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 버스카드도 못 만드는 삶이지만, 다음 발자국을 내딛어 보기로한다.
"모든 시작은 결국에는 다만 계속일 뿐,
운명의 책은 언제나 중간에서 펼쳐지는 것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2021년을 끝으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앞선 기록들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의 세월 속에서 혼자 발버둥 친 파편들을 모아 12편의 에피소드로 정리한 것이었다. 그 시절의 감정을 매듭짓고 무너진 마음을 다잡아 본 일기 같은 조각들. 그것을 다 쏟아내고 나니, 이제는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막막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렇게 2021년에서 멈췄던 시계가 벌써 2026년을 가리키고 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월이 참 야속하다"던 어른들의 탄식이 비로소 내 피부에 닿는, 그런 나이의 문턱에 서게 된 듯하다.
그사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전 세계를 침묵 속에 가둔 팬데믹은 역설적이게도 나에게 작은 위안이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아도 세상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겐 비참함이었겠지만, 나의 온 세상이 이미 무너져버린 그때, 전 세계가 함께 셧다운 된 풍경은 나를 고립에서 건져 올린 기묘한 동질감이었다. 모두가 함께 이겨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위로받았다. 세상의 아이러니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문 밖의 세상이 닫혔을 때, 나는 가장 많은 작품을 찍었고 가장 바쁘게 움직였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장 먼저 사라질 업종이라 생각했는데,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자 그들을 달래줄 무엇인가가 더 절실해졌는지 업계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고, 다행히 나는 그 흐름의 끝자락에 살짝 올라타 있었다. 하지만 폭풍은 뒤늦게 휘몰아쳤다. 코로나가 끝난 이후, 그 여파는 2년의 공백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덮쳤다. 내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앞길을 가로막는 듯했다. 다시 고통이었다.
돌이켜보니 그것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하나의 '신호'였다. "너는 망한 사람 같지 않다"는 주변의 말들에 속아, 나는 무너진 나를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저 억지로 나를 세워놓고 있었다. 목적지도 방향도 모른 채, 그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보지 않아 곪아 터진 상처가 이제야 비명을 지르며 터져 나온 셈이다. 2026년을 맞이하는 지금, 나는 이제야 나를 제대로 돌아보고 약간의 치유를 지나 새로운 시작의 앞에 서 있다. 여전히 내 안의 부속품 어딘가는 고장 나 있고, 추스르지 못한 방어기제와 날 선 감정들이 나를 미숙한 인간으로 붙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는다. 이제는 그다음 장을 넘길 수 있으리라고.
멈춰버린 바늘을 손으로 밀어 오늘로 옮기듯, 나는 다시 나의 항해를 사부작사부작 써 내려가보려 한다.
이제부터 쓰는 글들이 작업일지가 될지, 또 다른 미숙한 나를 남기는 파편의 조각들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글을 쓰며 치유받은 만큼 글을 쓰며 한 단계 더 성숙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다짐들이 모아져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