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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Jan 16. 2019

30대 기업 경영진단 - 농협 1-

농협 1

 농협에 대해서 살펴볼텐데 예전에 농협에 다닌 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기억난다. 


 “농협은 하나의 왕국이야.”


 그 친구의 말은 사실일까? 실제로 많은 대기업이 하나의 왕국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농협이 그것보다 더 할까? 이번 경영진단을 통해 최소한 농협이 우리가 생각하는 농촌 은행정도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전체 계열사 구조를 보자. 농협은 크게 조합원에 의해 만들어진 지역조합과 이들이 설립한 농협중앙회로 구분된다. 우리가 아는 농협은 대체로 농협중앙회이다. 지역조합은 농촌 곳곳에서 마을 금고처럼 운영되고 있다. 다른 대기업은 계열사 구조를 보여준 적이 없는데 수십개의 계열사를 보여주는 것이 의미도 없을 뿐더러 이 책의 목적이 증권분석지처럼 깨알같은 데이터 나열만 하는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농협의 계열사 구조를 보면 광범위한 비지니스 영역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게 우리가 알던 농협인가?

 그러나 농협의 성격을 설명하려면 전체 구조를 꼭 알아야한다. 농협중앙회는 금융과 비금융계열사로 나뉘는데 각각 지주회사를 두고 있다. 현재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은 서로 지분소유를 못하게 제한되어 있는데 농협중앙회는 둘 다 가지고 있고 농협금융지주를 마치 중간지주회사처럼 만들어놓았다.(2019.1 현재 중간금융지주는 법에 근거 없음) 


 아주 특이한 케이스인데 어떻게 이런 구조가 가능한가 보았더니 농협법에 의해 예외적용을 받았던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공적인 성향이 강한 농협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시장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강력한 금산분리 규정에 대해 농협만 예외로 하고 민간은 그대로 적용시킨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자본 침식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농협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물론 농협이 무리하게 금융자본을 이용하여 산업에 투자하지는 않겠지만 롯데 같은 경우는 이 법때문에 유통과 밀접한 관계인 카드사까지 강제로 팔아야하는 처지인데 농협은 예외라고 하니 특혜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손해를 봐야한다면 공공기관이 손해를 봐야지 왜 민간이 손해를 본단 말인가? 법이든 행정이든 민간이 주도하고 지원대상도 민간이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정부가 주도하고 특혜도 정부가 받는 모순적인 모양을 보이고 있다. 


 농협이 정부가 아니라고 강변할 지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더욱 금산분리 적용을 받아야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쓰는 나는 재벌과 관련도 없고 이익볼 일도 없지만 이런 행태를 보면 울분이 올라온다. 롯데입장에서 카드사를 매각하는 것은 피눈물 나는 일이다. 남의 눈에는 피눈물나게 하고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예외를 받겠다?


 사실 농협이 예외를 받아야될 이유는 농촌을 위해 공공 목적의 사업을 한다는 이유 하나뿐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농촌에 사는 분들은 농협을 그런 기관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부에서는 농어민의 고혈을 짜내서 성장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아무튼 농협은 예외를 적용받아 금산을 다가지고 있다. 큰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은행, 보험, 증권, 유통, 제조, 식품까지 안하는게 없는 대기업 뺨치는 문어발 기업이다. 공공에서 어떻게 이런 괴물이 자라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민간이 돈되는 사업이라면 다 한다는 취지라면 농협은 몸집을 불릴 수 있는 사업이라면 다 한다는 개념인 것 같다.


 농협은 정부가 뒤에 있고 거대 은행까지 끼고 있어 실패의 위험이 적기때문에 쉽게 사업을 벌였고 농민을 위한다는 명분이면 어떤 사업이든 견제없이 진입이 가능했다. 대기업과 경쟁할 일이 없는 농촌을 기반으로 시작하므로 어느정도 독점적 시장기반도 가질 수 있었다. 농촌이 기반이라 국민들 관심에서 멀어져 있어 무슨 사업을 하든 별로 알려지지도 않고 견제하는 사람도 없다. 


 앞에서도 다른 기업을 분석하면서 조직은 자연적으로 커지려는 속성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조직이든 일단 만들어놓으면 커지려고 하지 스스로 작아지지는 않는다. 농협은 농촌이라는 무주공산에 떨어진 황소개구리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자리만 만들 수 있으면 뭐든 하고 '농촌을 위해서'라고 둘러대면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괴물처럼 커진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농협은행본사(출처 : 스카이데일리)

 농협금융지주부터 분석해보자. 농협금융지주는 금융지주회사로 9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만 보면 웬만한 은행들 부럽지 않다. 은행, 보험, 증권, 자산운용, 캐피탈, 저축은행, 리츠까지. 세계적으로도 공공적 성격을 갖고 있는 기관으로서 이정도 포트폴리오를 가진 금융회사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농협은행은 총자산 263조원으로 18개 은행중 5위에 랭크되어있다.(출처: 조세일보, 2018.04.10, [은행 2017년 경영실적] 은행, 빚 늘려 자산 키웠다… 총 자산규모 2288조원 달해,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8/04/20180410350397.html) 그러나 증권, 보험등 농협금융 전체로 보면 주요 금융기관중 3위에 해당한다(출처 : 매일경제, 2017.12.01, [5대 금융그룹 경쟁력 분석] 신한·KB “1등은 나야 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796669) 두 데이터간 날짜 차이는 있어도 큰 변화는 없다고 생각된다.


 계열사로 표시는 안되어 있지만 카드영업도 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농협은 적어도 크기면에서는 정부가 만들어낸 괴물이 맞다. 30대 기업 10위에 해당하는 대기업이지만 규제는 예외인 아주 특이한 회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농협이 그정도 위치를 가질 만한 자격이 있는 회사냐를 따져봐야한다. 농협은 지난번 전산사고도 그렇고 당장 인터넷뱅킹만 들어가봐도 타 은행에 비해 경쟁력이 높지 않아 보인다. 농협의 인터넷홈페이지만 들어가봐도 다른 사기업 홈페이지에 비해 수동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인터넷뱅킹이 불편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011년 벌어진 농협의 금융전산 사고는 IT업계에서 획을 그은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싶은데 농협정도 되는 대규모 전산센터와 인력을 가진 회사가 금융데이터의 뼈와 살이라는 거래데이터를 분실하고 비상시 가동되도록 하는 DR센터까지 기능을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출처 : 디지털데일리, 2011.04.13, 농협 전산망 마비, DR서버도 말썽… IBM도 초비상 http://ddaily.co.kr/news/article.html?no=76675)


 한시간 한나절도 아니고 며칠동안 시스템이 중단된 초유의 사태였다. 아마도 보안을 연구하는 단체나 세계 전산의 역사에도 기록될만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특히 금융에 있어서 서비스 중단이라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인데 중단정도가 아니라 거래데이터 삭제, DR센터까지 파괴당했다고 하니 과연 농협이라는 회사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알만한 사건이었다.


 여기서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게 금융권 전산 외주화인데 원래 은행본사에 포함되어있던 전산부서를 독립시켜 아웃소싱하는 방식이 2000년대부터 하나의 유행처럼 꾸준하게 추진되었다. 신한은 신한데이터시스템,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정보시스템등으로 IT업무를 아웃소싱했다. 경영계에서 한참 다운사이징, 아웃소싱 바람이 불 때인데 전산분야가 그 타겟이 되었고 나는 그때도 문제를 지적했었다. 


 이 당시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일화가 있는데, 나는 당시 모 금융회사(농협 아님) 본부에서 일하는 간부직원의 강의를 들을 일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IT는 휴지와도 같다. 즉 우리가 필요하면 쓰고 버리고 새로 사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웃소싱으로 하고 있다.” 

의왕에 신축한 농협 IT센터(출처 : 현대건설)

 그 얘기를 듣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휴지와 IT를 같게 보는 그 사람의 시각도 문제거니와 버리고 새로 산다는 개념도 무개념의 극치라고 생각했다. IT는 현대 금융산업에서는 뼈나 혈액과 같다. 돈이 IT를 통해 직접 움직이고 모든 데이터가 그곳에 쌓인다. IT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사업을 영위하기 힘들다. 그리고 IT는 소모품이 아니라 인프라이다. 우리가 집에 있는 컴퓨터를 바꾸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아마 그 사람도 서버교체하고 그런 것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고 고민하는지는 모르는 것 같다. 서버하나 교체하는데도 며칠동안 계획하고 수십명이 달라붙어서 혹시나 있을 지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한다.  IT는 수단이긴 하지만 지금은 수단이자 본질이 되어가고 있다. 어떤 금융회사에서는 80년대에 쓰던 코볼 같은 언어를 아직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30년 넘은 휴지를 교체 못하는 산업이 있는가? 일반 소모재와 IT를 동일시하는 그런 인식들이 금융권에 널리 퍼지면서 IT가 아웃소싱되고 직원대우가 나빠지자 서비스 품질도 같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있었다. 농협도 농협정보시스템이라는 별도의 회사가 있는데 지금보니 IT업계뿐만 아니라 전 산업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악명이 높다. 지금 인터넷에 검색하면 곧바로 ‘막장’이라는 기사가 뜬다.


 비단 IT의 문제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대응, 혁신, 책임감 등이 전반적으로 떨어져 이런 금융사고 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협은 이런 정신상태를 고치지 않고는 성장을 장담할 수 없다. 농촌지역에서 독점적 시장을 기반으로 하지만 이런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결국 혁신의 칼 앞에 놓일 수 밖에 없다. 누누히 말하지 않았던가?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혁신당한다고.


 농협의 문제점을 3가지로 요약해 보겠다.

1. 주인없는 회사

2. 문어발 영업

3. 혁신없는 DNA


 여기서 농협의 성격을 규정할 필요가 있는데 농협은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이 지역에서 돈을 출자해서 만든 민법상의 ‘조합’이다. 창업자가 주주의 투자를 받는 법인과 다르고 출연금을 기반으로 한 재단(사단법인)과도 성격이 다르다. 농협은 지배구조가 무려 3단계를 거치면서 조직의 성격이 더 애매해진다.


조합원 -> 지역농축협(조합) -> 농협중앙회(법인) -> 농협경제,금융지주(지주회사)


 여기에 공공적 성격까지 포함하면 농협은 정체성이 매우 모호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위 3단계에 속해있는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정부까지 개입하니 농협이 혁신적인 미래를 준비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농협의 V표시는 'ㄴ', 항아리모양은 'ㅇ', 합해서 'ㅎ' 즉 농+업=협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포스코를 분석할 때 언급했지만 정부의 간섭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오래전 부터 정부가 농협회장 인선에 개입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정부사업도 일부 하고 있는 농협이 정부와 관계를 완전히 끊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인사에서만은 독립해야한다. 그것이 농협개혁의 첫걸음이다. 


 조합이라는 회사형태가 참 재밌는 게 소유자가 있지만 누구의 것도 아니란 점이다. 조합원들은 주주와는 달라서 비록 회장을 선출한다고 하지만 경영에 대한 관심과 권한은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대주주가 없는 구조에서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회사를 움직여나갈 주체가 없다는 점이 무기력한 공기업 외형을 갖게 하는 원인이다.


 그래서 조합으로 성공한 회사가 많지 않다. 언뜻보면 합리적이고 민주적일 것 같지만 전쟁터와 같은 시장에서 싸우기에는 적합한 형태가 아니다. ‘썬키스트’처럼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조합도 있지만 단순 농산물 생산이 아닌 복잡하고 거대한 기업운영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농협이 이 구조를 바꿀 순 없고 형태를 유지하면서 개선을 해야하는 데 그 첫번째가 독립적이고 공정한 농협회장선거이다.


 현재 간선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선거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협중앙회는 엄연한 법인이다. 이사회에서 회장을 선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직선제를 실시할 때는 더 많은 문제점이 있었고 지금도 농협을 위한 공약보다는 포퓰리즘적 공약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은 자유롭게 경영할 때 최대의 효율이 나오게 마련이다. 관련 법을 지키는지 감시할 필요는 있지만 경영의 방향은 민간은행과 달라야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조합원과 농민의 이익은 어떻게 하는가? 농협이 잘되는게 조합원의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농민의 이익과 부합하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농협은 현재 돈되는 사업은 뭐든지 하고 있는 것 같다. 삼성, 현대 뺨치는 문어발 사업군을 가지고 있다. 결국 토착세력이나 마찬가지인 농협이 농촌에서 많은 이익을 내고 그만큼 다른 민간회사가 들어갈 공간을 뺏고 있는 것이다.


 농협은행이라는 거대한 돈주머니를 뒤에 차고 하는 영업이 잘 안될리없고 규제면에서 일반기업들과는 형평성의 차이도 난다. 차라리 농협경제부문 상당수를 매각해 조직을 슬림화하고 매각된 기업들이 민간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농협은 타 은행보다 농민,서민에 대해 대출조건등을 좋게 하는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지금도 여러 상품에서 그런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부족하다. 농민이 농협덕분에 살았다는 얘기를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정부의 간섭은 차단하면서 농민의 이익을 늘려줄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농협금융이 일반금융나 다름없는 모습만 보인다면 농협이 농촌지원이라는 정책적 혜택은 따먹으면서 농민지원이라는 의무는 외면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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