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동국제강
소개
이번에 소개할 기업은 동국제강이다. 2024년도 공시대상 기업 자산순위 58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름은 한번 들어봤을 기업인데 1954년 창업했다. 60대 기업을 분석하면서 느낀 것이 중화학 업종 기업이 참 많다는 것인데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한 업종임에도 우리나라는 50년대 이후 상당히 빨리 자리를 잡았다. 이 시대의 도전정신과 희생이 우리 세대의 풍요를 낳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동국제강은 사명에서 보듯이 철강기업인데 보통 철강기업으로는 포스코, 현대제철까지 빅 3으로 친다. 이 외에도 특수강 전문의 세아그룹, 아연 전문의 영풍그룹 등이 있다. 세계철강협회가 밝힌 철강기업 순위로 보면 포스코(7위, 35.64 Mton), 현대제철(18위, 18.77 Mton)인데 동국제강은 50위권 내에 들지 못했다. 동국제강은 조강 생산량이 3.6 Mton에 불과해 이 부분 50위권인 Voestalpine 그룹(7.42 Mton)과도 2배 차이가 난다.
궁금해서 살펴보니 세아제강은 1.52 Mton, 영풍그룹이 1.20 Mton 정도로 오히려 특수강에 가까운 생산량을 보이고 있다. 국내 3위권이라고 하지만 국제 경쟁에서 아직도 규모면에서 갈길이 멀어 보인다. 사실 동국제강이 규모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닌데 브라질 공장에 투자했다가 크게 실패하는 바람에 규모확장의 꿈이 상당히 멀어진 상황이다.
근황
동국제강은 큰 변화를 맞았는데 4세 승계를 앞두고 3개의 회사로 인적분할을 단행했다. 지주회사 전환을 염두에 두고 동국홀딩스, 동국제강(열연), 동국씨엠(냉연)으로 3개 회사가 분할 상장한 것이다. 계열사로는 지주사 동국홀딩스를 중심으로 동국제강, 동국씨엠, 물류회사 인터지스, 페럼인프라, 동국시스템즈 등이다.
현재 동국제강은 형제경영을 하고 있는데 형 장세주(1953년생)가 회장을 맡고 동생 장세욱이 부회장을 하고 있다. 여기에 장세주의 아들인 장선익 전무(1982년생)가 다음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장 전무의 동생이 무려 15살 아래인 것을 감안하면 4세간 경영권 다툼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동생 장 부회장의 선택이 주목된다. LG 같은 기업에서는 일련의 계열사를 데리고 빠져주는 가풍이 있는데 동국제강에서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지분차이가 10% 정도 나는데 형제간 다툼은 경영사에 늘 있어왔던 것이라 자연스럽게 퇴장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동국제강의 계열사 구성에서 분리해 나갈 만한 기업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약간은 불안요소이다. 한다면 냉연정도를 분리해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업적으로 밀접해서 의미가 있나 생각도 든다. 물류와 인프라 정도만 가지고 빠져준다면 모르겠지만 그 이상을 원한다면 긴장감이 조성될 수도 있다. LG가도 순탄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긴장감이 감돌 때도 있었다. 아무리 유교문화가 강해도 돈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삼성도 그랬고 현대도 마찬가지였다.
진단
승계를 앞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승계한 이후에 얘기를 하는 것이 맞겠지만 일단 과제위주로 얘기해보고자 한다. 동국제강은 분할 전에 매년 5천억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던 알짜 회사였다.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제철과 포스코라는 골리앗 사이에서 살아남은 걸 보면 분명 저력은 있는 회사로 보인다. 하지만 승계 이후에도 계속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수십 년 역사의 대그룹이 승계 이후 망가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년이다. 한진도 그랬고 태영그룹도 그랬다.
난 기업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자는 입장이지만 경영권 승계에 만큼은 부정적인데 그 이유가 이것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예전처럼 카리스마 있는 2세가 나오질 않는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던 유약하고 일반인과 다를 게 없는 재벌 2세가 등장하고 있다. 유교적 가풍도 약해지고 자손이 적다 보니 승계 경쟁도 실종된 상태이다. 7남매, 8남매가 눈치싸움을 하는 시절이 아니란 말이다.
전혀 경영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자손이 회장의 직위에 올랐을 때 기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건 기업으로서는 너무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아무리 시스템이 있고 수십 년의 관록이 있는 기업이라도 최고 결정권자가 풋내기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경험과 검증된 능력이란 그만큼 중요하다.
동국제강의 당면한 숙제는 일단 깔끔한 승계이고 향후 기업을 계속 철강중심의 강소기업을 끌고 갈 것이냐 아니면 사업확장을 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재무현황을 보면 2023년에서 4천억 후반대 영업이익을 냈고 부채비율도 2024년 1분기 96.5%로 낮췄다. 철강경기가 별로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치이다. 이런 현금 창출능력과 부채비율이라면 인수가 2조 원대 규모의 기업은 인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지주사 개편이나 승계작업에 상당한 자금이 투여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기는 상당히 늦춰질 수 있다.
아무튼 승계가 잘 된다는 가정 아래 동국제강은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지금 현 상황만 보면 사실 확장 안 하고도 잘 지내왔는데 굳이 확장할 필요가 없다. 브라질 철강공장 건설에서 크게 실패했던 것을 생각하면 철강 업종 내 확장도 매력적이지 않다. 내 개인적으로는 철강원료를 활용할 전방사업을 계열사로 인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마 젊은 오너가 새로 등극하면 의욕적으로 사업확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기업들의 젊은 오너들도 그런 길을 많이 걸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크게 망하는 회사들도 많이 나왔다.
근데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주주들을 비롯해 외부에서 새로운 오너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의욕적으로 경영능력을 보이는 방법은 인수합병밖에 없기 때문이다. SK 같은 경우는 최태원 회장이 큰 뚝심으로 하이닉스를 인수해 대성공을 거뒀다. 상대적으로 좋은 인수조건에 있었던 LG그룹은 다소 감정적인 판단으로 기회를 걷어차버렸다.
현대차 같은 경우 로봇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고 수소차 사업이 전기차 사업에 밀려 사실상 보이지 않게 된 데다 막상 전기차 사업은 본격적이 개화가 늦어져 거의 손을 떼기로 했던 내연기관 개발에 다시 뛰어든 상태이다. 이런 것만 봐도 2세들의 경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가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이 역시 리스크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규모가 작은 동국제강의 입장에서 글로벌 경쟁은 언제나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업체들이 부상하고 있고 덤핑이 판을 치는 철강업계를 생각하면 과연 철강산업에 극심한 위기가 찾아왔을 때 동국제강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지금은 주로 건설산업의 부진이 철강산업의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 타격을 더 크게 받는 것도 관련 전방산업 계열사가 없기 때문 일 수도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은 모두 그룹 내 건설회사를 가지고 있다.
일단은 자신감을 가질 때까지는 확장을 미뤄두라고 권하고 싶다. 2세들이 의욕에 앞서서 추진한 사업이 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성급히 결정하지 말고 최소 10년은 선대 회장들이 닦았던 길을 그대로 걸으며 감을 익힐 필요가 있다. 이게 왜 어렵냐면 조직, 사업, 기술들이 모두 시간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커진다. 창업자는 사업을 확장할 때마다 머릿속에 이것을 넣을 수 있어도 어느 날 갑자기 사업을 맡은 사람은 엄청난 규모의 기업 정보를 한 번에 파악하기가 어렵다.
만약 이 과정이 잘 마무리된 후에도 자신이 없다면 일단 철강 산업과 유사한 사업으로 확장을 꿈꿔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비철강/특수강 사업이라든가 희토류 등 원료 사업, 전기차 음극재등 소재산업도 그렇다. 철강생산 볼륨을 키우는 사업은 브라질 사업에서 크게 쓴맛을 봤다. 작은 덩치의 동국제강으로서는 이런 식의 대규모 증설은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다만 철강이등 비철강이든 이쪽 사업은 대규모 공장과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막대한 투자가 필수적이다. 동부그룹도 제철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가 그룹이 휘청거린 적이 있다. 중견 그룹 규모에서는 부실한 기업을 인수한다고 해도 그걸 감당해 줄 만큼의 체력은 되지 못한다. 비철강이라도 이쪽 사업은 진입장벽도 있고 기존 회사들의 아성도 크기 때문에 신규로 출발하는 게 좋은 선택인지도 의문이다.
그러면 다른 업종은 어떤가? 철강의 대표적인 전방사업은 자동차, 건설, 조선등이 있다. 세 업종 모두 노하우가 없는 상태에서 진입하기 어렵고 진입 비용도 막대하다. 전방사업이 아닌 다른 안전한 사업분야는 금융과 정유 등이 있는데 정유사 매물은 잘 없고 동국제강과 크게 시너지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금융이 그나마 그룹의 안정성과 수익성 면에서 도움이 될 텐데 동부그룹 같은 경우 금융과 철강으로 기업을 유지했던 전력이 있다. 물론 무리한 사업확장 탓에 그룹이 쪼개지고 거의 금융 쪽만 살아남았다.
사업적인 시너지는 없지만 그룹의 안정성 차원에서 접근이라면 금융 쪽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게다가 B2B사업만 있는 상태에서 B2C사업을 추가하는 것도 포트폴리오상 나쁘지 않다. 롯데손해보험, 동양생명, 롯데카드 등 많은 기업이 나와있다. 건설사 인수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추천하지는 않는다. 중견기업 규모에서 건설사가 그룹을 말아먹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동양, 동부, 두산, LIG 등 많은 중견기업들이 건설사 부실로 큰 곤욕을 치렀다.
건설업은 경기를 워낙 민감하게 타기 때문에 충격완화 장치가 필요한데 동국제강의 규모에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건설은 빚을 내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규모 부실이 한꺼번에 발생하기 때문에 그룹차원에서 리스크를 줄이지는 못할 망정 크게 늘릴 수 있다. 다만 대우건설 정도의 최상위건 건설사를 인수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하지만 지금 그런 매물은 없는 상태이다.
추천한다면 일단 금융사 쪽으로 확장하는 게 리스크를 줄이고 그룹의 수익성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며 B2C 산업 진출 경험도 얻게 될 것이다. 전방산업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동차, 조선, 건설등이 모두 큰 리스크를 안고 있어서 동국제강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언론에서 소부장 쪽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있던데 나쁘지는 않은데 이쪽도 수익성이 바로 담보되는 것이 아니고 상당한 투자도 필요하기 때문에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성과를 낼지는 물음표이다.
전망
앞으로 기업 승계와 지주사 지분조정에 상당한 시간과 자금이 투여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만 몇 년이 지나갈 텐데 사업확장 같은 것은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분투자를 통해서 간접적인 사업기회 탐색은 할 수 있겠지만 본격적인 것은 역시 승계가 완료되고 지배구조가 정립이 돼야 할 수 있다. 3~5년 정도 후가 진짜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