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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Jan 03. 2019

30대 기업 경영진단 -현대중공업 2-

현대중공업 2

 이제 다른 사업부문을 볼 텐데 정유사업을 하고 있는 현대오일뱅크는 현금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좋은 사업부이다. 정유업계에서 2017년 기준 시장점유율 21.5%를 차지해 3위(출처 : 뉴스1, 2017.11.22일 자 "정유업계, 내수시장 점유율 변화 조짐 …'SK·에쓰오일 날았다"-http://news1.kr/articles/?3159353)지만 연간 1조 원 가까이 영업이익을 내는 캐시 카우이다. 정유시장도 과점시장이 된 지 오래인데 현대오일뱅크의 성장 가능성은 어느 정도 일까?


 현대오일뱅크는 SK나 GS와는 달리 석유화학에 대한 비중은 낮은 편이다. 그래서 석유화학 분야에 투자를 권하려 했는데 이미 진행 중인 내용이 있었다. 현대오일뱅크는 합작회사를 통해 사업 다각화를 진행 중인데 롯데케미칼과 함께 설립한 현대케미칼이 2017년 2,67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림으로써 궤도에 올라오는 모습을 보였다.


 잘했다. 다른 정유사와 마찬가지로 석유화학을 붙잡고 있어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그룹 내 시너지가 별로 없는데 그래서 전방산업을 계열사로 두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상선, 항공, 화학 계통이 시너지가 있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태양에너지 계열사는 별로 시너지가 없다. 발전설비라는 측면에서는 시너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수익 측면에서 얼마나 시너지에 기여할지는 미지수이다.


 현대중공업을 분석하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던 중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현대중공업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배구조 화면이 있는데 여기에 미포조선 밑에 금융계열사들이 3개나 있다. 그러나 2018년 12월 현재 이 기업들은 이미 DGB금융그룹으로 매각(2018년 10월 매각)이 완료되었다. 이게 현대중공업의 현실이다. 이 정도로 회사가 어렵고 정신없는 구조조정 중이란 얘기다.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텐데 대기업은 큰 조직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조직의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 대한항공에서 이런저런 사고가 나는 것도 그룹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표 홈페이지에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내부적으로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기업은 화려해 보여도 적자가 나면 화장실 휴지까지 등급이 바뀐다. 그만큼 냉혹하고 철저한 자본의 이론이 통하는 세계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미 매각된 기업을 메인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놓고 있는 걸 보면 참 안타깝다는 말 밖에 할 것이 없다.(혹시 홈페이지 관리자가 희망퇴직으로 나갔나?)


 자료를 조사해보니 지금 현대중공업에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벌써 몇 년째 하는 것이라고 하니 나름대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느끼는 것 같다. 조선/해양플랜트 외의 잡스러운 계열사도 매각할 것이란 얘기가 있다.

 금융 쪽에 대한 분석을 한 페이지가량 싣고 싶었는데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는 현대중공업이 금융 쪽을 좀 더 강화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안타깝게 되었다. 왜냐하면 전투적으로 투자하는 조선 계열사를 뒷받침할 캐시카우 회사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가 그 역할을 잘해주고 있지만 혼자서는 부담이 크다.


 이참에 보험사를 인수해 포트폴리오를 좀 갖추면 어떨까 했는데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매각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그룹의 외형이 한참 쪼그라들게 된다. 외형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현대오일뱅크가 거의 전적으로 총알받이를 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좋지 않게 되었다. 비교적 안전한 사업인 금융, 정유 중에 금융이 없어지고 오로지 정유만 가지고 버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금융회사가 수익만을 위해 필요한 건 아니다. 모르긴 해도 완성된 선작 건조, 납기 과정에 아마 보험들 일이 있을 것이다. 해운 같은 경우도 보험회사를 계열사로 두어 해상보험을 드는 경우가 많다. 금융사는 이런 측면에서 사내에 보유할 경우 유용하다. 


 이제 지주회사 전환까지 거의 마무리된 마당에 금융사업 재진출은 쉽지 않은데 나중에 사업이 안정되면 지나치게 B2B에 치중된 그룹의 면모를 바꿀 B2C 기업을 인수했으면 한다. 중간지주회사를 통해 금융사를 다시 할 수도 있겠지만 버렸다가 다시 하기에는 명분이 약하다. 범현대가와 경쟁을 하기도 어려운 처지라 진출할 수 있는 사업이 많지 않은 것도 답답한 현실이다.


 이번 위기 돌파를 위해 이렇게 그룹 외형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2개의 사업분야로는 안정적인 성장이 어렵다. 국내 대기업들은 대체로 4개의 사업분야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최소 1개 분야의 사업을 추가로 가져야 안전하다.


 지금 그룹이 너무 어렵다 보니 사업 확장에 대한 이야기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앞에서 얘기했던 해운, 항공, 관광 등에 대한 검토는 언제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금융 쪽을 인수해서 징검다리 삼아 다른 사업 1개를 더 인수해 4개 사업부 체제를 갖추는 게 좋겠다.


 그런데 왜 기업들은 대체로 4개의 사업부 체제를 갖추게 되었을까? 이번 경영진단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것이 사업상 매우 안정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마치 계란을 베란다에서 던졌을 때 안 깨지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과 같다. 나 역시 실제로 기업에 있을 때 이런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서는 내부 교육에서 이런 이벤트를 자주 한다.

잘되는 사업부를 가지고 50%씩 역량을 나눠줘도 4개 사업부는 무리다

 왜 4개 사업부일까? 이것은 어느 경영 교과서에도 나와있지 않고 지금 내가 논문을 쓸 입장도 아니라 과학적인 통계를 제시할 순 없지만 추정으로 말하자면 보통 회사가 1개 사업부로 시작해 2개 사업부문까지 확장되는 것은 무난하다. 1개 사업만 잘되도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1개 사업만 잘되는데 3개 사업부문까지 확장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많은 기업들이 이런 원리를 모르고 확장하다가 재무구조가 취약해져서 무너졌다. 하나의 신생회사를 하나의 잘 나가는 기존 계열회사가 커버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두 개의 신생 사업분야를 한 개의 잘 나가는 회사가 서포트하는 것은 리스크가 많이 따른다. 하나의 사업이 잘 나간다고 경거망동하지 말고 두 번째 캐시카우 사업을 준비해야 되는 이유이다. 


 나는 이 책을 준비하면서 많은 기업의 역사에 대해 조사하였는데 무너지는 기업은 하나같이 캐시카우가 한 가지 사업밖에 없었다. 즉 하나의 사업이 잘되는 것만 보고 2탄을 터뜨리고 그 2탄이 성숙하기도 전에 3탄을 터뜨렸다가 기업을 말아먹은 것이다.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도 4개 사업부를 가지면 유리하다. 4개 사업부문을 보유했을 경우 1개 사업부문이 망가져도 손절이 가능하다. 리스크는 나머지 계열사에 30%씩 나눠서 가진다. 그런데 2개 사업부문만 가지고 있을 경우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가진 것을 거의 다 팔아야 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런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사업을 잘하는 것이다. 삼성이나 SK가 급성장한 것은 바로 이런 성장의 균형을 잘 맞추었기 때문이다.

부실사업이 발생했을 때 30%의 위험부담이 발생(지주회사라도 결과적으로는 비슷함)

 삼성은 삼성자동차가 망했지만 그룹이 다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 다른 기업이었다면 그 정도 위기에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한 덕도 있지만 기업의 빠른 대응도 있었다. 리스크는 항상 있고 언제 올지 모른다. 리스크가 왔다고 해서 경영자가 잘못한 것은 아니다. 삼성자동차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IMF는 민간이 예상하지 못한 정책적 부분이기 때문에 막을 도리가 없었다. 삼성은 닛산과 합작을 했지만 자동차 생산을 위한 기초적인 기술과 시너지를 이미 갖고 있었다. 삼성 상용차 사업을 하고 있었던 터라 자동차 초보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업부는 많다고 좋은 것일까? 현대중공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니까 더 하고 넘어가자.


 잘 나가는 사업부는 이익을 내고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업부는 계열사에 시너지라도 줘야 한다. 전자도 후자도 되지 못하는 계열사는 더 이상 필요 없다. 계속 운영할 경우 그룹에 부담만 주게 될 것이다. 사업부 5개는 어떤가? 아무리 재능 좋은 경영자라도 5개 사업부문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긴 힘들다. 내가 볼 때 3개 정도가 한계이다. 

2개의 사업만을 가질 때 1개 사업부실이 발생하면 그룹전체가 위기로 몰린다

 보통은 한두 개 잘 나가는 사업부문을 가지고 한두 개 중견, 신생 사업부를 가진다. 이것은 규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경영의 신이 아닌 이상 4개 이상 사업분야를 다 잘 나가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골도 잘 넣는 데다가 어시스트도 잘하면 더 바랄 게 없는 데 거기에 수비, 골키퍼까지 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되는 것 아닌가? 사업부 4개의 규칙은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기업의 형태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현대중공업 계열사 중에 재밌는 계열사 한 곳만 알아보겠다. 현대 로보틱스이다. 현대중공업은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면서 사업부를 4개로 분사시켰는데 그중 하나가 로봇사업부로 현대로보틱스로 지주사 역할을 맡았다. 지주사를 새로 설립하지 않고 분사된 사업부가 지주사로 된 것인데 지분 문제 때문이겠지만 조금 독특한 경우이다. 현대로보틱스는 분사 후 현대중공업지주로 이름을 바꿨다.


 2019년 1월 초 현재 아직도 공식 홈페이지에는 현대로보틱스로만 되어있고 현대중공업지주라는 명칭은 찾을 수 없다. 전 계열사가 마치 번데기를 찢고 나오는 것처럼 합치고 새로 태어나는 도중이니 여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현대중공업지주는 로봇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지주회사 역할도 하는 사업지주회사 형태가 된다. 지주회사 형태에는 순수 지분수익으로만 사업을 영위하는 순수지주회사와 독자영업을 하는 사업지주회사가 있는데 현대중공업지주는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대기업 중에는 드문 케이스인데 앞으로 다른 기업들의 지주사 전환 형태를 봐야겠지만 이번 현대중공업의 사업지주사 형태 전환은 다른 기업들에게 좋은 케이스가 될 것으로 본다. 순수지주회사이냐 사업지주회사이냐는 각자 장단점이 있는데 그동안 순수지주회사 위주로 전환했던 국내 대기업들이 사업지주회사에도 눈을 돌릴 수 있는 케이스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대기업은 원래 선례가 없으면 잘 안 하는데 현대중공업이 좋은 선례를 만들어둔다면 다른 기업들도 안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출처 : 관광공사 홈페이지)

 분석을 마무리하면서 현대중공업에서 현대미래파트너스라는 경영자문 자회사를 설립하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기업들이 자문회사를 두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닌데 시점상 노리는 포인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중공업의 형태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외형이 줄어든 상황에서 향후 인수합병 시장에 다시 뛰어들 의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수합병이 아니라면 굳이 독자 회사로 설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계열사가 100백 개쯤 되는 회사도 아니고 가뜩이나 외형이 많이 줄어든 시점인데 그룹 내 경영자문이 별도의 자회사까지 운영할 사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이번 경영자문회사 설립은 향후 향보를 주목케 한다.


 현대중공업은 재도약이 시점에 서있다고 본다. 그룹 외형의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고 강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느냐가 문제이다. 경영승계의 문제도 있다. 재벌 3세라고 할 수 있는 ‘정기선’씨가 그 당사자이다. 아버지와 달리 경영에 대한 욕심이 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볼 때 현대중공업은 기왕에 지주회사 전환을 마친 만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정몽준 회장은 어느 정도 그렇게 해왔다. 비록 현대중공업이 위기는 있었지만 CEO 리스크가 적었던 것은 그런 이유인지도 모른다. 현대중공업이 그런 길을 먼저 보여준다면 우리나라 재벌기업들도 결국에는 그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우리는 그 시점에 서있다.


 현대중공업은 2,3년은 자중하는 시기가 있겠지만 금방 또 살아나서 좋은 실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추격이 무섭지만 중국은 기업의 규모 성장보다 사회안정, 시장경제 정착이 먼저다. 따라서 현대중공업은 자기 갈길만 가면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그룹의 외형은 많이 쪼그라들었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조선, 정유라는 양대 축을 기반으로 우리 경제의 큰 버팀목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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