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AI Index Report 2024. 분석 1
2024년 4월 스탠퍼드 대학에서 AI의 실태자료를 종합한 보고서를 냈다. 여기서 우리나라 생성 AI모델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되어 정부까지 나서는 일이 있었는데 아무튼 다소 서구 쪽에 중심이 치우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내용자체는 정말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사실 인공지능의 중심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라서 그럴 수밖에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은 인공지능 엔진 자체는 서방 못지않게 만들 수 있지만 사회를 통제해야 하는 체제 특성상 자유로운 개발이 이뤄지기 힘들다.
보고서가 비록 서구중심이긴 하지만 사실상 서구를 중심으로 인공지능 혁신이 일어나고 있으므로 큰 틀에서 틀린 내용은 없다. 무려 5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보고서인데 인공지능 트렌드에 대해 빠짐없이 다루고 있어서 꼭 영상으로 제작하고 싶었다.
보고서는 총 9개의 챕터로 나뉘며 각 분야별 인공지능의 발전 상황, 이슈, 주요 개발사례와 통계를 담고 있다. 하나씩 보자.
1. R&D
첫 번째 주제는 R&D인데 인공지능 분야의 연구개발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인공지능이 어떤 추세로 발전해 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내용이라 중요한 내용만 발췌해 보겠다.
<출판물>
먼저 AI관련한 출판물의 증가세인데 2017년을 기점으로 급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2016년 구글의 알파고가 세계적인 이슈를 불러일으킨 것이 원인으로 보이는데 다른 모든 통계들도 이런 식으로 2017년부터 급증하고 있다. 이 당시 죽은 학문으로 취급받던 인공지능이 딥러닝으로 단숨에 모든 IT이슈를 점령하기도 했다.
뒤에 나오는 다른 통계들도 이런 식으로 2017년부터 급증하고 있다.
또 하나 재밌는 통계가 있는데 AI출판물이 차지하는 비중을 분야별로 살펴보았다.
이 통계에서 보듯이 나라를 불문하고 교육 쪽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이는 AI가 아직 상용화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2022년의 통계니까 Chat-GPT 붐은 반영되어있지 않다.
이 자료만 보더라도 중국은 관이 주도하고 민간부문이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과 정부 분야의 비중이 더 높고 산업분야의 비중은 가장 떨어지며 비영리 분야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다음에 중국에 대해서 분석할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중국은 21세기에 다시 재현된 전체주의 국가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체주의 국가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들이 겉으로는 자유시장경제, 민주주의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통계만 보더라도 체제의 특성이 잘 보인다.
다음은 AI특허의 개수인데 2018년부터 폭발적인 증가세이다. 보통 특허를 심사, 등록하는데 1,2년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6년 구글 알파고의 영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재밌는 자료를 얻을 수 있는데 등록된 특허수와 거절된 특허수의 차이이다. 2017년부터 등록된 특허수에 비해 거절된 특허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건 왜 그럴까? 바로 다음 자료를 보면 답이 있다.
국가별로 특허 등록수와 거절수를 보았는데 유럽과 미국은 등록수와 거절수가 크게 차이가 안 나는데 중국은 절대적인 수도 많고 둘 간의 차이도 2배 이상 벌어진다. 이건 왜 그럴까?
일단 특허의 등록수가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큼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생성 AI 붐이 일기 전인데도 특허등록수가 미국보다 3배, 유럽보다는 30배나 많다. 인구가 많아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은 뒤에 자료가 나오니 기다려주기 바란다. 그럼 왜 이렇게 많은 특허가 등록될까?
앞에서 말했듯이 중국은 관이 주도하고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정부 예산이나 정책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에서 패권을 빼앗기면 안 되는 중국의 입장에서 관주도로 많은 영향력이 있었을 것이란 걸 추정할 수 있다. 앞의 통계에서도 정부와 교육부문 출판물이 많았다. 출판물은 논문을 포함하는 것이며 이것은 특허와도 연관성이 있다.
그럼 정부가 주도하면 왜 특허수가 많을까? 왜냐하면 정부는 특허를 출원하는 데 있어 부담이 없는 편이다. 민간기업은 특허를 내려고 하면 변리사비, 출원비가 나가고 등록이 된다고 해도 등록유지비가 나간다. 게다가 특허를 출원하면 기술이 공개되기 때문에 이 또한 부담이 된다. 예전에는 무조건 특허를 많이 내면 좋다고 했지만 요즘 트렌드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특허를 출원하거나 아니면 특허를 출원하면서도 검색이 잘 안 되게 하거나 기술을 다소 숨기는 트릭을 쓰기도 한다.
특허가 있으면 독점이 보장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특허가 완전무결한 건 아니다. 회피기술을 이용해서 특허를 내는 방법도 있다. 게다가 보장기간은 20년에 불과해서 운이 나빠서 특허등록에 5년이 지나갔다면 쓸 수 있는 기간은 고작 15년이다. 공장이나 사업화에 또 5년이 간다면 10년 정도밖에 못쓴다. 이래서 특허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말할 수도 있는데 뇌피셜이 아니고 전에 특허분야에 일을 해봐서 하는 얘기이다.
자, 그럼 절대적인 특허 등록수가 많은 건 그렇다 치고 등록수와 거절수가 크게 벌어진 건 왜일까? 그걸 답하기 전에 간단한 상식으로 특허 출원과 등록의 의미를 알아보자. 특허 출원은 특허를 신청하는 것이고 등록은 심사 후에 정부가 정식으로 특허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마 그래프에서 거절된 특허수와 등록된 특허수를 합치면 출원수에 가깝게 될 것이다. 중도 포기한 특허도 있기 때문에 정확히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출원수 대비 등록된 특허의 수가 그만큼 적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을 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거의 44%가 등록된 것이다. 중국은 등록률이 30%에 불과한데 이건 그만큼 출원하는 특허의 질이 편차가 심하다는 얘기이다. 특허는 새롭다고 되는 건 아니고 진보성이 있어야 된다. 그전보다 나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탈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등록된 특허의 질을 추정해 보려면 국제특허 출원 비중을 보면 될 것이다. 훨씬 큰 비용이 드는 코스라서 어지간히 좋은 특허가 아니면 신청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 자료가 없어서 아쉬운데 아무튼 쉽게 출원하고, 절대적인 출원수도 많다 보니 거절수도 많다고 할 수 있다.
정부기관이나 학술기관은 상업적인 실적이 없기 때문에 특허를 통해 정량적 지표로 실적을 입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특허수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다고 할 수 있다. 내 추정이긴 하지만 질이 그리 높지 않고 특허수만 늘리는 식의 출원이 있지 않았나 의심해 본다. 예를 들어 특허출원을 연구원별로 할당한다든지 아니면 특허 쪼개기를 통해 실적을 부풀리지 않고서 저런 차이가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런 추정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 특허가 많이 나왔음에도 앞에서 보았듯이 산업분야 출판물이 가장 적고 실제로 전 세계 AI시장에서 중국의 상업화 실적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일사불란한 중국체제에서 기술개발은 어느 나라보다 빠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탑다운 방식의 기술개발은 소프트웨어에서는 맞지 않는다. 인구가 많아서 특허출원수가 많지 않냐는 물음에는 다음 그래프가 답해줄 것이다.
이것은 인구 10만 명당 등록된 특허수로 놀랍게도 여기서 한국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AI모델수 통계는 제대로 하지 않았던 스탠퍼드가 이 통계는 제대로 했다. 이런 걸 보면 아마 자료 수집과정에 편중됨이 있었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아무튼 인구수로 나누어보니 한국이 1위, 중국은 5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걸 보면 중국의 특허수가 많지만 그게 인구 때문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룩셈부르크나 리투아니아, 뉴질랜드처럼 인구가 아주 적은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경제규모에 따른 선진국 순위와 비슷하다. 여기서 유독 한국만 튀는데 왜일까?
솔직히 한국은 자유시장경제 국가지만 대기업 위주이고 정부의 영향력이 큰 편이다. 따라서 중국처럼 아무래도 탑다운 방식의 특허출원이 많이 이뤄지지 않나 싶다. 한국의 AI특허 출원수와 등록수 데이터를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 자료가 없어서 아쉽다. 그래서 찾아보니 관련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다(출처: 내일신문, 2024.01.24, https://m.naeil.com/news/read/487157#).
여기 보면 인공지능 특허출원 상위 10개 기관에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 LG를 비롯해 대기업이 3곳, 대학이 5곳, 국가기관이 1곳이다. 대학 역시 실적의 중요지표로 특허를 보고 있으므로 다소 강제적인 면이 있지만 실적은 실적이다.
반면 미국은 10위안에 대학이 한 곳도 없고 전부 기업이다. 민간이 주도하는 전통적인 특성을 알 수 있다. 중국은 대학 5곳, 국가기관 2곳, 기업 3곳이다. 대기업과 대학이 많은 건 시장 초창기에는 당연한 것이다. 상용화사레가 많아질수록 기업비중이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중국은 민간기업들이 정부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어서 문제는 조금 더 더 푸시를 받는다는 것이다.
전기자동차 산업이 비슷한 형국이다. 중국 정부의 전기차 지원 정책 덕분에 중국 내 전기차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중국차들의 급성장도 같이 일어나고 있다. 전통의 유럽기업들이 밀려나고 중국차들이 전기차시장의 강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장도 정부가 밀어주기 시작하면 거품이 끼더라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압박은 없지만 대기업이 원래 해오던 전통적 방식의 탑다운 구조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도저 경영이 아직 주류인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다. 정부기관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미국을 제친 건 대단한 일이다. 다만 아직 상용화되어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고 ChatGPT 열풍이 일기 전에는 적극적인 투자도 없었기 때문에 중국, 미국의 2배 이상이라는 건 의외이다. 인구수에 비해 그만큼 우량 기업들이 많고 수준 높은 인재들이 많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학진학률이 70% 이상에 아직까지는 8,90년대 이공계 출신들이 산업계에 많다.
이때만 하더라도 자연계 수석은 물리학과를 가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물론 의대가 싹쓸이하는 현실이지만
최근 선진국들의 사회구조가 고착화되고 혁신보다는 전통적 산업에 안주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 한국의 미래는 오히려 밝다고 생각된다. 독일은 기계산업의 최강국이지만 전자와 소프트웨어로 넘어오면서 고전을 겪고 있다. 전동화되는 차량의 트렌드 속에 테슬라와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고 있다. 독일 자동차 부품 회사 콘티넨탈의 전장부문이 삼성에 매각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겠는가?
세계 판매량 톱 10위권 자동차 회사 중에 독일차는 폭스바겐뿐인데 전체 판매량은 2위, 전기차는 3위이지만 유럽시장보다 중국시장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게 문제이다. 최근 판매량이 급속히 감소하는 추세이고 그 자리를 중국산이 채우고 있어 경쟁력이 심히 의심된다.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의 최강자였지만 거기에 안주해 내연기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연기관 개발 인력을 살리려고 수소엔진을 다시 꺼내는 일까지 벌이고 있다. 비록 전기차의 개화가 늦어지고는 있지만 기존 산업에 안주하는 회사가 옳았던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노키아가 대표적이지 않는가.
한국은 비록 탑다운 방식의 사회이긴 하지만 덕분에 리더만 잘 만나면 빠른 혁신이 일어나기도 한다. 중국, 러시아처럼 감시국가도 아니어서 신생 기업들이 거대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그 예로 카카오, 네이버 같은 토종 포털이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런 압도적인 특허수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신기술에 열려있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는 된다고 본다. 특허의 질이나 상용화 정도는 따져봐야겠지만 수많은 국가 중에 한국이 1위로 올라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처럼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어 버린 다음에는 우리도 같은 수순일 수 있다고 보지만 아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