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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내이팅게일 Mar 01. 2022

존중

안전 기지


내 존재 만으로도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 할머니를 통해 경험했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견고히 잘 지킨 건 할머니의 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던 내게 할머니라는 존재는 주양육자였다. 불같이 화만 내던 할아버지에게,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낯섦에게, 두려움에게서 나를 보호해주는 대상은 할머니 었다.



어린아이에게 음식이란 돌봄을 의미한다. 누구나 집밥이라는 향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온 '어머니의 된장국'이라는 노래처럼 나에게 있어 집밥은 '할머니의 꽃게탕'이라 말할 수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참 동안 엄마에게 할머니가 만들어준 꽃게탕을 요구했다. 어린 시절 나는 그렇게 애도의 과정을 겪었나 보다. 앞으로 다시 먹을 수 없는 음식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그 맛이 떠오른다.



주양육자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큰 일이다. 고모들의 눈물, 무엇보다 아버지가 밤새 울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관 앞에서 걷던 나는 고작 9살이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이름 짓는 것조차 버거운, 아니 받아쓰기조차 버거웠던 그 시절 나에게 할머니의 죽음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였을까,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걸으면서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가슴 한 편 어딘가에 할머니를 묻었다.



상담 시간에 가슴 한 편 어딘가에 묻어둔 할머니를 다시 불렀다. 할머니라는 단어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마구 나왔다. 별다른 질문이 없었는데도 나는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에게 할머니라는 존재는 참으로 크고 따뜻한 분이었던 것은 확실했다. 가정 속에서 감정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할머니의 품 속에서만큼은 참으로 따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내가 겪었던 삶의 풍파들 가운데에서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할머니는 실질적으로 돌아가셨지만,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셨던 할머니라는 존재는 여전히 내 가슴속에 존재한다. 입맛이 없는 나에게 밥에 물을 말아 밥을 먹여주시기도 하고, 동네 할머니와 함께 민화투를 치기도 하던 할머니는 아직도 선하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존재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언제나 내 편이었던 할머니의 품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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