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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내이팅게일 Jun 12. 2022

라이벌

형제자매

'에너미(enemy)는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살지만, 라이벌(rival)은 상대를 죽이면 나도 죽어. 상대가 있어야 내가 발전하지. 같이 있는 거야. 그게 디지로그 정신이야.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나는 오랜 라이벌이자 벗인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누나라는 존재는 내가 이겨내야 하는 존재이기도 했고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한 살 터울이지만 3월생인 누나와 12월생인 나는 거의 2년이라는 공백을 두고 세상에 나왔다. 여자와 남자의 발달 특성을 생각해보면 아마 나와 누나는 3-4년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연년생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었다. 언어 발달이 늦는 남자아이들 중에서도 유독 느리고 소극적인 나를 보며, 동생이 바보가 아닐까 진심으로 걱정을 하기도 했단다.


반면에 누나는 같은 연령대에서 꽤나 곧잘 했다. 공부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체육도 잘하던 그 옆에서 나는 그림 그리는 것 이외에는 두드러지게 잘하는 것이 없었다. 내가 미술을 선택한 이유도 어쩌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활동이어서, 부모님께 칭찬을 받기 위해서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누나는 내 삶에 어떠한 위인보다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부지런히 싸우던 대상이었지만,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은 항상 나를 누나에게 맡겼다. 첫 째라는 이유로 어린 나이임에도 많은 일들을 해쳐나가야 했다. 그 어린것이 라이벌 같은 존재를 오히려 보듬어 안아 짊어지고 각박한 세상에서 애썼다. 누나는 친구의 집을 갈 때도 나를 데리고 가야 했고, 친구들끼리 놀러 가는 모든 곳에 나를 데리고 다녀야 했다. 큰 부담이 되었을 나라는 존재는 그 속에서 아파도 했고, 안정감을 얻기도 했다. 그렇게 누나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기에,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존재이다.


듬직한 남자가 되기 위해 입대하는 날, 울지 않던 엄마 옆에서 누나는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는 내게 멀리서도 그게 훤히 보일 정도였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누나의 머릿속에 뿌리 박힌 10살의 나는 잊히지 않았나 보다. 천천히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겁쟁이 꼬맹이에서 어른이 되어 갔다. 그렇게 30살이 되어서야 누나의 눈에는 내가 조금 어른으로 보이는 것 같다. 이제는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각자의 속 깊은 고민을 이야기하고 지혜를 모으기도 한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가며 함께 늙어간다.


이제 나는 엄마의 품을 주었던 누나에게 아빠의 등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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