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8:2021.08.20 왜나는너를사랑하는가>

17에서 성장하지 못한 40을 앞 둔 피터팬

by IMMM

I. 멜로에 집착하는 성장하지 못한 '피터팬'

영화학교를 다니던 시절, 나는 '멜로'에 꽤 집착했다. 17살 사춘기 소년의 첫사랑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입대 전까지 나는 사랑, 로맨스로 포장된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다. 그리고 제대 후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른이 되기 싫은 '피터팬 증후군'이었다. 멜로와 피터팬 증후군이 무슨 상관관계인가 싶겠지만, 결국 나는 성장이라는 단어에 목매달았던 것 같다. 40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 시절 성장하지 못한 나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은 아직까지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한 듯하다. 연애는 적당히 해봤으나 사랑은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가슴 절절하고 애달픈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사랑에 대한 판타지와 성숙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고민하는 것을 보면, 망가졌던 첫사랑에 대한 기억에 집착하며,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채 그 답을 찾으려 하고 있나 싶기도 하다.


II. 30% 그리고 70%

『이프 온니』, 『이터널 선샤인』, 『노트북』, 『봄날은 간다』 등 그 시절 유행처럼 지나온 가슴 절절한 멜로 영화들을 보며, 연출가를 꿈꾸던 나는, 감독은 되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제 만들 수 없다'라는 현실에 부딪쳐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이야기니까? 비겁한 변명일 수도 있으나, 나의 비겁이 30%라면 현실이 70%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원초적 욕구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았으나, 사랑을 바라보는 시대적 시선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까. 내가 집착했던 사랑 이야기는 이제는 시대에 뒤처진 돈 안 되는 이야기가 되었고, 자극적이고 빠른 템포의 요즘 사랑 이야기와 내 사랑에 대한 판타지는 결이 맞지 않았으니,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던 시간 동안 영화 시장은 줄어들고, 줄어든 시장 속 멜로라는 장르는 사라지고, 로맨스라는 장르는 코미디나, 섹시 등 부가 텍스트가 붙지 않으면 투자가 되지 않는 현실이 도래했으니 70%는 현재 시장 상황에 대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투덜투덜거리며 오늘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오늘의 책은 1993년 발표한 알랭 드 보통의 데뷔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남녀 사이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력적인 책이다. 성숙한 어른이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마치 나도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어른이 된 기분이다?' '나도 어른인데?'라는 이 아이러니함이 머릿속을 헤집을 때쯤 그때서야 나는 알았챘다. 그랬다. 나는 아직 17살 첫사랑이라는 그 시절 감정에 파묻혀 자라지 못한 채, '시대가 변했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같은 어린아이처럼 핑계를 대며 성장하지 못한 나의 시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끊임없이 이유를 만들고 합리화하며 누군가를 탓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의 비겁함 30%가 사실 70%였음을 인

지하는 순간이었다.


III. 텅 빈 깡통, 요란함을 채우는 법

사랑은 나에게 성장이었고, 성장하지 못한 나는,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너를 사랑하는 법도, 나를 사랑하는 법도, 우리를 사랑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나는 어느새 텅 빈 깡통이 되어 요란한 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렇게 된 바에 차라리 지금은 더 요란하게 흔들리고 싶다. 빈 깡통에서 시끄럽게 요란 치다 보면 어느새 그 소리도 잠잠해지며 고요해지는 순간이 오겠지. 그때 조용히 깡통 밖으로 나와 이제는 요란하지 않도록 그 빈 속을 차근차근 다시 채워주고 싶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나의 성장이 한 발을 내딛을 때, 그때는 왜 너를 사랑하는지 배움이 있기를 바란다. 나의 미성숙했던 과거를 인정하고 진짜 어른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나는 오늘도 자라지 못한 요란한 피터팬의 성장을 기도하며 사부작사부작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