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딸에게 전하는 편지
1996년 3월 2일. 시작이라는 설렘으로 가득했던 소년은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책가방과 한 손에 들린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친구들과 바쁜 걸음으로 교문을 향해 뛰었다. 모래바닥 가득한 운동장 한가운데, 학년별로, 반별로 구령대 앞 정사각형 반듯하게 세워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소년은 새로움이란 낯설지만 흥분됨을 느꼈다. 매년 다가오는 새로움은 익숙함이 되어가고, 익숙함 속에 소중함을 잊어가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현실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시간 앞을 마주 선 소년은 자신의 시간이 버겁고 참 무거웠다.
2021년 3월 2일. 시작이라는 설렘으로 가득한 어린 소녀가 자신의 몸보다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수 많은 시간을 지나 자신의 곁에 서 있는 소년과 함께, 손을 꼬옥 잡은 채 교문을 향해 총총 걷고 있다. 시작이란 항상 끝이 있음을 알게되고, 새로움이란 이제는 익숙함이 되어버린, 세월이란 바람에 부식되어 버린 소년의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 어린 소녀의 손에서 전달되어 오자 소년은 사뭇 낯설었다.
순간, 소년의 손을 뿌리치고 뛰어가는 소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면서 소년은 생각했다.
'아, 부디 소녀의 시작은 행복하고 설렘만 가득하기를',
'내가 느끼는 익숙함과 시간에 대한 무거움을 너는 느끼지 않기를.'
소년은 뭉클해졌다. 자라버린 소년은, 자라나는 소녀의 뒷모습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순수와 설렘을 발견하며 슬첬지만, 시작하는 소녀의 시간을 바라보며 자신도 다시 설레고 뜨거워지고 싶어졌다.
멈추어 있던 소년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자라나는 소녀가, 자라버린 소년에게 주는 선물 같은 순간이다. 소년은 소녀에게, 소녀는 소년에게 함께 걸어가는 동료이자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고, 그 시절 소년이, 이 지금 소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다 커버린 소년이 소녀에게 보내는 사부작사부작 써 본 편지.