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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Mar 30. 2019

30대 기업 경영진단 - 한진 - 1

한진 1

 마침 한진을 분석하려는 때에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 한진 그룹 총수가 경영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2%남짓한 차이로 연임에 실패한 것이다. 한진이라는 거대한 배의 선장이 갑자기 없어진 꼴인데 이 상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가지 측면에서 상황을 분석하고 경영진단에 들어가겠다.


 이번 사건은 1. 국민연금의 경영자 교체 개입이 정당한지 여부, 2.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잘못은 없는지 여부로 논점을 좁힐 수 있다. 1번에 관해서 먼저 말하자면 국민연금은 투자자이긴 하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닌 경우 주도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항상 방어적, 보수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민의 노후자금이고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다른 주주와 똑같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우리나라 대기업 모두가 국민연금 산하기관이 될 수도 있다.


 지금도 국민연금이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기관이 상당수 된다. 보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국내 기업 중 2018년 1분기 기준으로 276개 기업에서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출처 : 중앙일보, 20180531, 국민연금, 276개 기업의 대주주 … “기관투자가 간섭, 기업 이익 증대에 도움 안 돼”, https://news.joins.com/article/22671423)


 자금력이 너무나 커서 투자시장에서는 반칙이나 마찬가지이다. 투자자금만 131조 원가량 된다. 이는 더 확대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이렇게 자금력이 너무 크고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으므로 기업의 경영자율권 보장을 위해 될 수 있으면 개입하지 않는 게 기본이자 원칙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더 이상 자유시장경제라고 말할 수도 없다. 


 중국이나 남미가 시장경제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국영 체제로 운영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이번에 총수일가가 도덕적 비난을 받는 것을 가지고 경영진 교체에 이용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그들이 갑질 등을 통해서 매우 비난받을 일을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경영권을 뺏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한진이 경영상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거나 그들이 경영상의 큰 판단 착오를 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도덕적인 이유로 경영권을 뺏는 것은 안될 것이다. 

조양호 회장 (출처 : YTN)

 배임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어떤 타깃을 정해놓고 탈탈 털어서 무엇이든 나오게 하는 것은 이미 자주 봐온 일이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위험하냐 하면 정부가 마음에 안 드는 기업을 수사기관을 동원해 먼지 털기를 해서 문제를 잡아내서 그걸 빌미로 경영권을 뺏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이 악화되도록 만드는 것은 의외로 쉬운 일이다.


 국가는 무조건적인 선도 무오류의 존재도 아니다. 그래서 자유 시장경제에서는 시장의 법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인데 여기에 너무나도 거대한 힘을 가진 국가가 들어와 마치 개인 플레이어처럼 행동한다면 이것은 반칙이고 여기서 내려진 결정이 합리적이란 법도 없다. 국가의 논리와 시장의 논리는 다르며 하물며 그것이 정부나 집권당의 논리라면 더욱 그렇다.


 사기업은 그 경영권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고 국가는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존재지 도덕적 잣대로 무소불휘의 힘을 발휘해 인위적 개입을 시도해서는 안된다. 이것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정부가 개입한 결정이 합리적이란 보장이 없다. 정부는 한시적이고 정파적이다. 이들이 수십 년간 기업을 경영해오고 앞으로도 경영할 경영진보다 합리적으로 기업을 위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시장원리가 아닌 정치논리가 들어오면 합리성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시장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갑질이란 것은 경영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다. 매우 감성적이고 도덕적 이야기이다. 더군다나 이번에 조양호 회장의 경우 본인이 갑질의 주체도 아닌 상황이다.


 경영자가 도덕적이면 좋겠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그것은 별개이다. 스티브 잡스는 불세출의 천재였지만 그의 인성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그의 밑에서 일했던 사람들 조차 힘겨움을 호소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린 몇몇 사람들의 발언과 그의 사생활을 문제 삼아 그를 끌어내려야 했을까?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 기업 경영자가 되면 기업이 더 발전할 수 있을까? 그건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유명한 철학자인 루소는 자신의 아이 다섯 명을 다 고아원에 보냈다. 그의 우수한 철학적 이론에 비해 그의 삶은 그다지 본받을 것이 못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루소를 역사책에서 지워버리고 그의 책을 불태워야 할까? 


 도덕은 도덕적인 차원에서 비난해야 한다. 도덕이 생활을 압도하게 되면 중세시대와 같은 억압된 사회가 된다. 더 문제인 것은 국민연금이 기업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경우 기업은 방어수단이 없고 정부를 이끄는 사람이 불순한 생각을 가질 경우 얼마든지 사적, 정치적으로 기업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 대한항공 홈페이지

 대북사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현대가 고난의 시기를 겪은 것이 그 예이다.  정주영 회장의 의지도 물론 있었지만 정치권과 밀착하여 추진되는 바람에 사업성보다는 정치적, 개인적 이유로 추진되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 결과 기업의 대표는 자살하고 현대는 과거의 위상을 잃어버린 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중국 최대의 유통기업 알리바바의 마윈이 갑작스럽게 은퇴한 것에 대해 중국의 압력설이 있었다. 이런 일이 국민 연금을 통해 국내에서도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떤 약점이든 트집 잡아 수사기관을 통해 먼지 털이식 수사를 한 다음 처음 수사를 시작할 때와는 다른 사유로 구속하고 이를 빌미로 경영권을 빼앗는 것이다. 


 5 공화국 때 국내 제계 7위에 해당하는 국제그룹도 순식간에 공중분해되었는데 당시 정권의 눈밖에 난 것이 이유였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국제그룹은 국민연금이 아닌 은행들이 동원되었는데 갑자기 자금 압박을 하자 견디지 못한 그룹이 무너지고 말았다. 


 방법만 바뀌었지 이번 사안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국민연금은 중립성을 전혀 보장받을 수 없으며 얼마든지 투입될 수 있는 자금 때문에 일개 기업이 방어하기에도 쉽지 않다. 5 공화국과 차이점은 여론이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한진 외에도 삼성이나 기타 기업들이 국민연금의 복수혈전에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의 안정성을 위해 투입된 국민연금이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가지고 정부의 이상 관철의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 지금 정부의 의도가 아무리 순수하다고 해도 이후 정부들이 모두 그럴 것이란 보장이 없다. 이번 일은 선례를 만들면 안 되는 일이었다. 

조현아 부사장(출처 : YTN)

 2번을 보자. 한진 경영진의 문제는 전혀 없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경영자는 기업을 둘러싼 환경을 파악하고 있었야 한다. 그래야 거기에 맞는 기업활동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땅콩 회항이나 물컵 사건 등은 이런 환경을 너무나 무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매를 번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론, 언론의 영향력이 높고 일단 여론이 일면 냉정한 원칙 따위는 가볍게 무시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그들은 그런 행동을 벌였다.


 기업환경이 호의적이 않은 상황임을 몰랐을까? 지금 언론과 정치권이 키우고 있는 반기업, 반재벌 정서에 대해 일말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되었다.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주는 격으로 기업을 악마로 보고 경영자들을 착취자로 보는 시각이 만연한 상황에서 그것에 딱 맞는 행위를 보여줘 결국 중립지대의 국민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고 이런 시각에 불을 붙여주었다.


 한진가의 자식 교육문제는 내가 언급할 바는 아니지만 애초 자식들을 너무 일찍 최고위 간부로 승진시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녀 조현아는 39세에 부사장, 막내 조현민은 30세에 상무가 되었다. 조양호 회장이 건재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너무나 일찍 고위직이 되었다. 이들이 한진의 경영권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얼마나 가졌을지 의문이다. 보통 기업에서 부사장 급은 50에도 꿈같은 일이다. 


 국내 30개 기업의 평균 연령은 2017년 기준 54.1세라고 한다.(출처 : 한겨레, 20180411, 국내 30대 기업 임원 평균 나이 54.1세… 여성 임원 ‘태부족’, http://www.hani.co.kr/arti/economy/working/840051.html#csidx5d6a1ac3b0582f8a52240785976a014 ) 내 강아지 내가 마음대로 하듯이 기업을 다룬 것은 아닐까?

조현민 전무 (출처 : YTN)

 경영자는 감이 좋아야 하는데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연속해서 일을 터뜨렸다. 땅콩 회항, 물컵 사건, 회장 부인 갑질 건이 연달아 터졌다. 이것은 우리나라처럼 기업에 적대적인 환경에서 '나 죽여주세요'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설사 자신들이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자숙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의 일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연속된 사건이 이렇게 만든 것이다. 어떻게 한진 정도를 이끌어갈 사람들이 이 정도로 감이 떨어지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한진은 베트남전을 계기로 급성장한 회사인데 그 전쟁터를 누비며 기업을 반석에 올린 창업자 조중훈 회장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인성의 문제는 내가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지만 기업을 공적 사회가 아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보는 것 같은 이들의 행동은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직원들을 질책하고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은 오너로서 기업에 대해 애착을 가지는 수준이 아니라 오랫동안 귀족 대우를 받아온 그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수단으로 보는 것인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한다.


 거의 군신관계를 방불케 하는 이런 극단적 행동들은 형사적 문제로 발전할 소지도 있어 경영수업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생활부터 배워야 할 상황이라고 보인다. 작은 사회라도 그 속에서 구성원이 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세상의 주인공은 나인데 왜 엑스트라 따위가 말을 듣지 않는 거냐고 하는 것 같다.


 기업 경영자는 이 모든 것도 리스크로 관리해야 한다. 조양호 회장은 이런 면에서 무관심했고 시기를 놓쳤다. 이 점은 그가 경영권을 잃어버린 지금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럼 이번 사건으로 인한 한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로는 주인 없는 회사가 되었으므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공교롭게도 경쟁사인 금호아시아나의 박삼구 회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물론 금호는 재무상황이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우리나라 양대 항공기업의 헤드가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조양호 회장의 장남 조원태 사장이 있어서 그나마 기존 경영방침이 어느 정도 유지될 것으로 보이지만 총수가 없는 상황에서 기업의 발전적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나는 이 책에서 재벌가 자손들이 경영참여를 자제하고 소유에 만족해야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 변경은 이런 방식의 쫓아내기가 아니라 시장의 논리로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일본도 초창기 기업들은 창업자에서 2세로 세습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결국 기업이 커짐에 따라 오너보다는 전문경영인으로 체제를 바꾼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대기업의 규모도 오너가 오너쉽으로 끌고 가기에는 기업이 너무 커졌다. 


 불세출의 경영인이 대대손손 나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기업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조양호 회장이 20년이나 기업을 경영해왔지만 지금의 판단력을 보면 실망이 크다.


 장기적으로 한진은 성장보다는 침체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오너쉽도 없고 한국에 국한된 항공업의 한계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한진의 미래와 현재를 분석해보자.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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