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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Aug 12. 2023

한국이 재난 공화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기상재해는 올해도 여지없이 큰 피해를 내고 지나갔다. 매년 반복되는 수해. 하지만 우리는 달라진 게 없고 보상과 총력복구라는 똑같은 뒷북만 치고 있다. 왜 반복되는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원인을 몇 가지로 분석해 봤는데 상당 부분 우리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는 항상 정치인과 공무원을 욕하지만 사실 그들도 다 우리가 만든 자화상이고 그 안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 스스로 바뀌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뭘 바꿔야 할지 알아보자.


1. 아직도 갈 길 먼 시민 의식 수준

우리는 어떤 사고가 나면 정치인을 욕하면서 가볍게 책임에서 벗어나고 자신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도덕적 우위에 선다. 재빨리 돌을 던지면 군중 속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인을 뽑은 것도 우리고 이런 사회를 만든 것도 우리 자신이다. 지도층이 사회를 만들어간다고 하지만 집단지성으로 그들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시민의 책임이다. 


 매번 안전불감증을 말하는데 현장의 우리는 과연 어떤가? 공무원, 재벌을 욕하지만 현장에서 우리 스스로 해야 할 걸 하고 있나? 우리는 일터에서 안전과 안이의 사이에서 어떤 걸 선택하는가? 정말 위에서 짜인 대로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잘못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우리는 안전을 먼저 챙기는가?


 나는 얼마 전 산책을 하고 있는데 오픈을 앞둔 아파트 건물 앞에서 대리석을 그라인더로 갈고 있는 근로자를 보았다. 대리석 갈아낸 먼지가 사람이 보이지 않을 만큼 뿌옇게 퍼져 나오는데 먼지 가림막 같은 건 전혀 없었고 심지어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있었다. 피할 길이 없어서 나도 그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을 다른 현장에서도 목격한 적이 있다. 


 우리의 안전의식이 정치권의 안전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요구하지 않는데 어떻게 정치권에서 인식하고 바꾸겠는가? 당장 도로에만 나가봐도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너무나 적다. 규정속도를 지키고 가면 뒤에서 빵빵거리고 난리다. 단 1,2분 먼저 가려고 그렇게 화가 나있는 사람이 우리 자신이다. 직진, 우회전 겸용차선에 직진하려고 서있으면 뒤에서 난리를 친다. 그래봐야 몇 분인데. 


 우리의 안전의식은 곧바로 정치권에 연결된다. 여러분이 시장이라면 시민들에게 돈을 뿌리는 각종 지원금에 예산을 쓰겠는가 보이지도 않는 지하수로 개선, 대피소 건설 등에 쓰겠는가. 전자에 돈을 쓰는 사람은 당선될 것이오 후자에 쓰는 사람은 떨어질 것이다. 이게 우리 현실이다. 인재로 사고가 나도 그때뿐이고 선거를 하면 어차피 당을 보고 투표하니 그 당에 충성하는 사람이 당선된다. 안전을 말하지만 정말 안전을 생각하는 사람은 선거에서 떨어진다. 이래놓고 안전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정치인을 욕할 필요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의 수준이 우리 자화상이다. 개인적으로 각 시도에 대피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여기 돈을 쓰는 단체장을 거의 보지 못했다. 전쟁에 대비한다는 나라에서 이렇게 신경 안 써도 되나 싶을 정도이다. 자연재해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갈 곳이 없어서 급히 찜질방이나 모텔을 대여하는 것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진등의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 것일까? 얼마 전 북한 미사일 발사에 따른 대피경보가 울렸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지하철로 간다고 하지만 막상 지하철에 가도 별건 없다. 거기 뭐가 있는가? 당장 피난을 될지라도 식량도, 잘 곳도 없다. 물까지 끊어지면 그냥 지하실과 다를 게 없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그마저도 없다. 어디 가서 피난을 할까. 이런 면에서 국민 80%를 수용할 수 있는 피난 시설이 완비된 핀란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다(출처: 뉴스1, 20220518, https://www.news1.kr/articles/?4683896). 물론 인구가 적어서 쉽게 구축한 면이 있지만 핀란드가 위험할까 한국이 위험할까. 매번 자연재해가 나는데 매번 갈 곳이 없다. 이 한심한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재해복구에 쓸 돈을 좀 더 투자해 재해예방에 쓰면 안 될까? 근본적인 문제개선에 투자하면 안 되나?  재해복구에는 막대한 돈을 쏟아붓지만 재해예방에는 과연 얼마나 돈을 쓸까?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재해예방은 티가 안 나고 재해복구는 티가 난다. 재해예방 공사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데 비해 효과는 눈에 안 띈다. 잘해야 본전인 사업인 것이다. 안전하면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한 줄 안다. 재해복구와 지원금이 턱턱 들어오면 일 좀 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안전에 돈을 쓰는 사람이 당선되어야 하겠지만 이건 우리의 의식 수준에 달려있고 포퓰리즘을 극복해 낼 정도의 민도가 생길 때 가능하다고 본다.


2. 사고가 벌어진 후 오로지 책임논란, 마녀사냥

사고가 벌어진 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면 사고가 왜 반복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인지부터 찾는다. 예전에는 실무진을 주로 탓했는데 요즘엔 시장, 대통령을 욕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눈에 거슬리는 몇 사람이 희생양이 되어 국민 욕받이가 된다. 원인이 무엇인지 차분하고 냉정하게 분석하는 사람은 대화에 끼지도 못한다. 온통 감성으로 젖어서 욕할 놈만 찾아다닌다. 차분한 대화자체가 소수의견으로 사라진다. 

 이게 정치권과 연결되면 상황은 더 말잔치로 번지고 결국 책임추궁, 보상만으로 끝나버린다. 원인분석과 재발방지대책은 없다. 나는 시스템을 믿는 사람으로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반드시 시스템의 문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스템도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고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시스템은 컨트롤 가능하고 사람은 그렇지 않다. 신상필벌은 언제나 필요하지만 그게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처벌이 강하다고 범죄가 사라지는 게 아니듯이 똑같은 사건은 또 발생할 것이고 또 처벌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시스템 개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게 핵심은 아니란 것이다.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인지만 논란이고 차분한 조사는 없다. 조사를 해서 밝혀도 아무도 안 믿고 괴담만 난무하는 데다 정치권과 연결되면서 서로 네 탓을 하다 끝난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이 말이다. 지금까지 대형사고에 대해 여러 차례 조사단이 만들어졌지만 제대로 원인과 재발방지대책이 나온 적이 있었나?


 미국은 911이 발생한 이후 철저히 조사해 백서를 내놓고 그에 대한 수많은 대책이 나왔다. 여기서 누굴 징계하고 누가 사과하고 라면 먹었다고 해임하고 이런 논란은 없었다. 미국이라고 왜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었겠나. 그러나 미국은 시스템의 문제에 주목했다. 왜 테러에 쉽게 당했는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치와 별개로 조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갈수록 흥분도가 높아지고 언론과 정치권이 가세해 마녀사냥으로 번진다. 분노하는 건 당연하지만 원인해결은 분노로 되는 게 아니다. 수해가 자주 발생하는데 원인은 무엇인지 해결책은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여기엔 철저히 과학으로만 말해야 한다. 나는 그런 시대를 원한다.


3. 매뉴얼 부족.

이문제는 참 오래된 것이지만 개선되지 않는데 어떤 비상사태에 대해 매뉴얼이 부족하다. 훈련도 없다. 이게 안 되는 이유는 기업에선 돈이 안되고 공공에선 전시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서 일할 때 업무량을 7:2:1로 나누어 7은 일상업무, 2는 문제점 파악 및 개선방법 고민, 1은 문제점 개선에 투자했다. 그러나 애초에 업무량을 일상업무만 150%로 주는 현실에서 나 같은 업무방식은 한낯 로망에 불과했다.  


 전 직장상사의 말이 기억난다. 


 “업무량은 150%가 딱 적당해. 100% 주면 노는 놈들이 생기거든.”


 자기 업무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게 그렇게 보기 싫었을까? 꾸역꾸역 야근하는 게 정상인가. 이렇게 일상업무만 해도 벅찬데 어떻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에 투자할까. 이건 공공이나 민간이나 마찬가지이다. 내가 문제점 파악이나 개선에 시간을 쓰고 있으면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한다. 매뉴얼 작성도 마찬가지이다. 그거한다고 회사가 돈 버는 게 아니다. 큰 회사는 매뉴얼 작성을 별도의 부서에서 하는 경우도 있는데 현업과 떨어져 있어서 실질적인 게 못되고 사실상의 규정집 성격밖에 안 된다. 그러니 매뉴얼과 현업이 분리되고 누구도 그걸 개정할 생각도 못한다.


 어떤 곳에서는 매뉴얼이 있긴 한데 무림비급처럼 수십 년 전 문서가 대대로 전해져 온다. 누가 만들었는지 언제 만들었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무조건 외워야 하고 분실하면 회사의 수십 년 노하우는 그대로 없어진다. 나는 이걸 왜 현재에 맞게 새로 만들지 않을까 늘 궁금했는데 내가 현업을 해보니 알 수 있었다. 개정되야 할 부분이 많은데 그걸 개정할 시간을 안 준다. 그것 때문에 내 개인시간을 희생하고 야근해야 한다면 그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행착오를 통해 어렵게 획득한 업무 지식을 회사의 문서로 기증해야 하는데 회사는 어떤 보상도 없고 오로지 내가 야근하면서 내놓아야 한다. 이러다 보니 대부분은 그걸 개인의 노하우라고 생각해 자기만 알고 만다. 능력 없는 사람들일수록 더 그렇다. 오로지 그 노하우만 꿰차고 앉아서 회사에서 존재감을 인정받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도, 회사도 한심하지만 이게 우리 사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매뉴얼을 만들겠는가. 누군가 시켜서 하는 매뉴얼은 정말 도움이 되기보다 사무적이고 형식적이게 된다. 매뉴얼을 업무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중요하다고 인정받을 때에 비로소 매뉴얼 부족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이것은 탑다운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최고위층에서 마인드를 바꿔야만 된다.


매뉴얼 만드는 사람을 인정해 주고 칭찬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조직의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고 꾸준히 발전시키도록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 가지 자주 범하는 실수가 규정집과 매뉴얼을 혼동하는 것이다. 규정집과 매뉴얼은 다르다. 규정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범적 성격에 가깝다. 예를 들어 사람이 물에 빠지면 구해야 한다는 건 규정집에 넣을 수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할 때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지, 언제 가장 사고가 많이 나는지, 장비는 뭘 갖고 있어야 하는지는 매뉴얼의 영역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당장의 현재에만 신경 쓴다. 과거와 미래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오늘 먹고 살기 바쁜데 내일이 무슨 소용이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 오늘은 1의 노력만 들어도 되지만 사고가 나면 복구를 위해 10의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당장 닥친 것만 생각하는 낮은 단계의 의식 수준에서 벗어나 업무든, 사람이든 정치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사람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 그래야 재난 공화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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