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꾹 멈추고 싶었던 시간, 멈추지 않은 생각의 쳇바퀴 속에서
딱히 쓰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복잡한 생각과 가라앉는 기분에서 벗어나고자 그저 종이에 펜으로 정갈한 글씨를 쓰고 싶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꾹꾹 흑심 연필로 글을 눌러쓰던 어린 시절처럼, 급해져 가는 나의 손이 빠르게 스쳐가는 시간 같아서, 억지로 잡아두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작은 정사각형 안에 억지로라도 반듯한 글씨를 쓰는 시간만큼은 모든 것이 통제되고 예측 가능한 온전히 나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나의 이런 발버둥을 비웃듯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결국 같은 것을 반복하고 같은 고민을 번복했다.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생각의 쳇바퀴에 갇힌 기분이었다.
이 생각의 쳇바퀴에 갇힌 채 여유마저 사라지니, 생각의 가지는 건강한 방향이 아닌 나쁜 쪽으로만 무럭무럭 향하기 시작했다. 한 번 사람의 존재에 대해 짜증 나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이 부정의 가지가 뻗어나갔고, 좋았던 순간도, 그가 나에게 주었던 감사한 시간조차도, 순식간에 사라지며 그저 존재에 대한 피곤함, 피로함만 나에게 남았다. 그리고 그 부정의 가지가 열매를 맺는 순간, 이제는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리면. 그 사람에게 감사함의 마음을 가졌던 나는 어찌해야 할까? 항상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던 내가, 이제는 스스로 죄의식이 없다, 미안할 여유가 없다, 나부터 살고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 나를 때린다. 인간미 없다 후회하다가, 상처받지 않으려 그런 거라 위로한다. 철들지 않으려 하지만, 어설프게 철들어 괴로워하는 이 모순의 가지가 맺은 열매가 바로 지금의 내가 되었다.
결국 지독한 자기 합리화는 나를 퇴화시켰다. 그저 나의 위치와 포지션이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파산했기 때문에, 나는 아직 남들 앞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고, 누군가는 아직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했고, 나는 부지런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게을렀고, 나의 자신감 문제라기에는 내 자존감의 문제였고, 나의 그런 시간을 반성하지만 그저 합리화할 뿐이었다. 멈추어있다 생각하는 나의 오늘이, 후퇴를 가장한 퇴화 중인 나의 시간이, 꿈과 목표점을 잃은 나의 행동이, 이 모든 것이 변명뿐인 나의 합리화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만히 시간을 풀어주고, 마음을 꿈에 맡긴다는 릴케의 말처럼, 이 쳇바퀴는 시간을 달리며 꿈을 꾸는 인간의 삶일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프레임 안에 나를 가두기 싫지만, 결국 내가 나를 가두고 살아간다. 이 고통스러운 쳇바퀴를 벗어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흑심 연필로 이 고백을 꾹꾹 눌러쓴다. 변명을 멈추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사부작사부작 꾹꾹 눌러 쳇바퀴를 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