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 핫이슈가 하나 터졌는데 바이오 제약 업계의 대표주 한미약품과 한때 태양광 대표주였던 OCI가 통합한다는 것이다(출처: 일요신문, 2024.01.12,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465589). 신규 법인을 만들어 여기에 OCI와 한미가 동수로 참여한다고 한다. 이 사태에 대해 설명하는 글은 경제지를 참고하도록 하고 여기서는 OCI와 한미약품이 합쳐질 경우 경영에 긍정적 일지만 분석해보기로 하자.
디테일하게 현재상황을 언급하지는 안겠지만 일단 왜 이런 상황이 왔는지는 알아야 분석이 쉽다. 이 사태가 불거진 것은 2020년 한미약품의 회장인 임성기 회장이 별세한 것이 원인이다.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오너가 사망하자 승계문제가 생겼고 동시에 5천 억대의 상속세까지 물어야 할 상황이 되어 경영권 문제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한 가지도 해결하기 힘든데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터진 것이다.
임 회장이 갑자기 별세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데 80세가 된 대주주의 경영권 승계를 전혀 대비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충분히 시간을 두고 벌어진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그 나이까지 왜 승계 대비를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세 자녀 중 확고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전쟁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2016년에는 임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주식을 무상증여하여 찬사를 받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지랖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게 되었다. 직원들에게 주는 게 문제가 아니고 자식들에게 대주주 지위를 넘겨서 경영권 승계자를 정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80세가 되도록 방치하다시피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이미 롯데, 현대그룹 등에서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창업주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회사를 지배할 경우에 발생한다. 그 카리스마를 대체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창업주는 회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고 지배력과 영향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신격호는 롯데 그 자체고 정주영이 곧 현대의 정신이자 육체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경영 욕심 또한 한 가지 이유라고 본다. 끝까지 경영권을 놓고 싶어 하지 않는 과욕이라면 과욕이고 노욕이라면 노욕인데 뭐든 지나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70세에 경영권을 넘긴 LG그룹의 구자경 회장, 양자까지 들이며 승계를 준비한 구본무 회장 사례는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시대에 자식이라고 경영권을 주는 건 안 하는 게 제일 좋지만 굳이 한다면 이런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LG그룹은 그렇게 했는데도 최근 상속과 관련한 분쟁이 벌어졌다. 그러니 대비를 안 한 기업은 어떻겠는가?
한미는 국내 제약회사 중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술을 가진 몇 안 되는 기업인데 이 기업의 경영권 승계과정은 그렇게 글로벌하지 못했다. 창업주의 타계 이후 회장직은 그의 부인인 송영숙 회장이 이었는데 이것부터가 후진적인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인데 그녀의 이력을 보면 교육학과 출신으로 나와있다(출처: 비즈니스포스트, 2021.12.03,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262598). 제약산업은 어떤 산업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수인데 부인이라고 회장직을 승계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현상은 현대그룹에서도 있었고 한진해운에서도 있었다. 그래서 이 회사들이 어떻게 되었나? 한진해운은 망했고 현대그룹도 그 좋은 포트폴리오를 가지고도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이번 OCI와의 통합작업도 송 회장이 결정한 것인데 회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합병작업이 단지 선대회장의 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게 맞을까? 송 회장은 상속지분으로 최대주주가 되었고 경영권 승계의 키를 거머쥐게 되었다. 우리나라 민법상 상속비율은 자식에게 1이 간다면 부인에게 1.5가 가도록 되어있다.
그동안 한미그룹의 실적이 좋았으니 잘된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제약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업종이다. 지금 실적 나오는 것은 수년, 수십 년 전의 투자에서 나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올 연구개발 실적들인데 그게 잘되고 있었다면 이렇게 급하게 인수합병과 경영권 승계를 서둘렀을 리가 없다. 실제로 이를 우려하는 기사들도 있었고 여기서는 연구개발비를 줄여서 재무지표를 좋게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출처: 일요신문, 2022.03.17,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424690).
이번 통합작업은 사업적 목적보다는 상속세를 내면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 승계하는 방법으로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기존 대주주의 불이익이 예상되는 제 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의심을 더 크게 한다.
이번 합병을 성사시키고 경영권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녀 임주현 사장은 합병의 긍정적 요인으로 OCI의 글로벌 가치사슬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출처: 조선일보, 2024.01.15, https://biz.chosun.com/science-chosun/bio/2024/01/15/QOKZ4PWMD5GPZPORCQFFFCGCEM/). 글로벌 가치 사슬 네트워크란 게 뭘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OCI가 화학전문 기업으로 수출비중이 70%에 달한다고 하지만(출처: 뉴스퀘스트, 2023. 01.26, https://www.newsque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262) 한미약품에 없었던 걸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에는 물음표가 생긴다. OCI는 화학소재 관련한 벨류체인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제약회사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화학과 제약이 연계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한미약품이 해외네트워크가 없어서 문제가 된 것도 아니고 그나마 우리나라 제약업계에서는 가장 해외에 알려진 기업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굳이 지금 시점에서 해외네트워크 때문에 합병까지 한다?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회사가 합병한다면 뭔가 시너지 있는 청사진이 그려져야 하는데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재밌는 것은 OCI에 이미 제약계열사인 부광약품이 있다는 것이다. 부광약품은 2022년 인수되었는데 그해부터 적자에 빠졌다. 이것만 봐도 과연 OCI가 제약회사에 어떤 시너지를 제공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2세 승계자로 올라선 임사장은 미국 스미스칼리지 음악과 출신(출처: 메디게이트뉴스, 2023.08.16, https://medigatenews.com/news/1804304695)으로 한미약품의 리더로서 걸맞은지 의문이다. 교육과 출신이 하다가 이번엔 음악과 출신이다.
극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제약산업에 경영전문가도 아닌 재벌 2세가 어떤 자격으로 경영을 맡게 되었을까? 일부에서는 아버지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고 하는데 경영수업은 수업일뿐이다. 태영건설 같은 회사는 경영수업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겠는가?
80세의 선대회장이 세명의 자녀 중 한 명을 고르지 않았던 것은 롯데처럼 뒤늦은 과욕이거나 자신에 대한 과신일 수도 있고 누구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한미약품과 OCI의 시너지는 크게 보이지 않는다. 부광약품이 있는 상황에서 한미약품을 인수함으로써 사업중복의 문제도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는 상속세 문제 때문에 급하게 추진되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조금의 이유는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경영승계를 위한 이유가 더 커 보인다. 경영권에 대한 욕심만 없다면 상속세는 모두 동일하게 납부하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상속세를 해결하면서 경영권도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우호 회사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이 유행하는 것 같은데 부광약품도 비슷한 이유로 OCI에 인수되었다. 그러고 보면 OCI가 업계에서 평가가 좋게 나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신뢰가 필요한 일에서 두 번 연속 선택되다니 말이다(출처: 조선일보, 2024.01.15, https://biz.chosun.com/science-chosun/bio/2024/01/15/D5UXXZK4ENCT3N2IHKQBR2FX2I/).
그러나 개인적으로 좋게 보지는 않는다. 창업자의 자식이나 부인이 그 회사의 경영권을 꼭 가져야 할 이유는 없다. 가업을 이어간다는 개념은 21세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 사람이 모든 사업을 장악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변화가 심한 세상이 되었다. 그 사람이 창업을 했다면 모르지만 이어받는 사람이라면 전문성과 실력이 핏줄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창업주의 정신은 대주주 가문으로서 이어가면 될 일이다.
언론에 지배구조에 관한 목표가 언급된 적이 있는데 이게 송 회장을 인터뷰해서 실은 기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일 제약회사 머크를 언급하고 있다(출처; 비즈니스포스트, 2021.12.03,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262598). 그런데 머크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것으로 유명한 기업으로 가족협의체를 통해서 경영을 감독하고 이사회에 참여하지만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맞긴다. 물론 한미약품도 대표이사로 오너가 아닌 사람을 기용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특이한 것은 CEO가 있고 그 위에 오너회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CEO가 경영을 한다고 생각 안 한다. 삼성도, 현대도 다 CEO가 있지만 그 사람들이 경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너가 경영에 개입하기 싫다면 회장이라는 직위를 왜 거머쥐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법적인 회사의 대표는 CEO이다. 정말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싶다면 이사로 남고 CEO가 경영전면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머크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도 회장이 최상위에 올라 있다는 건 전형적인 우리나라 오너경영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번 기업 통합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언론에서는 회사에서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읊고 있지만 누가 봐도 자연스럽지가 않다. 애초에 선대회장이 딸을 음악과에 보낸 것만 봐도 승계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에 관한 추측성 기사가 있는데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출처:이데일리, 2024.01.17, https://pharm.edaily.co.kr/news/read?newsId=02053286638758704).
반면에 장남은 음대 석사를 나오긴 했어도 대학은 보스턴칼리지 생화학과를 나와 오히려 장남에게 승계할 생각이 었었던 게 아닐까 의심도 든다(출처: 비즈니스 포스트, 2017.07.25,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54745).
아무튼 우리나라 제약기업 중 글로벌하게 성공한 몇 안 되는 기업인 한미약품이 경영권 문제로 다른 기업과 통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안타깝다. OCI가 그걸 키워줄 기업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볼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굳이 합병해야 한다면 어떤 기업이 좋았을까? 내가 볼 때 제약바이오의 노하우가 있으면서 글로벌 베이스가 있는 곳이 좋을 거라고 본다. 여기서 장단점이 있는데 바이오 색깔이 있는 기업에 들어간다면 한미라는 이름이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더 큰 기업이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넥슨과 NC가 사이좋게 지분교류를 했지만 나중에 원수처럼 헤어진 게 그 사례이다. 비슷한 업종의 좋은 먹잇감 앞에서 침을 흘리지 않을 경영자는 없다.
바이오 사업 이력이 전혀 없는 곳에 간다면 한미의 정신적 고갱이는 손상 없이 남을 수 있다. 이것 때문에 OCI를 선택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되면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과 일일이 사업계획을 토론하려면 여러모로 힘들 것이다. 전혀 색깔이 다른 기업을 인수한 사례가 있긴 한데 예를 들면 LS에서 스포츠브랜드 프로스펙스를 가지고 있는 국제상사를 인수한 것이다. 또 현대산업개발에서 영창피아노를 인수한 것도 비슷한 사례이다. 그룹에서 지원을 많이 해준다고는 하는데 살아남긴 했지만 크게 성장했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구색 갖추기용 인수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60대 기업 중에 그나마 여력이 있고 제약바이오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기업이라면 CJ와 셀트리온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물론 10대 기업들도 가능하겠지만 그쪽으로 가면 완전히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 CJ는 꾸준히 제약바이오에 관심이 있었다는 측면에서 괜찮고 실제로 제약바이오 업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상 크게 겹치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셀트리온은 회사 자체가 제약바이오로 큰 회사라서 어느 정도 겹치는 면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셀트리온도 해외에서 인정받은 제약바이오 회사로서 두 회사의 시너지는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 기술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두 회사의 특허와 기술을 결합하면 더 좋은 제품도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연구개발 노하우도 합쳐진다면 금상첨화다. 다만 셀트리온도 승계가 예정된 회사로 덩치가 큰 셀트리온이 언제 군침을 삼킬지 모를 일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엔 승계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번일은 아마도 장녀의 승계를 돕기 위해 굳이 이런 방식의 통합을 선택한 것 같은데 한미가 존속할 수는 있겠지만 더 경쟁력이 강해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누구로 승계를 하든 독립적으로 남는 게 한미약품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 아니었을까?
현재 장남, 차남이 가처분 신청을 내고 법적 처분을 기다리는 중이다. 내가 볼 때 SM과 카카오 사태와 크게 다를 게 없어서 인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한미 쪽에서는 법률자문결과 인용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출처: 연합인포맥스, 2024.01.19, https://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95461). 결과는 나와봐야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