20%만 들고 있어도 얼마든지 대주주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누군가 공격적으로 지분 취득을 할 수 있다는 건데 그런 리스크는 소프트뱅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소프트뱅크로서는 적절한 엑시트만 하면 된다. 리스크는 오로지 ARM과 관련 기업들의 몫이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ARM은 이런 리스크를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3줄 요약:

1. 엔비디아가 인수에 실패했던 요인이 극복되지 않는 한 삼성의 인수도 실패할 것이다.

2. 삼성에 인수될 경우 ARM 고객사 중 애플은 이탈이 가능하다.

3. 오랜 독점시장과 매각 여파로 ARM은 생각보다 경쟁력이 떨어져 있을 수 있다. 즉 지금이 ARM의 최고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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