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자 하는 욕구의 시작, 글씨체와 삶의 속도
처음에는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은 입 밖으로 내면 주워 담을 수 없고, 행동은 하고 나면 돌이킬 수 없으니, 온갖 부정적이고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추스르고자 휴지통에 쓰레기를 버리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손으로 펜으로 썼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반듯했다, 기울었다, 흘러갔다, 돌아왔다 하는 내 글씨체들을 보다 보면, 내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는지 느껴졌다. 왜 옛 선조들이 붓글씨를 쓰면서 마음을 수양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평온해진 마음은 아니지만, 여전히 소용돌이치고 있는 이 감정의 폭풍 속에서, 이제는 반듯하고 좋은 글씨를 쓰고 싶어졌다. 이것이 바로 쓰고자 하는 욕구의 시작이었다.
마음이 불안할 때, 내 글씨체는 갈 길을 잃어버리고 흘러가기 시작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글씨와 삶은 닮은 구석이 있다. 빠르게 흘러가면 내가 무엇을 썼는지, 어떻게 썼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다음 단어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돌아가 보면 글씨들은 삐뚤빼뚤 중구난방이다. 반대로 차분한 마음으로 한 단어 한 글자 꾹꾹 눌러쓰기 시작하면 한 획 한 획 정성이 들어가고 최대한 반듯하게 글씨를 쓰게 된다.
지나온 나의 삶들도 비슷하다. 정신없이 '빨리빨리' 삶의 속도를 앞만 보고 달려가다 강제로 멈추어 서고 나니,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그 시간은 흘러가 버린 과거가 되어있었다. 삐뚤빼뚤해진 중구난방의 흩날리는 글씨체처럼 말이다. 자의든 타의든, 멈추어버린 후에야 속도를 늦추고 차분히 주변을 둘러본다. 조급함과 답답함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며 다시 '빨리빨리' 재촉하지만, 꾹꾹 눌러쓰는 한 단어 한 단어처럼 이제는 억지로라도 천천히 내가 무슨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지 알려고 노력해 본다.
후회만큼 쓸모없는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사실 후회한다. 그날의 선택을, 그 순간의 나를 후회하고는 한다. 어쩌면 지금 쓰고자 하는 욕구로 시작한 이 글을 쓴 나를 또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지금 뭐라도 할 욕구가, 다시 생겼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 쓰고자 하는 욕구는 후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부작사부작 써 내려가는 이 시간이 다시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 될 것이라 믿고 싶다.
오늘의 사부작사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