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4:2021.04.14 나를 갉아 먹는 것들>

30억 빚이 만든 자신감과 자존감 사이, 나의 찌질함의 역설

by IMMM

I. 자신감과 자존감 사이 나의 찌질함의 역설

나 혼자 상대를 향한 분노에 가득 차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상대를 마주할 때, 나의 의문의 1패가 결정된다. 참 스스로 찌질하다고 느낀다. 사업을 시작 할 때, 언제든 내 결정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제든 내가 원하면 내가 원하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자만했다. 그러나 내 선택으로 인한 30억을 빚진 후, 어느 날 마주한 나는 "너 때문이야"라고 화를 내며,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가시만 바짝 세운 채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스스로의 찌질함에 참을 수 없는 창피함 속에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두 단어가 있었다.


*자신감(Self-Confidence)*과 *자존감(Self-Esteem)*이다.


망가진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하고 있었다.


II. 외피(自信)와 본질(自尊)의 상관관계

자신감이 만들어준 자존감과, 자존감이 만들어준 자신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신감은 스스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태어난 배경 혹은 내가 이루어낸 외부적 성과들이 나를 포장해주는, 외부 요인으로부터 만들어진 당당함이다. 그래서 자신감은 자칫, 영끌해서 고급 외제차를 타거나, 온갖 명품 옷과 시계로 나를 포장하여 과시하고 싶어 하는 허세와 동반하는 자만심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스스로 빛나기보다, 이미 누군가 만들어놓은, 남들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춘 내가 잘나 보이는 나의 착각처럼 말이다. 결국 과한 자신감은 자만심이 되어 껍데기만 있는 자존감 위에 쌓아져, 결국 그 외피가 무너졌을 때 자존감은 지켜지지 못한다. 결국 자신감이 만들에낸 자존감은 어떤 문제에 대해 스스로 지켜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자존감이 만들어준 자신감은 사뭇 단단하다. 나체로 집 밖을 나가도 돌아올 때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돌아올 듯한 느낌이랄까.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내부적 요인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외피가 무너져도 결국 본질은 지켜진다는 이야기다. 자존감부터 시작된 자신감을 만들기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단단히 쌓아 올린 내면의 받침대는 높아진 탑을 무너트리지 않는다. 이렇게 자존감으로부터 만들어진 자신감은 여유와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스스로를 지켜내는 행위가 된다.


III. 관계의 붕괴 그리고 역할 기대에 대한 압박

자신감과 자존감은 결국 내 주변 관계 속에서 그 필요와 의미의 두각을 나타낸다. 이전의 나는 자신감으로부터 만들어진 자존감을 가졌던 인간이었기에, 나의 외피가 무너진 지금, 낮아질 떄로 낮아진 자신감과 자존감은 나의 관계를 변하게 만들었고,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떠나가게 만들었다. 결국 발가벗겨진 나는 이제서야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볼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아들이자 아버지이며, 친구이자 형이고, 오빠이며 동료이자 파트너고, 선배이자 후배인 수 많은 프레임 으로 이루어진 관계를 형성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이 관계속에서 파생되는 역할 기대에 대한 압박은 항상 자신감과 자존감을 필요로 했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나를 필요로 하는 부분, 내가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부분만을 위해 서로 관계를 형성한다고 생각했기에 더 이상 상대방에게 필요성을 채워주지지 못하는 지금의 나는 형성된 관계 속에 필요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순수한 사람들의 호의들이 강요와 압박으로 다가오고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한 나의 관계들은 스스로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알량하게 상처받은 나의 자존감은 스스로 만든 작위적인 나만의 관계의 정의 속에,


'왜 내가 상대방의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되는데?'

'언제든 끊어질 수 관계 아니야,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돼?'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더 찌질하게 만들고, 얼마 남지 않는 자존감 마저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자위해서라도 180도 바뀌어 버린 나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나 싶다.


IV. 나를 갉아 먹는 것은, 결국 나 자신

글을 쓰다보니 고은 시인의 시 중 '세상에서 수고보다 헛수고가 더 컸어'라는 말이 떠올랐다. 1)전인미답(前人未踏)의 삶 속에서, 내가 무엇인가 스스로 나아감에 있어 아무도 모르는 단계에 도달하는 행위가 즐거웠던 지난 시간의 나는 퍽 그럴싸한 자신감이 만들어 낸 자존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어쩌면 이제서야 본질적인 자존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스스로 새로운 시작을 받아들임에 있어 자연스럽게 생기는 이 불안감이 두려워 나는 지금 화를 표출하고 있는가 싶기도 하다. 결국 나를 갉아먹는 것들은 자신감도 자존감도 관계도 역활기대도 아니다. 나를 갉아먹는 것은 나 자신이다. 화를 내 듯 글을 써내려가다 보니 오히려 머릿속이 맑아진다.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그럴리가 없다.

오늘을 낙담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고, 내일을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은시간이다.

조금 힘들어도 어쨌든 포기할 때가 아니다.

*김창완 에세이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中'*


나를 위한 위로를 시작으로, 자존감위에 자신감을 다시 쌓아 올릴 시간이다.

이렇게 사부작사부작 써내려 가다보면...



1) 전인미답前人未踏

이전 사람이 아직 밟지 않았다는 뜻으로, 앞서 해본 적이 없는 일을 처음으로 해내거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단계에 도달하는 등과 같은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