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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Aug 26. 2023

콘텐츠 브레이커 디즈니와 PC

초대형 콘텐츠 제작사들을 연달아 인수하면서 콘텐츠 업계의 공룡이 된 디즈니. 이제 누구도 디즈니의 콘텐츠를 전혀 보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디즈니가 인수한 대표적 기업들만 해도 루카스필름(스타워즈), ESPN(스포츠), 마블, 픽사(애니메이션), ABC(TV방송), 20세기 스튜디오(영화사),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이 있다.


 만약 이 회사들이 만든 콘텐츠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문화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디즈니는 이렇게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고 콘텐츠 저작권은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콘텐츠 깡패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랬던 디즈니인데 최근 회사가 어렵다는 소식이 나왔다.


 저렇게 쟁쟁한 기업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 이제부터 그 내막을 좀 알아보겠다. 

일단 디즈니의 현재 상태를 좀 알아보자. 주가는 2023년 8월 20일 현재 85.96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5년 내 최저 수준이다. 2021년 186.90달러까지 갔던 주가가 반토막도 더 난 것이다. 재무상태를 한번 보자. 


2023년 3분기 순이익이 4억 6천만 달러 적자다(회계연도가 달라서 4-6월이 3분기임). 하지만 영업이익이 27억 달러에 달하고 매출도 예상보다는 적다지만 나쁜 수준은 아니다. 영업이익은 났는데 왜 순이익이 적자일까. 이것은 영업 외 비용에서 적자가 났다는 건데 현금흐름표를 살펴보니 투자활동과 재무활동흐름에서 대규모 현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재무현황표는 결국 지나간 지표라서 이걸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디즈니의 문제는 각 사업 부분에서 내리막의 징조가 보인다는 점이다. 디즈니의 사업을 크게 보면 영화사업, OTT사업, TV/케이블사업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본업이자 대규모 자금을 들여 확장한 영화사업 쪽을 보자. 원래 하던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 20세기 스튜디오와 마블을 통한 사업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이쪽 사업은 전통적인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줄줄이 망하고 있다. 스타워즈가 사골을 하도 끓여서 냄비바닥이 뚫어졌는데 냄비만 바꿔서 또 시리즈를 한다고 예고한 상태이다. 얼마 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도 인공호흡기를 뗐다. 그나마 리들리 스콧이 꽉 잡고 있는 에일리언 시리즈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도 디즈니의 손이 닿는 순간 언제 호흡기를 뗄지 알 수 없다.


 황금알을 낳는 마블시리즈는 최근 개봉한 토르, 블랙팬서, 앤트맨 시리즈가 모두 흥행에 실패하면서 역시 냄비를 태워먹었다. 앤트맨은 국내 155만 명을 기록해서 9년 만에 최악의 성적이 되었다고 한다(출처: 연합뉴스, 2023.03.17, https://www.yna.co.kr/view/AKR20230315167500005). 최근 개봉한 인어공주 역시 흥행에 실패하면서 고위 임원까지 경질되는 상황이 왔다.


 TV(케이블포함) 부분을 보자. 2023년 4~6월 TV부분 매출은 4% 줄었는데 문제는 TV/케이블 전체 산업이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미국 가정의 전체 시청 점유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50% 미만(49.6%)으로 떨어졌고 스트리밍이 38.7%까지 올라왔다(출처: PD저널, 2023.08.17,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5325). 


 나 역시도 케이블 가입을 안 하고 OTT만 가입해서 보고 있는데 전혀 부족함을 못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 케이블 방송이라고 해봐야 자체콘텐츠는 거의 없고 온통 재방송만 하고 있으니 채널수만 많지 의미가 없다. OTT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고 몰아서 볼 수 있으며 가격까지 저렴하다. 케이블을 봐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러다 보니 지상파 방송사들이 광고부족으로 큰 적자를 보다가 이제는 유튜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상파가 유튜브의 플랫폼 노동자로 전락한 것이다.


 디즈니는 이런 시장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디즈니플러스라는 OTT를 만들었는데 콘텐츠 제국이라 불리는 만큼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출시 3년이 넘은 지금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물론 아직도 규모확장의 시기이긴 하지만 초반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2023년 1~3월 구독자수는 전분기대비 1,170만 명 감소했고 5억 달러 정도 손실을 보았다(출처: 디지털데일리, 2023.08.11, https://m.ddaily.co.kr/page/view/2023081116294024361). 

 전 부문이 부진하고 전망도 어둡다. 디즈니플러스는 요금도 올릴 계획이라는데 그러면 인당 매출은 늘겠지만 구독자수감소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스트리밍 시장에서는 명품전략보다는 박리다매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OTT는 정액제이다. 콘텐츠 마니아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가입해 있는 게 중요하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처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수준까지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요금 인상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디즈니는 콘텐츠 부자로서 보유 콘텐츠만 잘 활용해도 OTT가 순항할 줄 알았을 것이다. 물론 엄청난 킬러콘텐츠를 가지고 있고 자금력도 좋긴 하다. 자산규모에서 넷플릭스는 486억 달러인데 비해 디즈니는 2,036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기존 영화산업에서 확보한 콘텐츠는 신규가입자를 불러오거나 폭발력을 갖는 콘텐츠는 아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신규 콘텐츠는 가입자를 불러오는 핵심요소이다. 안타깝게도 디즈니의  신규 자체 콘텐츠는 수만 많았지 히트작이 별로 없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른 사업들까지 부진해지면서 자금력마저 메말라가고 있다.


 디즈니의 콘텐츠가 경쟁력을 잃은 것은 왜일까? 그건 바로 예술에 이념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시청자가 느낄 정도로 강하게 베어 들게 했다. 소위 PC라는 것인데 이것은 다양한 이념이 섞여 있는 것으로 일종의 해방이데올로기이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주요 모토인데 그 방식이 매우 급진적이다. 차별을 하지 말자는 정도가 아니라 강자와 다수를 역으로 차별하는 수준까지 왔다. 


 디즈니는 이 이념에 완전히 심취되어 대표 콘텐츠에 PC를 녹여 아예  콘텐츠를 PC에 맞춰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내가 콘텐츠 브레이커라고 말한 것은 이것 때문이다. 원래의 콘텐츠 특성은 사라지고 PC가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다. 예를 들어 김치를 맛있게 담았는데 매운 건 건강에 안 좋다며 양념을 다 씻어서 준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인어공주 실사판을 만들면서 흑인을 기용했는데 사람들은 도무지 몰입할 수 없었다. 애초에 인어설화가 유럽신화와 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오랫동안 문학과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친숙하게 자리 잡은 상태인데 그 주인공을 흑인으로 바꾼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건 인종차별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인어가 흑인이면 흑인인권이 더 나아지는가? 원래부터 유럽설화이고 유럽신화는 대부분 백인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흑인이 없을 뿐이다. 김치에 치즈를 넣는 것처럼 유럽신화에 흑인을 넣으면 그게 맞는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 주는 게 아니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과하면 그것 또한 폭력이고 어리석은 짓이다.


 이런 식으로 망친 작품이 또 있는데 바로 MCU시리즈이다. 동성애, 여성캐릭터의 지나친 부각, 의도적인 인종다양화로 작품을 보기가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소위 작품보다 PC가 먼저가 되다 보니 작품에 PC를 얹은 게 아니라 PC에 작품을 빠트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스토리가 재미를 위해 가지 않고 PC를 목적지로 향해 달리다 보니 PC는 달성되었는지 모르지만 대중예술로서는 실패한 작품이 되었다.


 치마를 입으라는 것도 차별이지만 입지 말라는 것도 차별이다. 디즈니는 오로지 PC를 강요함으로써 자유로운 관객의 상상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하는 것마다 망가뜨리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스타워즈가 디즈니에 팔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예술이라는 건 도덕적인 것보다는 다소 발칙한 것이 매력이다. 디즈니는 이런 기본 속성을 무시하고 킬러콘텐츠들을 정말 킬(Kill)하고 있다.

 왜 PC를 주장하는 방식이 급진적일 수밖에 없을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이런 운동을 하는 것이 진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도덕적으로 보이게 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진짜 그런 생각을 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면 그냥 내가 생활 속에 실천하면 그만이다. 남을 지적할 필요도 없고 차별이 발생할 때 용감하게 싸우면 된다. 그러나 이것을 나를 돋보이게 하는 수단으로 여긴다면 과도한 액션이 나올 수밖에 없다. 즉 마음속에 신념으로 자리 잡는 게 아니라 최대한 남에게 드러나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마음속에 PC주의자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남이 알아줘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도덕적이고 이타적이며 윤리적이라는 것을 만방에 알리는 수단으로써 PC만 한 것이 없다. 그래서 자기 생활 속에 실천하기보다는 보여주기에 급급한다. 인어공주가 흑인으로 나온다고 해서 인종차별이 얼마나 해소될까. 영화 속에 동성애자가 많이 나오면 그들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게 될까? 


 애초에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다. 내 주장을 무조건 남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폭력의 시작이다. 그 주장이 옳고 그르고는 다음 문제다. 디즈니는 그 좋은 킬러콘텐츠들을 이렇게 망치고 스스로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애플의 인수 소문이 돌고 있는데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애플정도가 아니면 인수가 힘들 것이다. 애플은 CEO부터가 동성애자이니 상성은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콘텐츠 제작에 애플이 앱 검증하듯 끼어든다면 그것은 안될 일이다.


 넷플릭스의 성공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독자 콘텐츠가 재밌다는 것이다. 그 재미는 바로 자율성에서 온다. 돈을 투자하고 저작권을 가져가는 대신 최대한 간섭을 줄이고 책임을 묻지 않는 그런 정책인 것이다. 오징어게임이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다. 사실 생존물은 우리나라장르에선 매우 드문 장르였다. 현실성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국내 영화판에서는 조폭물이나 범죄수사물이 인기였다. 판타지는 언감생심이고 SF, 장르물도 발붙이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 스릴러와 호러물이 약간 입지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모두 OTT로 흡수되고 말았다.


 디즈니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계속 콘텐츠 브레이커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갈 것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전자를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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