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9: 2021.09.30 내게는 너무 버거운>

너무 과한 건 항상 독하다

by IMMM

I. 지적 허영심과 '완주하지 못한 도전'

멈춰버린 나의 시간을 다시 현실의 궤도에 돌려놓고자 시작한 작은 루틴이 이제 습관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복잡한 생각에 짓눌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바에, 작은 것부터라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 주어진 하루를 조금은 더 생동감 있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이 루틴 속에서 나는 읽었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같은 구절을 읽어도 그날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경험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조금 더 있어 보이는(?) 책들에 대한 지적 허영심이 발동했다.

오늘, 수많은 인문학 책들에서 거론되는 고은의 시집 『초혼』과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무턱대고 다시 집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또 완주하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찬양받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나도 공감하고 싶어 매번 도전하지만, 나는 이 소설의 내용과, 이 시집의 감성을 아직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눈으로 따라가고 머리로 생각하지만 가슴을 울릴 정도의 울컥함은 없다는 의미가 맞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건축물 하나를 보더라도, 시대와 스토리를 알아야 그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저 두 작가의 시대도, 내 지적인 소양도 아직은 그 가치를 공감하기에는 많이 모자란 듯하다.


II. 정신적 여유의 고갈과 '그래서 뭐?'

어쩌면, 내가 이 작품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내 현실의 마음가짐 문제일지도 모른다. 파산 이후 생존의 최전선에 서 있는 나에게는, 고고한 문학의 감성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 즉 정신적 여유가 고갈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제는 허영심이 하다못해 별의별 곳에서 튀어나온다 느껴진다. 쓰다 보니 갑자기 내적 반성문인 듯한 오늘의 글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사실 '그래서 뭐?'이다. 뜬금없이 반항심 강한 사춘기 소년처럼, '그래서 뭐'가 떠오른 이유는 왜일까. 지적 허영심을 채울 시간에 당장 먹고살 걱정이나 하라는 나의 현실 세포들이 나를 때리는 걸까? 숨 쉬고자, 나를 지키고자 만든 나의 작은 루틴은, 결국 스스로 고은과 최인훈이라는 지적 무게감을 짊어지더니 오늘 하루의 무게를 스스로 더 버겁게 만들고 말았다.


III. 너무 과한 건 항상 독하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주제도, 맥락도, 결국 '나는 오늘 힘들다'라는 이야기가 뭐 이렇게까지 인문학이다, 작가다, 지적 허영심이다, 쓸데없는 말들을 써내려 오며 버거워하고 있을까? 거창하게 힘들어 보이는 것도 참 일이다. 그냥 오늘 왜 이렇게 버겁냐는 탓을 어딘가에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역시


'너무 과한 건 항상 독하다.'


지금 내가 지는 이 무게감이 언젠가 내려온다면... 언젠간 고은과 최인훈도 가벼워지겠지..라고 자위해 본다.

누군가 탓하지 않는 내일을 맞이하기를 바라며.. 오늘은 사부작사부작 탓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