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1
재계 순위 9위에 해당하는 현대중공업에 대해서 알아보자. 현대중공업은 다른 기업들에 비해 사업분야가 단출해 훨씬 분석하기 용이했다. 그렇지만 4,5년 전만 해도 전성기를 달렸던 조선업이 내리막을 타고 거의 바닥을 찍고 있는 요즘 현대중공업의 경영진단은 좀 더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정주영 회장의 현대그룹에서 정몽준 회장이 분리해 나온 기업이다. 현대에 자식들이 많아서 분리해 나온 기업들이 곳곳에서 우리 산업의 뼈대를 이루고 있으니 현대가 대단한 기업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게 전부 한 그룹으로 뭉쳐있을 때는 어땠을까? 그 위상은 지금의 삼성 못지않았다. 실제로도 재계 1위였고 사업 스펙트럼만 보면 삼성보다 넓으면 넓었지 좁지는 않았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을 소위 왕회장이라고 하는데 불도저식 경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안 되는 게 없는 80년대 꽃을 피운 경영스타일이다. 요즘 세태에는 좀 안 맞지만 그런 기개만은 지금의 경영자들도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앞으로의 재벌 후계자들 가운데 그만한 인물이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정주영의 아들 정몽준 회장은 정치인이고 외부활동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 경영은 대부분 전문경영인에 의해 추진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면에서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있는 초창기 모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재벌 상속이 본격화되고 있는 요즘, 많은 기업들이 결국은 경영에서 손을 떼고 소유에 만족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정치에서 왕에 의존하는 시스템이 민주주의에 비해 경쟁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에 의존하는 것은 나라든 기업이든 위험도가 크다. 오너의 후손이 천재가 나오면 기업이 거침없이 성장하지만 바보가 나올 경우 그대로 기업을 말아먹기 때문이다. 전문경영인 제도는 장기적 관점의 경영이나 대규모 투자를 하기 힘든 단점이 있지만 실적에 따라 교체가 가능하므로 기업이 잘못되어도 다시 살아날 길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환기에 있다. 나는 재벌도 4세가 마지막이라고 본다. 4세를 기점으로 기업의 전성기가 막을 내리고 정체하게 되면 결국 하기 싫어도 경영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재벌들은 명문 가문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현대가문 혹은 정 씨 가문처럼
조선은 현대가 정말 막무가내로 진출한 업종이다. 정부의 권유와 정주영의 밀어붙이기가 만들어낸 극적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관련 경험도 국내 수요도 없는 조선을 이만큼 키워낸 것은 지금 봐도 신기하다. 이게 창업자의 능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안 되는 이유부터 찾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이런 경영자를 찾아보기 힘든데 70년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이런 기업가들로 넘쳤다.
정부지원이나 중소기업 혜택에만 의존하는 지금 구조에서는 큰 기업이 나오기 힘들다. 대기업, 중소기업을 나눠서 섞이지 않게 하려는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결국 어떤 시장이든 강자가 나오기 마련인데 대기업이 없으면 큰 중소기업이 시장을 다 먹는다. 그렇게 되면 시장의 경쟁은 없어지고 한번 중소기업은 영원히 중소기업으로 남는다. 대기업이 될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대기업이 나오지 않는 이유이다.
삼성을 견제할 게 아니라 삼성이 10개 정도 나오도록 정책을 펴는 것이 맞다. 그리고 강력한 불공정, 불법행위 처벌을 통해 경제원칙을 바로 세우면 지금보다 훨씬 건강한 시장이 될 것으로 본다.
현대가 대표재벌이기 때문에 현대를 이야기하면 꼭 이런 재벌정책 이야기를 하게 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현대 중공업은 여러 계열사가 있지만 중기계, 화학을 주로 다루는 기업이다. 크게 조선/기계, 에너지/정유부문이 있다. 금융부문이 있었지만 최근 매각되었다.
몇 가지 사업부문이 있지만 사실상 조선에 그룹의 대부분 역량이 집중되어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조선 불경기에 막대한 타격을 입고 휘청거리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에서 계열 분리 후에도 사업 확장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CJ투자증권을 인수한 것을 빼고는 신사업 진출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사업부문간 시너지도 그리 없다.
현대라는 큰 몸속에 있을 때는 시너지가 있었지만 분리되고 난 후에 혼자서는 시너지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조선과 연관성이 큰 제철이라든가, 해운 같은 산업이 그렇다. 요즘같이 어려운 경기에 현대중공업이 투자를 할 형편은 안되지만 사업 확장에 대해서 플랜은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것에 관해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자 한다. 대단하고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조차 해주는 책도, 교수도 없는 우리나라 학문의 실정이다.
현대중공업은 당장의 생존이 우선이지만 조선업이 불황이더라도 그룹만 정상화가 된다면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신경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호경기에 투자를 할 경우 불경기가 오면 그 타격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에 호경기일 때 불경기를 대비하고 불경기에 호경기를 준비하는 것이 잘 나가는 기업들의 경영상식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 현대중공업이 새로 진출할 수 있는 사업들은 무엇이 있고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 있을까?
계열사별로 훑어보고 총평으로 다뤄보겠다.
먼저 지금 현대중공업의 어려움. 그 원인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겠다. 일단 조선 주문량 자체가 줄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7년 OECD 국가 조선 수주량은 1,731대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떨어져 2016년엔 350대를 기록했다. 처참한 수치다. 아프리카 정글에 지독한 가뭄이 들듯이 수주 가뭄이 들어 많은 조선사가 '폐사'했다.
세계 조선 생산능력 자체가 40% 줄었다는 얘기도 있다. 정말 지독하고 잔인한 계절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수요가 급감한 것인데 금융위기가 결정적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런 위기는 사실 현대중공업 아니라 누구라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으로 버티고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되어 정글을 지배하는 법이다. 요행수는 없다. 큰 고난을 겪었지만 특별히 현대중공업에 경영상 잘못이 있다고 하기엔 힘들다.
다만 이런 수요 급감을 예상하고 미리 대비했어야 했는데 그런 걸 다 할 수 있으면 인간세상에 불황은 오지 않았겠지.
또 하나 해양 플랜트 사업의 대규모 손실인데 그 이유는 해양플랜트 사업의 복잡성이다.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원인을 지적하는데 설계능력의 부족, 유가 하락에 따른 수요 감소 등 다양하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비록 손실이 나도 어차피 가야 할 길이었다고 생각한다. 조선과 해양플랜트는 연관성이 크고 회사의 장기적 비전에서 필요한 사업이다.
크게 이런 2가지 원인이 지적되는데 노벨경제학상을 탄 학자가 와도 답이 없는 문제다. 버티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2018년에는 조선업이 다시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고 있는데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업체가 고통으로 큰 열매를 다 차지하게 될 것이다.
자 조선업 불황에 대해 언급했으므로 이제 본격적으로 경영진단을 해보자.
우선 대표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을 보자. 현대중공업 산하에 있는 기업들을 보면 선박 건조 과정에 필요한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수직계열화되어있다. 그리고 연관성은 별로 없지만 발전회사들이 있다. 특이한 점은 현대중공업이 시너지를 가질 만한 사업분야가 이미 다른 범현대가에 있다는 점이다.
제철의 경우 현대제철이, 운송은 현대상선이 하고 있다. 만약 현대중공업이 제철사업을 한다면 조선업의 꾸준한 작황이 보장되지 않는 상화에서 너무 큰 제철회사에 투자하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제철 계열사를 갖는 것은 현대중공업으로써는 사업 시너지를 갖게 되어 경쟁력이 강화되므로 연간 조선 생산량에 맞는 중소규모 제철사를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도 현대제철에서 물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범현대가의 신사협정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모르지만 집안싸움이 날 정도가 아니라면 제철 계열사 보유는 필요하다고 본다. 조선은 철을 많이 사용하고 제철기술과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철은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필수품이므로 비교적 안정적 사업이다. 계열사 물량에만 의존하도록 키우지 않는다면 지금같이 어려울 때 제철이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
일단 여기서는 현대의 신사협정은 무시하고 논의를 이어가겠다. 국내에서 이미 제철산업이 상당히 발달되어있어 적당한 매물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어차피 포스코, 현대제철에 눌려 기를 못 피고 있는 나머지 제철 사들은 현대중공업의 제의를 흘려듣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 물량 확보가 되는 효과도 있어 제철사 입장에서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딜이 될 것이다.
해운은 최근 한진사태로 큰 쇼크가 있었는데 과연 한진해운이 현대중공업에 속해 있어도 그렇게 됐을까 하는 의구심은 있다. 현대중공업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면 한진해운을 인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봤는데 상황이 그렇지 않다 보니 이뤄지지 않았다. 한진해운은 베트남 전쟁을 기점으로 성장한 역사가 있는 회사로 전통적 내공이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현대중공업과 함께 한다면 미래가 어둡지는 않았을 것이라 본다.
현대중공업이 한진해운으로부터 이미 상당액을 손실당한 것으로 아는데 아쉬운 일이다. 동국제강이나 동부제철 등을 인수해 제철 계열사를 확보하고 해운까지 손에 쥔다면 현대중공업은 완전한 수직계열화를 이뤄 현대자동차 못지않은 시너지를 확보할 텐데 이점이 아쉽다. 현재도 부품계열사에서는 상당한 시너지가 있으나 전방산업 및 소재산업에서 아쉬움이 있다. 한진해운이 해체된 것은 그래서 더 아쉽다. 그 외에도 해운회사가 있으니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관광이다. 현대중공업은 호텔 계열사를 대거 매각 처분했는데 참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중공업과 시너지는 별로 없지만 관광 계열사를 추가해 해운과 연계하여 크루즈 및 해양 관광을 사업으로 했다면 중공업과 시너지는 확보될 것이다. 관광 계열사가 크루즈 관광만 할 수 없으니 호텔을 보유하고 있으면 어느 정도 모양새가 갖춰진다.
제철을 생산해 그것으로 배를 만들고 그 배로 운송과 관광을 하는 비즈니스의 흐름은 나쁘지 않다. 게다가 반드시 배만 하라는 법은 없다. 현대중공업이 기계, 중공업의 기술을 가지고 있으므로 항공에도 진출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허무맹랑하다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현대가 조선업에 진출할 때는 더 황당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누리호 시험발사와 관련하여 발사대 개발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나로호 발사 때도 발사대를 제공한 바 있는데 항공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과 항공은 중공업 기술에서 공통점이 있다. 엔진도 그렇고 정밀 설계기술 등이 통하는 면이 있다. 이미 다른 나라에는 항공기 엔진 만드는 회사가 배, 자동차 엔진을 만들었고 자동차 회사까지 차린 예가 있다. 큰 그림을 그려보자면 아시아나 항공이 계속 인수설에 휩싸이는데 현대중공업이 아시아나 항공을 인수해 항공운수사업을 같이 하고 항공기 부품 제조로 시작해서 점차 완제품 항공기로 뻗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국내에서 항공기 제조는 KAI와 대한항공 정도가 하고 있는데 KAI를 인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은 된다. 이 정도만 해도 현대중공업의 포트폴리오는 강력한 시너지를 이룬다.
현재 현대중공업의 조선업계 불황으로 수익성에서 바닥을 헤매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앞에서 얘기한 인수합병이나 사업 확장은 장기적 관점이고 단기적으로는 조선업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이 있었겠지만 효율성을 더욱 추구하는 방향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계열사도 일부 매각,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현대중공업이 문어발 확장을 한건 아니지만 태양광 및 풍력발전 같은 경우 특별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오일뱅크와 연관 짓더라도 화학과 연관성이 적어 시너지가 많지 않아 보인다. 굳이 현대중공업에서 하지 않아도 다른 기업에서 더 잘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 본다.
해양플랜트에서 손실을 보는 것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데 2016, 2017 성적만 보면 최악의 국면은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2014,2015년엔 1천억 이상의 적자를 봤지만 이후 거의 손익분기점에 와있는 상황이다. 내가 보기엔 이 부분은 적자를 안더라도 조금 장기적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지금 현대중공업이 적자라고 해서 물리적 구조조정만으로 여기서 탈출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근본적인 회사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같이 추구해야 한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최악의 상황이지만 그룹의 전반적인 경쟁력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특히 설계능력에 관해서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여론도 있다. 빨리빨리 생산하는데만 집중하지 말고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이 롱런하는 비결이다.
조선업이라는 좁은 분야에서 요행수는 없다. 꾸준히 사업 효율성과 역량을 길러서 내공이 쌓이면 당연히 최고의 기업이 되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그동안 연이은 호황 때문에 조선업체로서 약점을 너무 방치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늘 말하지만 호황기에 불황을 대비해야 한다. 여유가 있을 때 약점을 잡고 문제점을 찾아내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그러지 못했고 지금 문제점이 드러나있다. 아마 자체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텐데 중요한 것은 당장의 실적 개선이 아니다. 이런 위기는 얼마든지 또 찾아올 수 있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몇 년 뒤 똑같은 문제로 또 당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선업 최강자라고 자부했던 것이 단순히 덩치만 컸던 비대증 환자는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분간 어려운 시간을 보내겠지만 현대중공업의 경쟁력은 있다고 본다. 중국 업체들의 추격으로 인해 앞으로의 시장도 쉽지는 않은데 이럴 때 원천기술이 빛을 발한다. 싸고 빠르게 만들어내는 배가 아니라 고급 기술이 들어간 프리미엄 배를 만들려면 설계기술, 소재기술 등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방위산업 분야의 투자도 지속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군함 건조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중요한 사업이고 바다를 끼고 있는 모든 나라들이 의무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경제가 안 좋아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군함시장에서 더욱 적극적인 투자와 진출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현대중공업이 스스로 강한 조선회사의 자질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배는 잘 만들지만 설계는 못한다거나 그저 빠르고 많이 만드는 데만 강점이 있다면 금방 중국에게 시장을 넘겨주고 말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막무가내로 사업을 일구긴 했지만 기술자를 홀대하지 않았다. 현대가 지금까지 온 것도 자동차, 조선의 기술자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기술의 현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경영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것이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