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안 한 이유 -2-
2. 왜 하필 휴머노이드인가?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 1장에서 말했듯이 공장에서 쓸 정도의 로봇이라면 인간형일 필요도 없고 현재도 충분히 좋은 산업용 로봇이 나와있다. 산업용 로봇과 휴머노이드의 차이는 단순히 외형이 아니라 철학의 차이이다. 산업용 로봇은 고정된 위치에서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 실내이고 목적이 특화되어있다.(Narrow Purpose)
하지만 휴머노이드는 이동하고 실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게다가 용도도 특화되기보다는 매우 광범위하다. 배터리는 제한적이고 인간과 직접 교류하고 날씨, 지형 등 외부 요소와도 직접 닿게 된다. 이것은 작은 차이가 아니다. 따라서 이런 차이를 감수하고 휴머노이드를 선택했다는 건 다른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1차적으로 테슬라가 노리고 있는 것은 공장 노동이지만 이건 산업용 로봇들이 하던 노동과 다를 것이다. 산업용 로봇이 있는데도 인간들이 하던 작업.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면 복잡한 곡면을 따라 실리콘을 바른다든가 매우 협소한 위치에 볼트를 조이는 것, 공정 중간이나 후반부에 완성도를 체크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이것도 산업용 로봇이 상당 부분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출처: 테슬라역동성과 세밀함은 서로 다른 방향이다
이미 테슬라에서는 100% 자동화를 위한 시도를 했는데 기술적, 알고리즘적 한계로 인해 완전히 달성하지 못했다. 이 남은 부분을 바로 테슬라 봇이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테슬라봇의 아주 아주 1차적인 목표이다. 잘 통제된 환경에서 여러 데이터를 쌓으면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이 단계가 완료되면 본격적으로 밖으로 나가서 다목적 로봇으로 사용될 것이다. 이때부터 휴머노이드의 진가가 발휘된다. 왜냐하면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기능을 다하려면 인간이 만든 사회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신체와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기존 인프라에 쉽게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테슬라봇만 해도 굳이 관절과 인대 같은 것까지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다. 해부학적 구조에 이렇게 신경 쓰는 이유는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활하고 움직여서 별도의 인프라나 비용을 발생시키지 않기 위함이다.
인간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인간과 닮아야 유리하다
예를 들어 가위는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으로 잡게 되어있고 물조리개는 손가락 4개가 들어갈 정도 크기의 손잡이가 달려있다. 자동차는 표준체형의 다리 길이를 가진 사람이 오른발로 엑셀과 브레이크를 조작할 수 있게 되어있고 현관문의 손잡이는 허리 높이에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계단 한 칸은 대체로 발목보다 조금 높은 높이이며 버스 앞문은 사람 키보다 조금 크고 넓이도 어깨보다 조금 넓다. 신용카드나 문고리의 크기는 한 손에 들어올 정도이고 자동차를 비롯해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좌석의 크기는 인간의 평균 신체에 맞춰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형이 아닌 로봇을 만든다면 도저히 인간사회에 녹아들어 갈 수가 없다. 아틀라스 같은 로봇이 텀블링하면서 뛰어다닌다고 해봐라. 당장 민원이 들어올 것이다. 인간사회에서는 뛸 수 있어도 걸어야 한다. 그게 예의다. 지금 배달 로봇들이 한참 만들어지고 있는데 박스형의 로봇들이 초기 형태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활용성이 많지 않을 것이다. 계단은 어떻게 올라갈 것이며 엘리베이터는 어떻게 탈것인가? 문고리는 어떻게 열 것이며 자동문 버튼을 어떻게 누를 것인가?
출처: 테슬라사물을 인식하고 외부세계와 소통하는 것이 인간과 비슷할수록 뛰어난 로봇이 나올 것이다
머스크가 집요하게 휴머노이드를 강조하는 것은 이런 노림수가 있기 때문이다. 뭣도 모르고 로봇이 좋다니까 그냥 따라가는 기업들은 이 대목에서 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게 되어있다. 보기 좋으라고 인간형으로 만든 게 아니란 말이다.(그런 목적도 있긴 하다.)
정말 다이내믹한 모습을 보여주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들은 사실은 테슬라봇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