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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Apr 03. 2019

30대 기업 경영진단 - 한진 - 2

한진 2

 한진그룹은 한국에서 드물게 물류분야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굳이 비슷한 기업을 찾으라면 금호그룹 정도가 될 것이다. 육상과 항공 운수를 다 하고 있는 기업은 두 기업뿐이다. 한진그룹은 대기업으로 나름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지만 그래도 중심은 대한항공이다. 창업자는 조중훈으로 전쟁이 한참인 베트남에 물류로 뛰어들어 미군의 신뢰를 얻었다. 이것이 향후 미군 사업을 따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해 그룹이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다들 대기업이면 정부 특혜로 성장했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그 당시 기업들에게는 대부분 특혜가 주어졌다. 잿더미에서 뭔가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정부로서는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특혜를 받은 사람들이 다 대기업을 일군 것이 아니다. 조중훈처럼 목숨 걸고 뛰어드는 사람과 천재적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만이 지금의 거대기업을 일구었다. 


 대기업이 되어서도 외풍은 항상 있었다. 두 번에 걸친 석유파동이 있었고 국내적으로는 정치의 외풍이 컸다. 관이 주도하는 경제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외풍 속에서 살아남은 것이 지금의 30대 기업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 나는 대기업을 찬양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경유착 덕분이었다고 하는 세간의 주장은 외눈박이 주장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창업자 치고 잘 것 다자고 먹을 것 다 먹고 일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정주영 회장은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아침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판타지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한진그룹은 조중훈 회장 사후에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상속하는데 각각 한진해운, 한진중공업, 한진투자증권으로 분리 독립했다. 분리해서 나눠주는 것까지는 좋았다. 한진투자증권은 나중에 메리츠 종합금융으로 발전하는데 안정적인 금융업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다.

대한항공 50주년 기념(출처 : 대한항공 홈페이지)

  제일 먼저 위기를 맞은 것은 한진해운으로 3남 조수호 회장의 사후 부인이었던 최은영이 부회장으로 나서면서 내리막을 걸었다. 이런 모습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지 모르지만 작은 중소기업도 아니고 수많은 주주와 수천 명의 직원이 있는 회사를 사장이 죽었다고 부인이 맡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 이걸 승인한 이사회도 이해할 수 없다. 최근에는 현대가 그런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두 기업이 모두 해운업을 하고 있고 상황이 어렵다.


 해운업이 불황으로 치달으면서 한진해운은 무너졌고 한진그룹에서 긴급지원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뒤 해운업과 연결되어있는 조선업 불황으로 한진중공업마저 자본잠식에 빠지고 결국 채권단에 의해 조남호 회장이 퇴진하였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까지 퇴진한 마당에 이제 한진가의 자식들은 이제 메리츠 종합금융 조정호 회장밖에 남지 않았다. 조중훈 회장도 그렇고 조양호 회장도 그렇고 경영은 잘하는지 모르지만 자식 교육을 잘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래서 오너쉽 상속은 위험성이 많다.


 재계 14위 한진그룹은 핵심 계열사로 대한항공과 진에어가 있으며 나머지 계열사들은 계열 분리되고 큰 계열사가 없는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매년 1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는 알짜회사로서 사실상 한진그룹이 대한항공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진그룹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대한항공그룹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국내에서 항공사라고 해봐야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두 회사가 메이저이고 저가항공 경쟁이 심하지만 진에어가 있으니 여기서도 경쟁력이 있다. 대한항공은 사실상 과점 상태로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이익이 창출되는 단계이다. 게다가 항공업의 특성상 진입장벽이 높고 경쟁회사도 많지 않아서 큰 위기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저가 항공 붐이 불던 시기 진에어로 대응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얼마 전에 진에어 면허를 박탈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다행히 면허는 유지되었지만 무슨 기업의 운명을 이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하는지 모르겠다. 경제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게 기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큰 기업도 내일 없어질지 모르는 공포가 있다. 삼성 바이오도 그런 식이었다.

진에어 (출처 : 한진칼 홈페이지)

 문제가 있으면 그 부분을 고쳐나가면 되는데 기업 자체를 없애려고 하는 것은 그저 기업을 악마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기업 경영진은 미울지 모르나 그 안에는 수많은 평범한 가장들이 일하고 있고 많은 가족들이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기업에서 파생되는 이익과 협력업체까지 감안하면 우리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기업인데 이런 것을 밉다고 없애서야 되겠는가?


 그런 논리면 30대 기업이 다 밉지 착한 기업이 어디 있나? 우리는 착각하면 안 된다. 기업은 자선단체가 아니다. 선한 일 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란 얘기다. 기업은 이익을 내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 동기가 바로 우리 사회의 발전과 경제를 일으켜 개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이나 기업가 정신은 하나의 미덕이지 의무가 아니다. 기업은 자기 사업을 열심히 하고 직원들을 고용하는 것만으로 1차 책임은 끝난 것이다. 


 기업을 무슨 자선단체처럼 여기저기 기부하게 만들고 울며 겨자 먹기로 정부 공익사업에 끌려가도록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기업에게 최대한의 자유가 부여되고 그 과실로써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 다만 위법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 맞다. 이것은 미국식으로 미국은 기업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자율을 부여하고 분식회계, 담합 등이 발견되면 가차 없이 천문학적 벌금을 매긴다.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규제 때문에 기업이 사업을 자유롭게 추진하지도 못하고 실제 불법이 발견되어도 제대로 처벌도 못한다. 이렇게 되면 경제구조가 경직되고 혁신이 생기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게임산업이 세계 수준으로 올라가다가 정부의 규제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한 예이다. 오죽하면 넥슨 김정주 회장이 평생을 일군 회사를 팔고 떠나겠다고 하겠는가?


 대한항공은 지금도 좋은 위치이지만 향후 성장을 위해서는 우주항공을 키워보면 어떨까 한다. 현재 대한항공에서 항공기, 헬리콥터 생산기술을 보유 중이지만 완제품 개발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군용기 사업을 KAI가 도맡아 하고 있는데 공기업 성격이 강한 KAI에게 언제까지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번에도 미국 훈련기 사업에서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만약 대한항공이었다면 같은 조건에서 계약을 따냈을 가능성이 훨씬 많았다고 생각한다. 

운항훈련센터 기공식(출처 : 대한항공 홈페이지)

 미국 훈련기 사업에서 보잉이 낙찰받았는데 KAI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입찰했다. 이것은 결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공기업 성격의 KAI는 이런 결단을 하기 힘들다. 이런 큰 차이로 떨어진 것은 이번 사업이 KAI가 배수진을 치고 올인해야 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고 이는 정권 교체기와 맞물려 회사가 어수선했던 것도 한몫했다고 본다.


 대한항공은 항공운수로 볼 때 앞으로 크게 성장할 요인이 없다. 국내 여객수요도 제한적이고 아시아 관광객 유치도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관광도 관이 주도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것이 없다. 중국, 일본의 수요를 창출할 요소가 적다. 대한항공이 관광정책을 바꿀 수도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매우 제한적이다. 오로지 항공기술분야에서는 대외 진출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의 노하우도 충분히 있는데 완제품 항공기 사업을 일단 따내는 것이 관건이다. 조양호 회장의 퇴진으로 장기적인 플랜은 기대하기 힘들어졌지만 대한항공이 추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급적이면 우주분야로도 눈을 넓혔으면 한다.


 우주분야 역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라는 공공기관이 맡아서 하고 있다. 우주분야는 대규모 자본과 국가적 기술력이 집약되야하므로 국가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결국은 많은 일자리와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 민간기업이 주가 되어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 인공위성은 KT와 삼성, 로켓은 대한항공등이 참여한다면 좋은 그림이 될 것이다. 지금도 일부 회사가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부족하다.

 한진그룹의 나머지 계열사를 볼 때 캐시카우로 키울만한 기업이 없다. 호텔, 관광분야가 있지만 이 분야에서 이제와 한진그룹의 대대적 투자를 주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수익성도 제한적이다. 항공우주분야를 키워서 별도의 계열사로 독립시킨 다음 양대 축으로 삼으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것은 국가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특혜란 말을 듣더라도 어쩔 수 없다. 어느 나라든 자기 나라 항공산업은 이런 식으로 키운다.


 추가로 한진그룹은 정유 관련 회사를 보유하는 것이 어떤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원래 S-Oil이 한진그룹 소유였는데 한진해운 위기 때문에 2조 원에 매각되었다. 그렇게 보면 한진이 한진해운 부실 사태 때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행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한진그룹에 안정적으로 캐시를 벌어줄 계열사는 대한항공밖에 없기 때문에 포트폴리오상 이는 개선해야 한다. 정유회사를 다시 보유하는 방향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한진해운이 이렇게 망가진 상황에서 애꿎은 캐시카우만 판 셈이 되었다. 


 운수 항공업 특성상 보험업도 계열사로 있으면 좋지만 메리츠가 있기 때문에 굳이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항공기에 안정적인 항공유를 공급하기 위해서 정유회사를 보유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생각이다. 대한항공에서 유일한 불확실성이라면 유가인데 정유회사를 통해 이런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정유회사 지분 확보가 많은 돈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룹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업종이다. 10년 전이긴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오일뱅크를 인수할 때 든 돈이 2조 5천억 원이다.(출처 : 중앙일보, 20100812, 현대중공업, 오일뱅크 되찾았다, https://news.joins.com/article/4377303) 현금 여력이 있다면 추진할 필요가 있다. 

S-Oil 본사와 공장(출처 : S-Oil 홈페이지)

 안정적 물류사업을 위해서는 유류를 공급해줄 계열사가 필요하다. 이 정유회사를 기반으로 화학산업으로 범위를 넓혀가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현재 한진으로서는 이 정도의 비전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제는 해운, 중공업이 모두 떨어져 나갔으니 종합 물류 기업의 위상도 아니다. 지금 당장은 쉽지 않아도 장기적으로 사업다각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항공과 정유를 갖게 된다면 서비스와 제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된다. 사업적 측면에서 아주 좋은 구도라고 생각한다. 항공, 호텔, 관광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면세점 사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지금 면세점 사업에 진출한 두산보다는 훨씬 시너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업은 정부 허가가 필요해서 여론이 좋지 못한 지금 추진하기엔 부담이 있다.


 누가 경영자로 오든 경영자는 감각이 있어야 된다. 소나기가 올지, 바람이 불지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한다. 이성적 판단이나 법보다 여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면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에 맞게 행동해야 하고 기업의 경영전략도 그 연장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원칙만을 고수할 상황은 아니다. 20년을 경영한 기업 총수가 '갑질'때문에 밀려나는 상황이다.


 향후 한진그룹의 전망은 밝지 않다고 본다. 총수가 너무 갑작스럽게 빠져버린 상황이다. 총수 한 사람에 의해 회사가 운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차이가 있다. 그룹의 미래 플랜을 짜는 게 경영자인데 오너경영의 장점인 장기적 관점의 경영이 갑자기 중단되었을 때 기업은 갈피를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

냉정한 이성이 요구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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